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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적경 제14권-3. 밀적금강역사회 ⑦
법성화 2018-12-05 23:43:22, 조회 : 51, 추천 : 0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의 언사가 매우 적연하여 지이다. 그 내보이는 것은 어떤 것이 옳은 것입니까?”

“언사로써 바로 가르친 적연의 뜻은 일체 좋아하는 법에 적연을 행할 뿐이니라. 그가 법의 지혜로 더불어 이미 능히 인법을 더하므로 능히 지혜의 불꽃이 치연하며, 이미 능히 치연하므로 '밝게 빛난다[晃曜]'말하며, 이미 능히 밝게 빛나므로 적연이며, 이것을 곧 모든 여래중(如來中)의 총지(摠持)라 이름하느니라. 불도의 지니는 바가 이러하니라. 만일 법을 지니지도 아니하고 또한 법을 버리지도 아니하고 이러한 행을 펴며 이러한 말을 설할지니라.”

이 현왕 천자에게 대답하실 때에 일천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열리었으며 일천 천자가 세속 번뇌의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을 떴다.

그때에 적의보살이 현황 천자에게 일렀다.

“어디서 이런 변재를 얻었는가.”

“만일 능히 일체의 장애를 끊어 버리어 다 얻을 것이 없으며 제일의를 얻은 자는 바로 의지할 데가 없나니 이것을 변재라 이르며, 스스로 깨달아 알되 신식(神識)이 변하지 않고 남을 거쳐 아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설 데가 업는 것을 변재라 이르도다. 그 뜻이 방일치 않고도 모든 경계에 노니나니 만일 능히 집착할 것이 없는 법을 받들어 행하면 곧 이러한 변재를 얻게 되리라. 만일 온갖 법을 관찰하여 반복하고 자세히 살피어 다 알되 신식이 안정해야 변

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행자가 변재를 얻으려면 아무 데도 걸림이 없어야 하며, 경계에 따르는 행도 없이 흐르는 물결, 네 하수(四瀆)의 어려움을 건너서 나는 것도 없으며 일어남도 없으며 또한 없어짐도 없고 능히 없앨 자도 없는 것, 이것을 건넘[度]이라 하여 변재를 얻게 되느니라.”

그때의 적의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 현왕 천자는 어디로부터 이 국토에 이르렀기에 이러한 변재가 있나이까?”

“아촉불국으로부터 왔느니라. 그곳에서 멸해 이 묘락(妙樂)세계에 난 것은 여래께서 연설하신 비밀경전을 얻어 보고 듣고자 함이니라.

적의여, 마땅히 알라. 이 현왕 천자 법실총지(法室摠持)의 마음에 들어갔나니 만일 한 겁이나 다시 한 겁을 지내면서 그 공덕을 찬양할지라도 그 변재의 즈음을 다하지 못하리라.”

“어떤 것을 법실총지라 하옵기에 이 천자가 그 법을 따라 행하게 되었나이까?”

“선남자여, 이른바 법실총지를 얻어 이르게 되면 총혜·문자(文字)의 다함이 없는 데로 들게 되나니 온갖 법이 다 이 집에 들어가되 법에 조작하는 바가 없나니 법실을 알아 사무치며, 법실을 받들어 행하여 모든 문자에 음향으로써 연설하여 입으로 설하는 바에 법의 집[屋]을 짓되 집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나니 이것을 곧 법실 총지의 업에 들어간다고 이르느니라.

또 적의여, 법의 가히 들어간다는 것은 또한 모든 법이 가히 얻을 것이 없으므로 그 들어간다는 것은 오직 지혜에서 나온 것이며, 그 문자가 좇아온 데 없이 내실(內室:法室)에 들어가더라도 그 또한 문자가 내실에 나타남이 아니며, 어디로 지향코자 할 방향이 없으며, 또 그 문자가 널리 퍼져서 나아가되 머물러 대이는 곳에 또한 생각함이 아니며, 문자가 법을 따르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법 아닌 것도 아니요, 생각함도 없나니 그 문자는 모두 말이 없되 또한 말 아닌 것도 아니며, 늘고 줄지도 않느니라.

또 문자는 일어난 것도 보지 못하고 없어진 것도 없으면 문자를 짓지도 않고 잃어버리지도 않느니라.

또 적의여, 저 문자에는 문자가 있는 만큼 심수(心數)도 또한 있으며 일체가 이처럼 모든 법의 수가 그 돌아갈 바 있나니 저 모든 법의 수라는 것은 곧 수가 없음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법은 수에 돌아감이 아니기에 수가 있다 할 수 없나니 이것을 법수라 하느니라. 법수에 이렇게 따르는 것을 곧 법실에 들어간다 하나니 과거에 들어가지 않으며 나지 않으면 들어가 일어나는 법이 없으리니 그 낳은 것이 없으면 일어날 것도 없으리니 어떻게 들어가겠느냐?

들어갈 것이 없으므로 모든 법수에 든다 함이 다 이러하니라. 이와 같이 능히 법문을 체득하여 스스로 본디 없는 이치를 보아 곧 안주(安住)를 얻어 법실총지의 업에 들어가 중생심에 들어가나니 중생심에 들어감으로써 중생심에 따라 제도할 만한 자를 위하여 마땅히 설법하여 총지를 받는다면 이것을 '적의(寂意)'라 이르느니라.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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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주/얼마나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성종(性宗) [2018-12-06] : 법성화 법우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경전의 말씀은 내일(금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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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화 [2018-12-09] : 스님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시고 보온 잘 하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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