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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적경 제21권-7. 피갑장엄회(被甲莊嚴會) ①
법성화 2019-06-11 20:20:12, 조회 : 14, 추천 : 0
무변혜여, 이 수레는 즈음[陰]이 없나니 처음·중간·나중의 즈음을 사무쳐 알지 못하느니라. 이 수레는 즈음이 끊어진지라, 즈음을 얻지 못하느니라. 가장자리 없는 즈음이 이 수레의 즈음이며 한량없는 즈음이 이 수레의 즈음이니라.

무변혜야, 이 수레는 가장자리의 즈음이 없으며 또한 중간 즈음이 없나니, 어떤 즈음도 가히 끊을 것이 없느니라. 즈음이 끊어졌다고 함은 어떤 즈음이 없는 것을 즈음이 끊어졌다고 말하며, 즈음을 분별할 수 없음을 즈음이 끊어졌다고 말하느니라. 이러한 것을 이름하여 이 수레의 즈음이 끊어졌다고 함이니라.

즈음이 있는 것이 없음을 중간 즈음이라 말하며, 또한 가장자리 즈음이라 말하며 즈음 없는 것을 즈음으로 말하였을 뿐, 저 즈음 가운데 즈음을 얻지 못하나니, 얻지 못하므로 가장 자리의 즈음과 중간 즈음이 실로 즈음이랄 것도 없고 끊어졌다는 것도 없으므로 즈음이라는 문에 들었나니 이 이 즈음의 문에 들어가므로 이 수레는 일체를 초월하나니 그 초월했다는 것도 또한 얻을 것이 없느니라.

무변혜여, 어떤 것을 즈음이라 하는가. 단(斷)·상(常)의 즈음을 말함이니 언어(言語)에 들어가므로 즈음이란 것이 곧 즈음이 아니니라. 저 단·상의 즈음이란 것도 가장자리의 즈음도 없나니, 그 즈음이라는 상(相)이 상 그대로 가장자리가 없기 때문이니라. 말한 바 즈음이란 것은 분별이 없나니 분별이 끊어졌으므로 즈음을 초월하여 멀리 단·상을 여의었느니라.

무변혜여, 몸이란 견해가 있는 자는 곧 즈음이란 문에 의지할 바가 있거니와 만일 즈음이란 문에 집착이 없으면 집착이 없으므로 단·상의 즈음에 곧 능히 초월하느니라.

무변혜여, 단·상의 즈음이란 실다움이 없건만 다만 속이는 말로서 저 삼유(三有) 가운데 두 가지 즈음을 분별하나니 저 두 가지 즈음에 만일 거두어 잡아 가지지 않거나 만일 서로 응하지 않으면 곧 능히 초월하리라. 몸이란 견해를 끊으므로 저 두 가지 즈음이란 문에 집착함이 없으리라.

무변혜여, 만일 모든 보살이 신견(身見)을 여의지 못하면 큰 갑주를 입고 큰 수레를 탔다고 말하지 못하며 저 즈음이란 문에 곧 집착하게 되리니 설사 즈음을 끊고자 하나 즈음을 끊었다는 생각을 일으키어 앞뒤라는 즈음에 분별이 있으리라.

만일 보살이 이에 신견을 여의면 이것은 곧 큰 갑주를 입고 큰 수레를 탔다고 하리라. 그는 즈음이란 문에 곧 집착이 없으리니 두 가지 즈음을 초월하고 안락의 수레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리라.

무변혜여, 모든 보살이 큰 지혜의 힘으로 능히 일체 즈음에 머무르는 법에 끊지도 아니하고 깨뜨리지도 아니하고 선교의 방편으로 지(止)·관(觀)을 거두어 잡아 지니고 모양 없는 [無相] 법을 닦아 익히며 모양 없는 증(證)을 얻으면 곧 모든 부처님이 법 광명을 맡겨 주시리라. 법 광명인 까닭에 일체의 즈음이 끊어지며, 저 즈음 끊는 데 또한 집착한 바 없고 어떤 즈음이 없으며,


무변혜여, 보살이 이 큰 수레와 이 큰 갑주에 인색하지 말라. 마땅히 중생이 보리심을 발하기 위하여 이 갑주를 입고 이 큰 수레를 탐이니, 이 큰 수레와 이 큰 갑주에 인색하지 말고 능히 잇달아 모든 중생을 권할지니라.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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