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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8
법광(法光) 2020-06-28 21:26:19, 조회 : 38, 추천 : 0



3 미얀마(버마)

전체 인구의 85퍼센트 이상이 불교도인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태국 다음가는 불교 국가이다. 1989년 버마에서 미얀마로 국명을 개명 하는데, 이는 식민지를 청산하고자 하는 의미와 함께 버마가 미얀마의 대표 종족인 버마족을 뜻하기 때문에 지역 명칭인 미얀마로 바꾼 것이다. 미얀마는 버마족이 69퍼센트를 차지하며 그 외 티베트의 퓨족Pyu , 중국 운남성의 몬족Mon, 태국의 샨족Shan, 인도의 아라칸족 Arakanese 등과 여러 소수 부족도 있다. 현재 미얀마불교는 총 9개, 크게는 2대 종파로 나뉜다. 가장 큰 종파는 수담마Sudhamma(혹은 Thuchamma)파로 대략 80퍼센트에 육박하며, 9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쉐진Shwegyin파가 두 번째로 큰 종단이다. 그 외에 공인된 7개의 종파로는 마하드와라Mahadvara, 물라드와라 Muladvara, 웰루완veluvan, 켓트윈Hngettwin(혹은 Satobonmika), 마하옌Mahayin, 가나위뭇띠까토 Ganavimuttikato, 아나욱 차옹 드와라Anauck Chaung dvara 등이 있다. 또한 1980년 이후 여성 출가자인 틸라신thilashin 出家女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94년에는 승가최고기관회의에서 정부의 틸라신 규칙집 Thilashin Kyinwut이 제정되면서 정부 차원의 표준 계율이 생겨났다.


1) 불교의 유입과 버강 왕조
① 고대 왕조와 불교의 유입
미얀마 최초의 통일국가는 10세기에 버강Bagan(혹은 Pagan) 왕조가 성립하면서 등장한다. 그전까지 여러 종족 중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퓨족이었다. 퓨족은 피예Prome 부근에 따예낏따야Thayekhittaya 라는 도시를 세우면서 번성했는데, 발견된 빨리어 비문을 통해 5세기경에 이미 인도의 테라바다불교가 퓨족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구법승 현장과 의정의 여행기, 산스끄리뜨 게송, 출토된 보살상 등을 통해서 7~8세기경에는 미얀마에 대승불교가 유입되었음도 유추할 수 있다. 중국 사료에는 9세기의 미얀마에 백여 곳의 화려한 불교 사원이 있었으며, 국왕이 불교를 수호하고 앞장서서 신앙하며 백성들의 불심이 깊었다고 전해진다.

825년에는 몬족이 미얀마 남부 타통Thaton에 수담마와띠 su dhammvati 왕조를 세운다. 타통 왕국은 제3차 결집 이후 아소카 왕이 파견한 소나와 웃따라 장로가 방문한 '황금의 땅 Suvanna-bhumi 金地國’ 이 바로 미얀마라는 학설의 기반이 되는 도시이다. 담마제디 왕이 1476 년 바고Bago 근교에 남긴 깔야니 비문에는 아소카 왕이 파견한 소나와 웃따라 장로가 야만나데사Ramanna- desa(몬의 나라)에서 교법을 확립 했다는 몬어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의 야만나데사가 현재 몬 주에 해당되고 황금의 땅이 바로 타통으로 유추된다. 즉 미얀마 남부 타통 왕국에 인도의 전법사가 들어오면서 테라바다불교가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② 버강 왕조
히말라야 북쪽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버마족이 8~9세기에 남하하여 쇠락한 퓨 왕국을 점령하고 정착하면서 9세기경 미얀마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왕조가 버강이다. 이 왕조의 42대 아노여타 Anawyahta(혹은 Anuruddha, 1044~1077) 왕은 11세기 중엽 미얀마를 테라바다불교로 정비하면서 강력한 통일국가를 만들어 미얀마의 공식적인 역사에 태조太祖로 기록된다.

아노여타 왕은 1057년 타통 지역을 공격해서 빨리 삼장과 부처님의 사리를 얻어 32마리의 코끼리를 이용하여 버강으로 옮겨 오면서 불교적 기반을 다진다. 이어 11세기에는 미얀마 남부 지역의 몬족을 정복한 후 당시 성행하던 '아리 Ari’ 라고 불리는 교단을 물리친다. 아리 교단은 힌두교의 샥띠즘Saktism 性力派에 좌도 밀교와 민간 토속신앙이 결합된 종파로서, 아리승들은 주법을 부리고 백성들에게 군림 하면서 타락을 일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아노여타 왕은 싱 아라한Shin Arahan 스님의 도움으로 스리랑카의 대사파에 승려를 보내 대사파의 계맥을 전승받고 테라바다불교를 국교로 공인한다. 당시 스리랑카의 왕인 위자야바후 1세는 스리랑카 승가를 재건하기 위하여 미얀마에 사신을 파견하고 1071년경 전적과 장로들을 요청했다. 아노여타 왕은 이 요청에 응하여 스리랑카로부터는 삼장 사본과 주석서를 얻어 와 자국의 삼장과 비교 연구를 하도록 지시하면서 스리랑카와의 교류가 빈번해졌다.

인도의 아소카에 비견되는 아노여타 왕은 불교를 진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경전을 빨리어로 통일하고, 뛰어난 장로를 왕사王師로 임명하여 국정에 대한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 또한 타통의 예술가들을 데려와 수많은 파고다 Pagoda(미얀마어 paya)를 건립 하였다. 뒤 이은 짠짓따Kyanzittha(1084~1112) 왕은 파고다 건립에 더욱 매진하여 아낭다 파고다 외에도 수많은 불탑과 사원이 조성되는데, 이 왕조가 멸망하기 전까지 약 5천여 개에 이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파고다가 건립되었다. 때문에 이 왕조를 건사 왕조라 부르는데, 당시 파고다 건립에 필요한 재정 문제로 국왕과 승가 사이에 분쟁이 자주 발생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심각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버강 왕조는 13세기에 몽고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된다.





육법공양(六法供養) - 태산보살

법광(法光) [2020-06-28] : 불심사 도반님들의 경전대학원 졸업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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