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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10
普德華 2020-09-14 16:40:16, 조회 : 14, 추천 : 0
몽리명명유육취(夢裏明明有六趣)나
꿈속에서는 분명하고 분명하게 육취가 있으나

흔히 미혹한 중생의 상태를 꿈에다 비유하고, 깨달은 상태를 잠에서 깨어난 것에 비유합니다. 꿈속에도 사람이 있고, 산이 있고 강이 있습니다. 꿈속에서도 밥 먹고, 잠 자고, 사람을 만나고, 말을 하고, 일을 합니다. 온갖 것이 현실과 하나도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까?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 꿈을 깨고나서도 여전히 이어집니까? 꿈속에서 주운 황금덩어리를 꿈을 깨고나서 찾는 자가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꿈속에서 본 황금덩어리는 생각만으로 지어진 것일 뿐 본래 있었던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는 분명하고 분명하게 육취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육취(六趣)'는 육도(六道)라고도 하며,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인간 · 천상의 여섯 종류 세계를 말합니다. 이를 조금 여유롭게 해석하자면 다양한 삶의 방식과 형태가 곧 육도입니다. 꼭 죽어서 어느 세계로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이나 주변의 삶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참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옥처럼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삶도 있고, 짐승처럼 천대받고 부림을 당하는 삶도 있고, 궁색함 속에서 작은 이익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삶도 있고, 권세와 야욕에 들떠 싸움을 벌이는 삶도 있고, 욕망과 양심의 갈림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삶도 있고, 신들처럼 갖가지 복락을 누리는 여유로운 삶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갈래의 삶을 끝없이 돌고 도는 것, 이것이 윤회(輪廻)입니다.

부처님은 항상 청중의 지적 수준과 처한 상황을 고려해 말씀하셨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이 말만이 진리이다'라고 주장하신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후예들 또한 그 시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통념에 바탕을 두고 그 시대 사람들의 주요 논제에 맞춰 부처님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면서 불교 교학은 발전해 왔습니다. 이에 의거해 불교(佛敎)를 이해해야 합니다.

경전은 물론 값진 말씀입니다. 하지만 대기설법임을 고려하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를 무조건 신봉해 현재의 삶과 동떨어진 것까지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삶에서 문제가 되는 것만 해도 끝이 없는데, 공연히 문제를 만들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육도윤회(六道輪廻)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들을 기준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설명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문제는 다양한 삶의 형태 속에서 고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것에 주목해야지, 천당과 지옥이 어디에 있고 죽어서 어떻게 그곳으로 가는지를 논하느라 열정을 허비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 태도입니다. 부처님은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이셨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햐고 소화해 나의 삶에서 풀어갈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상을 제시하고 이론을 구축해 공허한 구호를
외치느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교후공공무대천
覺後空空無大千이라
꿈을 깨고 나면 텅텅 비어 온 세상이 하나도 없네.

‘깨닫다’는 뜻일 때는 ‘각(覺)’으로 발음하고, ‘꿈에서 깨다’는 뜻일 때는 ‘교(覺)’로 발음합니다. 꿈속에서는 그렇게 분명했는데, 꿈에서 깨고 보니 텅텅 비어서 삼천대천세계마저 없더라는 것입니다. 꿈속과 꿈을 깬 뒤의 상황이 다르듯이, 미혹 속에서 헤매던 상황과 깨달은 뒤의 상황이 이렇게 다릅니다.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말이 있습니다. 술에 취해 잠든 사이 꿈속에서 온 천하를 다 누비며 온갖 영화를 누렸는데, 깨고 보니 자기 집 마당 나무 그늘이더랍니다. 깨닫고 보면 공간적으로는 삼천대천세계마저 없고, 시간적으로는 과거·현재·미래의 광대한 세월마저 없습니다. 예전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배경과 같은 시간과 공간마저 없다고 했는데, 사람이 어디에 있고 사람살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중생이니 부처니, 성인이니 범부니, 무명이니 법성이니 하는 것도 모조리 꿈속을 헤맬 때 하는 소리입니다.

팔만사천 가지 말씀이 모두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성현들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시설하신 방편이고, 자비심으로 중생의 꿈속으로 들어가 꿈을 깨라고 들려준 꿈속 이야기일 뿐입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편의상 그렇게 말을 붙여서 표현한 것일 뿐이지, 어떤 실체가 있어서 그런 말을 붙인 것이 아닙니다.

신청곡 : 그랬구나(수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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