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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61
법광(法光) 2020-11-22 01:41:47, 조회 : 12, 추천 : 0



11 요나라의 불교
당나라 말부터 오대 시대에 걸쳐 중국이 전란을 겪는 동안 장성 이북의 몽골리아에서는 거란족 야율아보기, 즉 요나라 태조(재위 907~926)가 부족을 통합하여 916년에 거란을 세웠다. 태조를 위시한 역대 황제들은 불교 신봉자로 보호정책을 취했다. 각지에 다수의 불교 사찰이 건립되는 등 대대적인 불교 숭배 사업이 추진되었다. 태조는 즉위 전인 902년에 용화주에 개교사를 건립했고, 안국사에 행차하여 승려들을 공양했다. 태조의 사찰 건립은 한인 이민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태조의 뒤를 이은 태종(재위 926~947)은 수도인 상경 임황부에 안국사를 건립하고 황태후의 회복을 기원하기 위해 보살당에 행차했다. 승려에게 재를 올리는 법회인 반승을 행하자 5만 명이나 모였다. 요나라 불교의 전성시대는 성종(재위 983~1031) · 흥종(재위 1032~1055) · 도종 (재위 1055~1100) 시기였다. 성종은 불교와 도교에 정통하고, 부친 경종(재위 969~982)의 기일에 조서를 내려 행향 · 반승시켰다. 황제는 각지에 사탑을 건립하고 사찰에 행차하여 불사를 행하였다. 이렇듯이 불교를 신봉 했지만 한편에서는 사도승 금지 조치도 병행했다. 흥종 자신도 사찰에 행차하여 구족계를 받았고 반승을 자주 시행했다. 또한 승려를 높은 관직에 임명했다. 도종은 요나라 황제 중 제일의 숭불자였다. '일 년에 반승 36만, 하루에 축발 3000'이라고 할 정도로 불교에 심취했다. 도종은 불전 연구에도 힘을 쏟아 불서의 수집과 판행에 노력했다. 특히 화엄학과 밀교에 조예가 깊었고 범어에도 통달했다.

요나라에서도 송대 촉판『대장경』의 영향으로 대장경 조인이 기획되었다. 방산 운거사의 석경은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손상되었는데, 1004년 북송과 요나라 사이에 맺은 맹약인 전연의 맹盟이 체결된 다음 해부터 복구가 시작되었다. 또 당나라 말 이후 중단되었던 석경의 후속 사업이 황제의 원조를 받아 재개되었다. 『대반야경』을 위시한 주요 대승불교 경전의 판각 작업이 완료되었다. 또한 흥종으로부터 도종 시기까지 30여 년의 세월에 걸쳐 『거란대장경』이 출간되었다. 이 사업에 각원 등의 고승이 참여했다. 이는 촉판 『대장경』에 뒤이은 대장경으로 한역 불교 경전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도종 이후 『거란대장경』은 자주 고려에 사여되어 『고려대장경』 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명승들도 배출되어 많은 저술을 남겼다. 희린의 『속일체경음의』, 행균의 『용감수감』이 저명한데, 주목 되는 사실은 법상종과 화엄종 학자가 많다는 점이다. 당나라에서 유행한 교학불교는 회창폐불 이후 쇠락하고, 송나라 때가 되면 선 종이나 정토종이 유행했다. 반면 요나라에서는 교학불교가 우세 했고 『거란대장경』이 간행될 당시 선 관련 서적은 불태워졌다.

회창폐불 당시 유주 군벌이 중앙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많은 승려들은 이곳으로 피해 들어왔다. 이후 1004년 전연의 맹에 의해 연운십육주가 요나라에 편입되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요나라 말에는 인구 30만 명을 헤아리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승려와 사찰의 수가 북방에서 제일이라고 할 정도로 불교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선행(善行) - 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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