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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94
법광(法光) 2021-02-19 02:02:07, 조회 : 29, 추천 : 0



3. 16세기 이래 활불 제도의 발전과 몽골불교
14세기 말 몽골 제국의 와해는 분명 티베트에 대한 몽골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이후에도 계속된 몽골 내부의 분열은 과거의 영향력을 회복시킬 여지를 모두 앗아가는 듯했다. 초원으로 퇴각한 이후 몽골은, 소위 칭기즈 칸과 쿠빌라이의 후예임을 주장하는 동부 몽골 세력과 오이라트로 대표되는 서부 몽골 세력이 동서 대립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때 오이라트는 에센이 중심이 되어 명조를 압박했고, 급기야 1449년 명의 정통제가 에센에게 포로가 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동부 몽골의 경우 15세기 후반부터 다시 세력을 확대시키기 시작하여 다얀 칸(?~1517) 시대에 이르러 동부 몽골의 통합에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명실록』의 기사에 의하면, 화림 즉, 대몽골국 시대 우구데이 칸이 건설한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름에서 온 승려가 티베트의 승려와 함께 명조에 이르렀다. 오이라트 몽골에서 명조에 파견된 사신 중에도 승려가 포함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동서 분열기에도 몽골과 티베트 간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명 초기 하서회랑과 신강 동부 하미 일대에 대해 명조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티베트와 몽골 양자 간의 관계에 분명 커다란 장애로 작용했고, 이것이 해소되는 15세기 중후반부터 점차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던 다얀 칸을 중심으로 한 동부 몽골의 성장은 점차 서부로 확대되었고, 이들은 오이라트를 압박하는 동시에 몽골 중서부에서 하서회랑을 거쳐 청해호 일대로 연결되는 남북 교통로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마치 과거 몽골초원의 선비계가 동부 티베트 암도(현재 중국 청해성)에 토욕혼 정권을 건설하고, 티베트계 탕구트가 청해, 몽골에 서하를 건설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로써 16세기 몽골과 티베트 관계는 다시 급속한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니 불교사에서는 이를 몽골에 대한 티베트불교의 2차 전교라고 부른다. 이는 앞서 몽골 제국 시대에 진행된 1차 전교와는 비할 수 없는 막대한 영향을 서로에게 남겼는데, 몽골의 티베트 지배와 불교의 초원 확산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왜 몽골의 정치적 발전이 불교, 그것도 티베트불교와 깊이 연결되어 전개되었을까?

몽골의 정치사에서 16세기는 칭기즈 칸의 후예, 소위 '황금가족'에 의한 새로운 통합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몽골 제국 분열 이래 계속된 혼란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서 몽골 중동부를 중심으로 다얀 칸 정권이 등장했다. 그의 후예들은 6개의 만호萬戶(좌익·우익으로 구성)를 구성하여 각자 발전을 거듭하면서 몽골 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렇게 중흥을 꿈꾸던 몽골 사회에 티베트불교가 다시금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며, 그 속에서 과연 티베트불교는 어떤 역할을 수행했을까?

다얀 칸의 사후, 그의 권위는 계속해서 직계 후손인 차하르 몽골(6만호의 하나, 6만호의 중심)의 보디 칸에 의 해 계승되었다. 보디 칸을 정점으로 한 좌·우익 6만호는 다얀 칸의 유지를 받들어 몽골 제국의 권위와 질서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는데, 그 사업의 일환으로 서부 몽골 오이라트에 대한 공격이 감행되었다. 물론 대對 오이라트 전쟁은 형식적으로 차하르 대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나, 실제로 이 전쟁을 통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우익 몽골을 중심으로 한 다얀 칸의 손자 투메트 몽골(6만호의 하나)의 알탄 칸(1508~1582) 이었다.

16세기 중엽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알탄 칸은 대외적으로는 대오이라트, 대명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 했으며, 대내적으로는 우익 이성 제후의 도전을 물리치면서 점차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는 차하르 대칸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도 투메트의 영역을 동서로 확장시켜 갔고, 동시에 감숙 남부와 청해로 연결되는 티베트 동부의 초원 지대도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편입시켰다. 이 같은 우익 몽골의 청해 진출은 자연스럽게 동부 티베트의 여러 민족과 몽골이 보다 밀접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는데, 이때 알탄 칸과 연결된 것이 티베트의 겔룩 교단이었다.

겔룩 교단은 15세기 초 쫑카빠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리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성립된 교파로서, 팍모 두 정권의 지지 아래 티베트 라싸를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시켜 갔다. 이 교파는 기존의 씨족 교단과는 달리 초기 철저히 스승에서 제자로 교권을 승계하다가, 4세 달라이라마로 몽골 알탄 칸의 증손이 선택 됨으로써 활불에 의해 교권이 계승되는 활불 교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곧 달라이라마를 구심점으로 하는 전세활불 제도를 마련하고, 17세기 중엽부터 5세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의 세속과 종교계의 지도자로 군림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과정이 몽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투메트 알탄 칸과 겔룩 교단의 승려 쏘남가초(3세 달라이라마, 1543~1588)가 1578년 청해호 남부에서 만났다. 이 만남에서 쏘남갸초는 알탄 칸에게 그가 쿠빌라이의 전세자轉世者(호빌간)이며, 자신은 팍빠 라마의 전세자라고 규정함으로써 쿠빌라이 시대의 전통을 회복했음을 선포했다. 이로써 몽골 사회는 점 차 정치적 정통성의 확보를 위해 티베트불교가 얼마나 유용한 도구인가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에 투메트를 뒤이어 6만호의 일파 할하 몽골과 서부의 오이라트 몽골 등도 불교 수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차하르 대칸의 권위가 투메트를 비롯한 우익을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자, 알탄 칸을 중심으로 한 우익은 과거의 명분론(차하르 정통론)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투메트의 알탄 칸은 자신의 정통성을 조부 다얀 칸에서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대원 울루스의 창시자 쿠빌라이까지 소급하기 시작했다. 16세기 말 시작되는 적극적인 불교 수용 정책은 쿠빌라이의 후예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티베트불교는 불교 자체의 의미보다는 몽골 제국 시대 쿠빌라이와 연결된 종교였다는 이유로 몽골에서 환영받았고, 또한 그런 이유에서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불교와 몽골의 관계를 칭기즈 칸의 시대로까지 소급시켰다. 1580년대 할하 몽골의 아바다이 칸이 카라코름의 반석 위에 에르데니조라는 사원을 건설했고, 알탄 칸의 증손이 4세 달라이라마로 전세하는가 하면, 황금가족의 후예들이 다수 유수한 활불로 지정되어 몽골은 물론 티베트불교계에서 활동하게 되었으니 당시 몽골의 지배층이 불교를 자신들의 정치적 정통성 확보와 동일시하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복드 칸(8세)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등장한 활불 계통이었으니, 할하 몽골 최고의 활불 1세 제브 준담바호톡토(1635~1723)가 바로 복드 칸의 전생자였다.

티베트불교 세계에서 활불의 등장은 13세기 말 카르마카규 교단에서 일찍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활불이 티베트의 거의 모든 교단으로 보편화되고 심지어 티베트를 넘어 몽골초원 지역으로까지 확대된 데는 몽골의 불교 수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적으로 볼 때 몽골은 불교 세계의 수호자임을 자임하면서, 투메트를 이어 할하, 차하르, 호쇼트(오이라트의 일파) 몽골 등 여러 세력이 청해를 차례로 장악하여 티베트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티베트 전체의 운명과는 별개로 겔룩 교단의 입 장에서 몽골의 후원은 교단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달라이라마나 판첸 등 겔룩 교단의 주요 승려들은 티베트 내부는 물론 여러 몽골 정치 세력과 연결되면서 막대한 후원을 받아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마치 몽골 제국이 샤카 교단을 통해 티베트를 장악했듯이 17세기 몽골은 겔룩 교단을 통해 티베트를 장악했던 것이다.





성종(性宗) [2021-02-19]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토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성종(性宗) [2021-02-20]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일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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