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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122
普德華 2021-04-07 09:11:34, 조회 : 19, 추천 : 0
상가쟁영만진도
象駕쟁(山+爭)嶸漫進途라
코끼리에 수레를 매어 위풍당당하게 길을 가는데

'만진도(漫進途)'는 아주 잘난 듯이 뽐내면서 길을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수당랑능거철
誰螳螂能拒轍가
어떤 당랑이가 그 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당랑(螳螂)'은 쇠똥이나 말똥 속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벌레입니다. 《장자(莊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제(齊)나라의 장공(莊公)이 사냥을 나갔는데, 당랑이 앞다리를 버쩍 세우고 그 수레바퀴를 막으려 들더랍니다. 그래서 마부에게 물었답니다.
"저게 무슨 벌레냐?"
"당랑입니다."
그래 장공이 말했습니다.
"저 벌레가 너무나 보잘것없는 힘으로 큰 수레를 막으려고 있으니,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는구나."

조그마한 벌레가 수레를 막는다고 막아지겠습니까?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 불교의 소소한 방편설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나의 주장과 나의 설법을 막으려고 한들 어찌 막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이런 나의 설법에 대해 구구하게 말들이 많은 모양인데,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것이지요. 아주 자신감 넘치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이 '수견당랑능거철(誰見螳螂能拒轍)'로 되어 있는 책도 있습니다. 이대로 해석하자면 "당랑이가 수레를 막는 것을 본 사람 있는가?"가 됩니다.


大象不遊於兔徑(대상불유어토경)이요
큰 코끼리는 토끼의 길에 놀지 않고

큰 코끼리는 大乘菩薩(대승보살)을 비유하고, 토끼는 二乘(이승)을 비유한 말입니다.
또한 앞에서 영가 스님은 "나 역시 수많은 경론을 뒤지면서 쉴 새 없이 명상을 분별했지만, 남의 보배를 세는 격이라 아무런 이익이 없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에 의거해 생각해 본다면, 토끼의 길은 곧 여래의 뜻을 파악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말에 사로잡혀 분별과 논쟁만 일삼는 학문을 말합니다. 그런 길에서 놀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소소한 학문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게 공부하는 자들과는 교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작은 그릇을 큰 그릇에 담을 수는 있지만 큰 그릇을 작은 그릇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大悟不拘於小節(대오불구어소절)이라
크게 깨달은 사람은 작은 절개에 구애받지 않는다.

앞에서 용시 비구 이야기, 음행과 살생을 범한 두 비구의 이야기 등을 거론하면서 계율의 본뜻에 대한 말씀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으로 볼 때, 당시 영가 스님은 계율과 관련되어 주변으로 지탄받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야 알 수 없지만 출가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누이를 모시고 살았던 것이 발단이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그렇게 볼 때 '작은 절개'는 곧 편협한 계율 해석 내지는 持戒(지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영가 스님은 천태종에 몸담았다가 선종에 투신한 분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작은 절개'는 곧 종파에 대한 의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청곡 : 홀로피는 연꽃(김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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