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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09
법광(法光) 2021-04-07 21:54:16, 조회 : 29, 추천 : 0



4 근현대
① 메이지 시대 및 그 이후의 불교
근대는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왕정복고와 근대화라는 2중 구조에 의해 막이 올랐으며, 근대 불교의 역사 또한 이에 따라 이루어졌다. 1686년(메이지 원년) 신정부는 3월부터 10월에 걸쳐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을 시행했다. 주요 내용은 별당別堂 혹은 사승社僧으로 불렸던 승려를 환속시킬 것과, 신명神名에 불교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신사를 조사할 것, 신체神體를 불상으로 하는 신사는 이를 제거하고 신사의 본지불, 범종 등을 제거하라고 명했다. 여기에 더해 환속한 별당과 사승은 신주神主 · 사인社人의 명칭으로 바꾸어서 신도로 전환하고, 신직神職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불교식의 장제를 폐지하고 신도식으로 행할 것을 명하고 있다. 이러한 포고령은 전국적으로 폐불훼석의 행동으로 이어져 경전 · 불상 · 불구를 포함한 불교적인 색채를 없애고 아울러 사찰의 합사, 폐사에까지 이르렀다.

다음 해에 불교계는 임제종 승려 토코쿠의 발기로 일본 최초의 불교 회합인 교토제종동덕회맹을 결성하고, 불교계의 총체적 난국에 대한 8개조의 대책을 강구했다. 첫째는 왕법과 불법은 불리의 관계임, 둘째는 사교邪敎를 연구해서 배척할 것, 셋째는 3도(儒佛仙)가 제휴해서 연마할 것, 넷째는 자종自宗의 교의경전을 연구할 것, 다섯째는 자종의 폐해를 일신할 것, 여섯째는 신규 학교를 경영하고 인재를 양성할 것, 일곱째는 각종各宗의 영재 등용의 길을 넓힐 것, 여덟째는 민중 교화에 노력할 것이었다. 이러한 논의의 결과는 향후 근대 일본불교가 걸어갈 지향점이기도 했다.

1871년에는 종문인별장제가 폐지되어 봉건적인 사단 관계의 의무가 해소되었다. 1873년에는 기독교 금지령이 해제되면서 사청제도 또한 없어져 단가에 대한 지배의 근거나 권리가 사라졌다. 한편, 신정부는 제정일치 국가 확립을 위한 사상적 작업을 위해 국가 신도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 신도 작업을 위한 교부성敎部省과 대교원大敎院 체제의 확립, 3조교을 통한 신불 합동 포교의 실시, 마침내는 7종, 즉 천태종 진언종 · 정토종 · 선종 · 정토진종 · 일련종 · 시종 각 종단에 대해 국가가 주도하는 통합 작업을 실시했다.

불교계는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며 다양한 개혁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계몽 결사운동을 비롯하여 근대 불교학의 확립과 재가자들을 중심으로 한 혁신운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계몽 · 결사운동은 메이지 혁명을 계기로 새로운 사조에 대응하는 불교 계몽에 주안을 두었다. 활동의 주요한 통로로 기관지를 발행했다. 초기 대표적인 것으로는 오즈 테츠넨(1834~1902)과 오우치 세이란(1845~1918) 등이 중심이 되어 불교의 보은사상을 전파하고자 한 『보사총담』(1874), 오노 아즈사(1852~1886)와 바바 타츠이(1850~1888)가 주도하여 불교와 국가주의의 결합을 꾀한 『공존잡지』(1874)가 있다. 뒤이어 시마지 모쿠라이(1838~1911)와 아카마츠 렌죠(1841~1919) 등이 불교 교단의 개명을 촉구하며 결성한 영지회와 『영지회 잡지』(1884)가 있으며, 앞의 오우치 세이란을 중심으로 불교의 국가주의를 지향한 존황봉불대동단과 『대동신보』(1889)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교단 내에서는 근대적 종학 수립은 물론 교단의 제도 개혁을 위해 자파의 승려나 학자들을 서양 종교의 시찰이나 유학승으로 적극적으로 파견했다. 특히 가장 큰 규모의 교단인 정토진종의 동 · 서 양 본원사파에서는 1872년에서 1874년에 걸쳐 대표자들이 유럽의 각국을 시찰하여 유럽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양 파에서는 난조 뷴유(1849~1927), 카사하라 켄쥬(1852~1883), 타카쿠스 쥰지로(1866~1945) 등의 영국 파견을 시작으로 미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유학생을 보내 산스끄리뜨어나 빨리어를 기반으로 한 서구의 문헌학적인 연구방법을 익히기도 했다. 이들 이 귀국하자 공사립을 막론한 연구 기관에서는 불교의 원형을 추구하는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풍토를 조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극으로 인도나 스리랑카와 같은 서남아시아에서 직접 수학하는 경향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역으로 일본의 불교적 전통을 서구에 소개하기도 했다. 근대 초기 교단의 학문적 개혁은 타이쇼(1912~1926) 시기 각 종파의 불교 전서는 물론, 『대일본불교전서』, 『일본대장경』, 『대정신수대장경』과 같은 경전 편찬의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홀로 앓는 영혼이여 - 도신스님

성종(性宗) [2021-04-09] : 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토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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