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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46
普德華 2021-07-19 17:46:38, 조회 : 8, 추천 : 0
금강경 제23분, 텅 빈 마음으로 선행을 하다(淨心行善分)

이 법은 평등해서 높고 낮음이 없다.

부차 수보리야 是法(시법)이 平等(평등)하야 無有高下(무유고하)일새 是名(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로 修一切善法(수일체선법)하면 卽得(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리라.

"또 수보리야, 이 도리는 평등해서 높고 낮음이 없다. 이것의 이름이 최상의 깨달음이다.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는 경지에서 여러가지 善法(선법)을 닦으면 곧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수보리를 여러 번 부르니까 미안하신지 부처님께서 "또 수보리야."라고 하셨습니다. 미안하지만 또 부를 수밖에 없다는 부처님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是法(시법)이 平等(평등)하야 無有高下(무유고하)일새, 이 법은 평등해서 높고 낮음이 없다."는 이 구절 하나만 건져도 금강경을 공부한 보람이 있습니다. 이 법은 모든 존재가 갖고 있는 진리와 이치가 평등하다는 뜻입니다.

연필과 만년필도 평등하고, 남자와 여자도 평등하고 중생과 부처도 평등합니다. 모든 만물이 존재하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완전무결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겉모습을 보고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나이 든 사람, 젊을 사람 등을 차별합니다. 그런데 나이 들면 나이 든 대로, 젊으면 젊은 대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전부 평등하다는 뜻입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어릴 때 출가하여 강원 생활도 함께하고 중노릇을 한 스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행자라는 이름은 같지만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스님은 포교를 많이 하고, 또 어떤 스님은 한평생 선방에서 참선 수행하고, 어떤 스님은 일평생 강원에서 후학에게 경전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불법이 좋아서 열심히 정진하고 경전 공부를 하면서 가르치고 책을 만들고 펴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제 도반스님은 경전 공부에 매진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불사하고 포교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똑같습니다. 사실은 평등한 겁니다. 시법은 평등하여 무유고하다,
이 도리를 알면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한편 일체 선법을 無我(무아). 無人(무인). 無衆生(무중생). 無壽者(무수자)의 자세로 닦고 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아의식도 없고, 남이라고 하는 차별의식도 없고, 중생이라고 하는 열등의식도 없고, 수자라고 하는 한계의식도 사라진 마음자세로 선법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차원 높은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四相(사상)이 사라졌다는 것은 나와 상대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갈등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무슨 조건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부모이고
자기 자녀인데도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상을 많이 냅니다. 상을 내게 되면 조건이 붙습니다.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가
안 되기 때문에 조건이 붙게 되고 갈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사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선법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 자식조차도 제대로 선법을 행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경에서 시종일관 네 가지 相(상)을 떨쳐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상이 있는 한, 상을 내세우는 한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잠깐잠깐 평화롭고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옆에서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그 순간에 불행해집니다. 부처님의 말씀, 금강경을 공부해서 그 참 뜻이 몸에 밸 때 진정한 평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집착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수보리須菩提야 소언선법자所言善法者는 여래如來가 설즉비선법設卽非善法일새 시명선법是名善法이니라
   "수보리야, 이른바 선법이라는 것은 여래가 말하기를 ' 곧 선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선법이다'라고 하니라."

사자와 삽살개의 비유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돌을 던졌을 때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무는데, 삽살개는 날아가는 돌을 쫓아가서 물려고 합니다. 삽살개의 어리석음을 비유한 예이지만, 우리들도 삽살개처럼 습관적으로 날아가는 돌을 쫓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습관은 고질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법이라고 하면 또 선법에 집착하고 선한 일에 걸립니다. 선에 대한 잣대가 생기고, 틀이 형성되어 버립니다. 선에 대한 집착, 그 흔적을 없애줘야 됩니다.

그래서 즉비선법이 나오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단 두 글자, 즉비만 이해해도 80%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불교도 기독교도 즉비입니다. 일체가 즉비아닌 것이 없다고 이해하면 금강경의 핵심을 이해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선법일 뿐이니 선법이라 해도 선법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허망하다, 아무 것도 아니구나, 선법에도 관심 쓸 게 없구나' 해도 안 됩니다.

이 또한 치우친 소견으로 중도가 아닙니다. 선법이 곧 선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선법이라고 이해하면서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선법을 행하고, 선법을 행해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게 없으면 됩니다. 좋은 일을 수미산처럼 했지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럴 때 그야말로 여여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선행을 태양에 비한다면 우리들의 선행은 반딧불 같은 것이기 때문에 내세울게 전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깨닫고 상을 내지 않는다면 편안해집니다. 자유롭습니다. 자유라고 하면, 사람들은 외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남이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구속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애착하고 있는 것, 가족, 친지, 자기가 쌓아 놓은 재산과 명예, 공로 등에 얽매여 부자유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가벼워질 수 있어야 그만큼 자유로워집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신청곡 : 무상초(심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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