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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47
普德華 2021-07-20 10:51:11, 조회 : 7, 추천 : 0
금강경 제24분, 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福智無比分)

금강경에서 무비를 만나게 되었군요. 복과 지혜는 비교가 안 된다, 천하를 덮는 복도 반야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복이고 무엇이 지혜인가? 지혜는 없어도 복은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불교는 복 이전에 지혜를 중시합니다. 지혜는 뒷전이고 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초보 불자, 아마추어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으면 복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안 됩니다. 지혜가 있으면 복을 짓는 방법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복도 물흐르듯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이게 순리입니다. 진짜 자기 것이 됩니다. 그런데 자꾸 복만 앞세워서 생각하면 우선 당장은 좋아보여도 결국 자기 것이 못되고 다른 데로 흘러가버릴 수가 있습니다.

또한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말하는데, 자비 역시 지혜
가 바탕에 깔려야 진짜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 없는 자비는 대부분 정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을 진정으로 위하는 자비가 못 됩니다. 오히려 자비심에 기대는 의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금강경에서 지혜를 강조하는 것도 제대로 된 자비, 복덕을 이루어 주고자 함입니다.

지혜의 뿌리를 잘 심으면 복의 과실이 열린다.

수보리須菩提야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수미산왕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의 여시등칠보취如是等七寶聚를 유인有人이 지용보시持用布施하고 약인若人이 이차반야바라밀경以此般若波羅密經으로 내지사구게등乃至四句偈等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야 위타인설爲他人說하면 어전복덕於前福德으로 백분百分에 불급일不及一이며 백천만억분 百千萬億分과 내지산수비유乃至算數譬喩로 소불능급所不能及이니라

“수보리야, 예컨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산山 중에서 제일 큰 산인 수미산만한 금은보화의 무더기를 가지고 만약 어떤 사람이 널리 보시하였다하자.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이 반야바라밀경에서 네 글귀의 게송만이라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해설하여 준다면, 앞의 금은보화로써 보시한 복덕으로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어떤 산수와 비유로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수미산은 매우 크다는 뜻입니다. 수미산이 산 가운데 제일이기 때문에 왕王 자를 붙였습니다. 앞에서도 금강경의 이치, 진리의 가치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지경공덕분에서 이 경을 수지한 공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였지요.

열반경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前身인 설산동자雪山童子는 진리의 가르침 한마디를 얻기 위하여 기꺼이 몸을 던져서 보시를 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처럼 진리, 법은 생명보다 소중하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사정대경진겁假使頂戴塵劫
신위상좌변삼천身爲床坐遍三千
약불전법도중생若不傳法道衆生
필경무능보은자畢竟無能報恩者

가령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수억만 년의 세월을 지난다 하더라도, 이 육신을 부처님이 깔고, 눕는 평상이 되어 오랜 세월 부처님을 모신다 하더라도 만약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다면
결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했다 할 수 없다.

위의 게송을 가슴에 새기고 살면 진리에 보다 가까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불자들이 주로 신행하는 경전 중에 특히 인기 있는 것이「보현행원품」,「관세음보살보문품」, 원각경보안보살장입니다. 보현행원품에 광수공양廣修供養, 널리 공양을 닦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태평양 바닷물과 같이 많은 기름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것도 좋고, 온갖 물질적인 공양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공양 가운데 최고가 법공양이라고 하셨습니다. 법공양이 부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올려야 복을 받겠지요. 비싼 음식 사준다고 손님이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주어야 흡족해 하듯 부처님께서 원하시는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올립니다. 본인이 돈을 좋아하니 돈 갖다 올리고, 밥 좋아하니 밥 갖다 올립니다. 요즘 조계사 법당에 가면 불단에 생수와 음료수 등이 쌓여 있습니다.예전에는 흔치 않던 공양물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손님을 대접한다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시켜놓고, 손님은 먹는지 안 먹는지 배려하지도 않고 자기 혼자만 맛있게 먹는다면 되겠습니까?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좋아하는 법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현대의 선지식으로 유명하신 성철 스님도 수많은 경전과 어록을 공부하셨습니다. 성철 스님이 주석하셨던 백련암에 개인 장경각이 있는데, 수만 권에 가까운 책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스님은 일반 대중스님들에게는 참선을 강조하셨지만, 대부분 고학력자였던 상좌들에게는 경전 공부도 독려하셨고, 신도들에게는 절과 아비라 기도, 능엄주를 가르쳤습니다. 근기에 따라서 적절하게 지도하셨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가끔 이왕이면 근기를 분별하지 말고 신도들에게도 경전을 가르쳐서 심성을 계발하게 하고 깨우치도록 이끌어서 수준을 끌어 올렸으면 한국불교가 상당히 달라졌을거라는 생각아 듭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값나가는 칠보무더기로 보시한 것은 물질로 보시한 것이기 때문에 물질의 복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 됩니다. 분명히 그런 인연이 되고 씨앗이 되는 겁니다. 금강경에서 물질적인보시보다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하여 사찰의 갖가지 불사佛事나보시를 등한시 여기는 불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절도지어야 하고, 부처님도 조성해야 하고, 범종도 있어야 합니다. 절이 있어야 수행하고 공부할 수 있고, 절에 모셔놓은 부처님을 뵙고 신심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복을 짓겠다는 상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지혜를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불자는 물질을 지혜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 보시를 먼저 생각하는데, 불교 공부를 잘해서 물질을 지혜로 바꾸어서 법을 전해주는 게 훨씬 더 큰 공덕이 됩니다. 자기의 재산이 얼마든 간에 그것을 지혜로 전환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법을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물질을 물질로만 써버리면, 예를 들어서 만 원을 보시했으면 만 원어치의 공덕이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됩니다. 보시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물질을 물질로만 하면 단순한 보시가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법보시, 법공양, 법으로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노력이든 재산이든 법으로 전환할 수 있으면 만 원으로 백만 원, 천만 원, 수억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80 인생을 어디에 썼습니까? 법공양, 법보시 하는 데 썼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진리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수많은 중생에게 그렇게 큰 은혜를 베풀고 이익을 물려주셨습니다. 같은 돈이라도 돈의 가치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생을 살면서도 그저 사업하고 재산만 늘리는 데 힘쓰면 결국 그 과보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물질로 보시하는 길과 그 물질이 법으로 전해져서 의미 있게 보시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예전엔 간혹 금전적인 보시를 받으면 극구 사양했습니다. 인과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례에는 법공양하는 데 잘 쓰겠다고 말하고 잘 받습니다. 좀 수고스럽긴 해도 그분이 쓰는 것보다 제가 더 잘 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심부름을 한다는 마음으로 법공양에 잘 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받습니다. 꼭 어떤 채널을 통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만 원이 천만 원도 되고 수억도 될 수 있는 법보시의 길을 찾으면 됩니다.

한편 동타지옥에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대로 쓰지 못할 사람에게 보시하면 그와 같은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겁니다. 줄을 잘 서야 떡 하나라도 떨어진다고 하죠? 보시하고 복 짓는 것도 줄을 잘 서야 합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행을 하고 복을 짓는 것도 제대로 줄을 서서 했을 때 차원이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이와 같이 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금강경에 여러 차례 나오고, 다른 경전에서도 자주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사는 복에 가 있기 때문에 자꾸 복 쪽으로 치우칩니다. 하지만 지혜가 근본입니다. 지혜의 뿌리가 잘 살도록 다독여 놓으면 줄기도 잘 뻗고 꽃 피고 열매 맺는 복의 과실이 저절로 따라오는 겁니다. 이제 지혜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복지무비분에서 역력히 배웠을 것입니다.

계속 금강경 공부를 하면 안목이 높아지고 마음이 저 태평양 바다처럼 넓어져서 진리의 세계를 이해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금강경이 일러주고 있는 도리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그동안 생각했던 세속적인 복은 시시하게 보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면서 놀 때는 딱지와 구슬을 보물처럼 소중히 생각합니다. 딱지 하나, 구슬 한 개를 더 따기 위해서 온 종일 울고 웃고 한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몰래 비밀 장소에 꼭꼭 숨겨둔 딱지와 구슬뭉치를 보고 흐뭇해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것을 발견하면 부끄러운 마음에 아무도 모르게 쓰레기통에 버릴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름대로 가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마음의 눈을 열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그동안 애지중지하게 여겼던 것들이 시시하다는 것을 깨닫고 차원 높은 진리의 세계를 알게 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열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믿는 가장 큰 목적이요, 가장 큰 이득입니다.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남을 위해 보시한 복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금강경의 이치를 통달하여 반야의 지혜를 성취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미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유위와 무위의 차이이며 유루와 무루의 차이이며 유한과 무한의 차이이며 상대와 절대의 차이인 것입니다.

자신의 무한 절대의 반야를 알지 못한다면 천하를 덮을 복이 있다해도 제도를 받을 수 없고,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의 복과 무루의 지혜를 비교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신청곡 : 보현행원(김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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