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방송게시판
  윈앰프설치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48
普德華 2021-07-21 17:28:32, 조회 : 6, 추천 : 0
금강경 제 25분, 교화하되 교화하는 바가 없다(化無所化分)

앞에서도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금강경의 가르침을 풀어가는 열쇠가 바로 무상[無相]입니다. 어떤 내용일지라도 전부 무상으로 귀결됩니다.
제25분에서도 그 내용을 또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교화하였으되 교화한 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교화하되 교화하는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한문을 읽을 때 뛰어 읽는 것만 보아도 그 사람이 뜻을 알고 읽는지 모르고 읽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많이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뜻이 이해되어 뛰어 읽을 곳은 뛰어 읽게 되고, 붙여 읽을 곳은 붙여 읽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화를 읽고 뛰어서 무소화라고 읽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시종일관 법을 설한 적도 없고 중생을 교화한 적도 없다고 하십니다.

또한 여래가 중생을 교화했다고 하면 여래를 상에 집착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참 성품에는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차별이 없으므로 실로 교화하는 부처님과 교화 받는 중생이 다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토록 자주 무상을 강조하신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금강경의 가르침을 자꾸 반복해서 되뇌고, 인연 닿는 사람들에게 자꾸 들려주면 아마 어느 순간 무상의 이치를 확연히 깨닫고 상을 내지 않는 삶이 생활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매달리고 비는 습관이 문제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등汝等은 물위여래작시념勿謂如來作是念하대 아당도중생我當度衆生이라하라
그대들은 여래가 '나는 반드시 중생들을 제도한다.'라고 생각하리라는 말을 하지 말라.

수보리須菩提야 막작시념莫作是念이니
수보리야,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말라.

하이고何以故오 실무유중생여래도자實無有如來度者니라
왜냐하면 실은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한다면,

약유중생여래도자若有衆生如來度者면 여래여래가 즉유아인중생수자卽有我人衆生壽者니라
만약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한다면, 여래가 곧 나와 남과 중생과 수명이 있는 것이니라.

금강경에 같은 말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 부처 불자, 중생이 몇 번 나오는지 계산한 책도 있습니다. 어의운하도 여러 번 나옵니다. 너의 뜻에 어떠하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뜻입니다.여래는 물론 중생을 제도하지만 한 번도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중생 제도가 가장 큰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표현했는데, 우리가 하는 일이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신 것만큼 큰 일이겠습니까? 그래도 그런 일을 했다고 하는 상相에 떨어진다면 소인, 너무 작은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린느 부처님께서 많은 중생을 제도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부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실로 중생을 제도한 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중생의 실상을 가만히 꿰뚫어보니 제도할 존재도 아니고 제도할 수도 없는 이미완벽한 존재라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설사 부처님께서 좀 거들었다 하더라도 생색낼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원래 갖추고 있는 것이 억이라면 부처님께서 거든 것은 억만분의 일이 될까 말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한 번도 중생을 제도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인류사에 있어서 제일 큰 사건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모든 존재,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의 존재 가치를 제대로 꿰뚫어 보고 드러내신 분입니다. 부처님이 보신 사람의 가치 가운데 제일 멋지고 좋은 표현을 부처, 여래라고 한 것입니다. 요즘 많이 쓰는 하나님이나 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표현이 모자랄 정도의 가치를 가진 존재가 사람입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이렇지 않다면 제대로 된 성인이 아닙니다. 진짜 성인인가 아닌가는 그 안목, 가르침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신의 종이라고 하거나 업장이 많은 형편없는 중생이라고 매도하면서 무조건 따르라고 한다면 존재의 가치를 제대로 감정한 것이 아니니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의존적인 습관은 그저 매달리고 비는 것에 익숙해서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과 동떨어져 살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相病(상병)을 다스리면 본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수보리야 여래가 說有我者(설유아자)는 卽非有我(즉비유아)어늘 而凡夫之人(이범부지인)이 以爲有我(이위유아)니라

수보리야 凡夫者(범부자)는 如來說卽非凡夫(여래설즉비범부)일새 是名凡夫(시명범부)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말하는 '내가 있다'고 하는 것은 곧 내가 있는 것이 아닌데 범부들이 내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범부라는 것도 여래가 말하기를 '범부가 아니다. 그 이름이 범부일 뿐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보태줄 수도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우리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 모두의 존재의 가치를 아셨고, 우리가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위대한 성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여래가 중생을 제도했다고 하는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래가 중생을 제도했다고 말한다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어서 하열한 중생, 보통사람보다 못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금강경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깨뜨리고 떠나라는 것이 주된 가르침인데,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而凡夫之人(이범부지인)이 以爲有我(이위유아)일새니"라는 대목이 아주 중요합니다. 불자들은 我相(아상)이라는 말을 잘 쓰는데 사실 아상이라는 게 어디 있습니까? 내 몸뚱이를 가만히 분석해 보니 緣起(연기)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대(地.水.火.風), 오온(色.受.想.行.識), 육근(眼.耳.鼻.舌.身.意)등 온갖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나라는 것을 하나하나 분해해 보니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연기공, 분석공'은 소승들이 설명하는 無我(무아)입니다.

하지만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은 색즉시공 당체즉공이라 하였습니다. 당체 그대로 공이다, 그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내가 했다고 하면서 전부 나를 내세우는데, 사실 我(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승불교의 견해인 당체즉공으로 봐도 그렇고, 성문.연각의 입장에서 분석공, 연기공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보통사람들도 人生無常(인생무상)이므로 공하다고 합니다. 그 역시 我(아)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닫고 보니 아가 없으므로 여래가 설한 바, 아가 있다고 하는 것은 卽非有我(즉비유아)라, 곧 아가 없다고 계속 거듭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是名有我(시명유아)를 덧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범부들은 자꾸 아가 있다고 여기고 범부가 있다고 착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범부가 있다고 생각할까 봐 '이름이 범부일 뿐'이라고 강조하십니다. 혹을 하나뗐는데 다른 혹이 하나 더 붙는 격이 되므로 즉비범부가 또 나옵니다.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부처님께서 허물을 뒤집어쓰고 중생.부처.범부라는 이름으 지어서 붙여본 것뿐입니다. 금강경에 이런 설명은 없지만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알면 됩니다. 사람을 두고 이리 부르고 저리 부르는 겁니다. 또 그렇게 이름을 붙여 부른 덕분에 우리는 깨우칠 것이 없는 가운데에서 또 깨우침이 있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여래가 중생을 제도한다는것도 금강경에 오면 공한 소리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고민하고 갈등하고 들끓는 번뇌도 공해집니다.
그와 같은 문제가 공해지면 아무것도 없이 시원해져버립니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살펴보면 대부분 四相(사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은 본래 없는 것인데 중생들이 고정불변한 실체,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괴로워합니다. 금강경에서 無相(무상)을 으뜸으로 삼고 중생의 相病(상병)을 다스리는 것은 다 그러한 이유때문입니다.

한약은 재탕, 삼탕 달여 먹는데, 금강경에서는 20탕, 30탕도 더합니다. 계속 온갖 명제를 갖다 붙여 깨뜨립니다. 부처님께서
설명하려니까 편의상 용어를 한 가지 쓰면 사람들이 또 거기에 집착하니까 그것도 계속해서 깨뜨리는 식입니다. 금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병을 치료하는 아주 뛰어난 약입니다. 상병이 무섭다는 것, 빈말이라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입으로 익히고 귀로 익히고 손으로 써서 익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반복해서 생활화되면 상병이 고쳐집니다.

이렇듯 금강경은 철저하게 삶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원리를 파악하면 저절로 자기 자신이 비워지고, 상병이 치유됩니다. 상병을 잘 다스리면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무한한 복덕과 지혜,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해지고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열매입니다.

신청곡 : 내려 놓으시게(도신스님)


  이전글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49 普德華 2021-07-22
  다음글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42 [1] 법광(法光) 2021-07-20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