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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 新금강경 강의-049
普德華 2021-07-22 10:56:42, 조회 : 10, 추천 : 0
금강경 제 26분, 법신은 형상이 아니다(法身非相分)

부처님은 세 가지 몸〔法身,報身,化身〕으로 이야기합니다. 법신은 진리의 몸ㆍ마음의 몸으로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이고, 보신은 공덕의 몸ㆍ과보의 몸으로 깨달음의 영향력이고, 화신은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중생 교화를 위해 역사적으로 나타난 부처님입니다.

우리의 마음 자리가 법신이라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이 다 다릅니다. 작게 자신의 삶에만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고, 온 가족ㆍ온 집안ㆍ온 동네ㆍ온 나라ㆍ전 세계 등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법신일지라도 이와 같이 보신은 다릅니다. 이렇게 보신을 달리 하다 보면 여기저기에 화신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달을 비유해 보면, 달의 원형은 변함이 없지만 초승달이냐 보름달이냐에 따라 달빛이 달라집니다. 우리 인생도 만월처럼 세상을 널리 비추는 사람이 있고, 초승달처럼 겨우 신이나 찾을 수 있는 빛을 낼 수도 있고, 전혀 아무 빛도 내지 못하는 그믐달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화신化身은 천강유수천강월千江流水千江月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에 비친 달입니다.

또한 전등불을 예로 든다면, 30촉짜리 전등은 방 하나 정도는 밝힐 수 있습니다. 200촉이나 300촉쯤 되면 온 마당이 환합니다. 광장을 환하게 밝히려면 몇 킬로와트는 되어야 합니다. 전기의 비추는 성질이 법신이라면 전력의 양에 따라 밝기가 달라지는 것은 보신이고, 각양각색의 모습을 띤 전구가 화신입니다. 50대 기혼여성에 비유해보면, 주부ㆍ어머니ㆍ아내ㆍ할머니ㆍ딸 등 상황에 따라서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그 갖가지 역할이 화신입니다.

이와 같이 삼신三身을 이해하는 것에서도 삶의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로 원만한 달인데, 그 달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비추느냐 하는 것은 각자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법신은 형상이 아니라는 것도 그와 같은 말씀입니다. 참답고 여여한 진리의 본체는 형상이 아니요, 생멸도 아닙니다. 법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相일 수가 없습니다. 비록 상을 통해서 법신을 유추해 알려고 하더라도 또한 옳지 않습니다. 상을 법신이라고 한다면 전륜성왕도 진리의 당체인 여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여래는 스스로 “외형적인 모습으로 나라고 하거나 설법의 모습으로 나라고 여기는 자가 있으면 그는 사도를 행하는 사람이다. 여래는 꿈에도 보지 못한 자다.”라고 하셨습니다.

법신은 모양이 아닙니다. 그러나 늘 참되고 어디에나 나툽니다. 들에 날아다니는 새도, 청정한 산 빛에도 법신이 나타납니다. 반야의 광명ㆍ본래의 면목을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닙니다. 두두물물 자체가 법신이요, 반야의 광명입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이치가 바로 있습니다.

겉모습에 속지 말라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가이삼십이상可以三十二相으로 관여래부觀如來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대 여시여시如是如是니다. 이삼십이상以三十二相으로 관여래觀如來니다 불언佛言하사대 수보리須菩提야 약이삼십이상若以三十二相으로 관여래자觀如來者인댄 전륜성왕轉輪聖王도 즉시여래卽是如來로다

수보리須菩提가 백불언白佛言하사대 세존世尊이시여 여아해불소설의如我解佛所說義컨댄 불응이삼십이상不應以三十二相으로 관여래觀如來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른 두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서른 두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는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서른 두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 하겠구나?”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반드시 서른 두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없겠습니다.”

앞에서 견여래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는 ‘32상이 곧 여래라고 보는가’라는 뜻이고 여기에서 관여래부는 ‘32상을 마루어서 여래를 볼 수 있는가’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32상 그대로를 여래라고 하지는 않지만 32상을 통해서 여래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견見자와 觀자의 차이를 잘 알아야 합니다.

잘생긴 모습, 32상은 석가모니 부처님만의 특색은 아닙니다. 사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도 32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륜성왕은 인도인들이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군주입니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짓고 덕을 닦아서 생김새도 부처님과 똑같은 32 길상을 갖추었고, 복덕이 구족해서 천하를 다스리며 온 백성의 존경을 받는 군주입니다. 하지만 모습은 부처님과 똑같다 할지라도 이직 깨달음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32상을 미루어서 여래라고 볼 수 있겠느냐고 묻자, 수보리는 처음에 미루어서 볼 수는 있겠다고 대답했다가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 하겠구나?” 하는 부처님의 말씀에 금세 깨닫고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형상이 여래라고 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요, 형상을 통해서 여래를 이해한다는 것도 맞지 않은 말입니다. 물에 비친 달을 가지고 하늘의 달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물에 비친 것이 달이 아닐 수도 있고, 설령 진짜 달이 비친 것이라 할지라도 물에 비친 달로는 하늘의 달을 알 수 없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이 있듯 형상을 미루어서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인격을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겉모습이 그 사람은 아닙니다. 요즘 겉모습에 치우쳐 살아가는 우리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죄는 용서해도 못생긴 것은 용서 못한다.”는 말이 나돈다고 합니다. 실제로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용서하라는 네티즌들, 얼짱 거지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현실이기에 금강경을 더욱 열심히 전해야 할 사명감을 느낍니다. 법신은 철저하게 상을 떠나 있다, 겉모습에 속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또 전해 그들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에너지를 보냅니다.

상相에 미혹되지 않아야 진짜 부처님을 볼 수 있다

이시爾時에 세존世尊이 이설게언而說偈言하사대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니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육신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으려면 이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 결코 여래는 볼 수 없으리라.”

금강경의 제3 사구게로 당신의 가르침을 배우는 우리들을 최대한 존중해 주시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살아있는 부처님이 지금 우리 앞에 계신다면 우리는 전부 그 모습을 진짜 부처님으로 알고 공경할 것입니다. 아니 등상불로 조성된 부처님도 공경합니다. 등상불이 진짜 부처님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등상불을 통해 부처님을 생생하게 느끼고 신심을 내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부처님의 훌륭한 외모나 뛰어난 설법을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는 신언서판身言書判(용모·언변·문장력·판단력)을 관리를 선발하는 네 가지 표준으로 삼았고, 그 뒤에도 인재를 뽑을 때 신언사판을 중요한 선발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불경스럽긴 해도 부처님을 신언사판에 대비시킨다면 신은 부처님의 몸이고, 언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만일 모습이나 음성으로 여래를 본다면 삿된 도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모습은 형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설법을 잘하는 음성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래는 모든 것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모습을 나타내고 설법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도 얼굴 모습과 말솜씨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지혜가 뛰어나면서도 어눌한 사람이 있고, 말솜씨는 번지르르한데 속이 텅 빈 사람도 있습니다. 부처님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이러한 사구게를 통해 생명의 실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갖춰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 사구게만 수지 독송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해 주어도 큰 복덕을 누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구게가 나왔으니 제1 사구게부터 되새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제1사구게는 제5 여리실견분에 나오는데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입니다.

제2사구게는 제10 장엄정토분에 나오는데,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입니다. 육조 혜능 스님이 이 게송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는 내용은 앞에서 설명드렸습니다.

제3사구게는 제26 법신비상분의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입니다.

제4사구게는 제32 응화비진분의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연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입니다.

금강경에서도 사구게만큼은 줄줄 외워서 환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구게의 뜻만 제대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 있어도 대법사 노릇을 할수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대중불교시대에는 누구든지 불교 공부를 해서 포교사, 법사 노릇을 해야 합니다. 자기 인연에 따라서 한 사람이라도 앉혀놓고 훌
륭한 가르침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멋진 부처님 말씀입니까? 그 어느 성인과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가르침을 펼치셨으면서도 그런 것을 가지고 여래로 본다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고,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종교, 어떤 철학, 어떤 성인이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불교 경전 한 권 읽어보지 아니
하고, 불자들이 불상에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불교를 우상숭배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편견에 사로잡혀 유일신唯一 神에 매달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우상숭배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아 있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이라고 하든지 부처님의 고귀한 인생이 무르녹아 있는 음성을 듣고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고 미신을 행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 역시 상相이기 때문입니다. 상을 걷어내고 상에 떨어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상에
미혹되지 않아야 진짜 부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만 보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진아眞我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 지극한 행복, 무량대복, 한량없는 신통을 보는 것입니다. 상相을 떨치고 보면 이 모습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참으로 부처님과 금강경과의 인연은 큰 행복이고 큰 재산입
니다.

신청곡 : 구도의 길(심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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