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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46
普德華 2021-10-21 09:33:21, 조회 : 17, 추천 : 0
若彌勒이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一切衆生도 皆亦應得이니 所以者何오 一切衆生이 卽菩提相이니라

만약 미륵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을 진댄 일체중생도 모두 응당히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중생이 곧 보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강설 ; 대승불교에는 인간보리, 중생보리, 인즉시불(人卽是佛), 인불사상(人佛思想), 인자시불(仁者是佛,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말이 있다. 유마거사의 말씀과 같이 만약 미륵보살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일체중생도 모두 다 얻었다. 왜냐하면 중생 그대로가 최상의 깨달음[아뇩보리]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통쾌한 천고의 절언이다.

若彌勒이 得滅度者인댄 一切衆生도 亦當滅度니 所以者何오 諸佛은 知一切衆生이 畢竟寂滅하야 卽涅槃相이라 不復更滅이니 是故로 彌勒이여 無以此法으로 誘諸天子니 實無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며 亦無退者니라

만약 미륵이 멸도를 얻었을진댄 일체중생도 또한 응당히 멸도를 얻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필경에 적멸해서 곧 열반의 모습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열반할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륵이여, 이러한 법으로서 모든 천자들을 가르치지 말라. 실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 사람도 없으며, 또한 최상의 깨달음에서 물러선 사람도 없느니라.

강설 ; 여기서 말하는 멸도(滅度)는 열반의 경지, 깨달음의 경지이다. 만약 미륵보살이 이러한 경지를 얻었다면 일체중생도 또한 다 얻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알고 있는 중생이란 필경에 적멸해서 지금 그대로 열반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열반이 필요치 않다.

그런데 미륵보살은 이러한 점도 모르고 여러 사람들을 엉터리로 가르치는가. 일체중생이 본래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 사람도 없으며 또한 최상의 깨달음에서 물러선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무시겁(無始劫)으로부터 최상의 깨달음에서 떠나있지 아니하고 항상 노닐고 있기 때문이다.

“도란 사람에게서 한 순간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한 순간이라도 떠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道不可須臾離 可離非道].”라는 말도 있다.

彌勒아 當令此諸天子로 捨於分別菩提之見이니 所以者何오 菩提者는 不可以身得이며 不可以心得이라

미륵이여, 마땅히 이 모든 천자들로 하여금 보리를 분별하는 견해를 버리게 하라. 왜냐하면 보리란 것은 몸으로서 얻는 것도 아니며, 마음으로서 얻는 것도 아니다.

강설 ; 보리는 깨달음이며 도며 진리다. 인간이 이르러 갈 수 있는 궁극적 경지다. 그리고 사람 사람의 본래의 자리다. 모든 존재의 당체이면서 무한광대하다. 그러한 보리를 이리저리 분별해서 얻을 물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리는 몸으로 얻는다거나 마음으로 얻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그러함이기 때문에 조작이 있을 수 없다.

寂滅이 是菩提니 滅諸相故며 不觀이 是菩提니 離諸緣故며 不行이 是菩提니 無憶念故며 斷이 是菩提니 捨諸見故며 離가 是菩提니 離諸妄想故며 障이 是菩提니 障諸願故며 不入이 是菩提니 無貪着故며

적멸이 보리니 모든 상을 소멸하였기 때문이니라. 관찰하지 않음이 보리니 모든 인연을 떠났기 때문이니라. 행하지 않음이 보리니 기억하여 생각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끊음이 보리니 모든 견해를 버렸기 때문이니라. 떠남이 보리니 모든 망상을 떠났기 때문이니라. 막음이 보리니 모든 원을 막았기 때문이니라. 들어가지 않음이 보리니 탐욕과 집착이 없기 때문이니라.

강설 ; 여기에서부터는 보리의 속성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였다. 보리는 한 가지로 단정할 수 없다. 보리는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이다. 보리는 모든 상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적멸’이다. 보리는 모든 인연을 떠났기 때문에 ‘관찰하지 않음’이다.

보리는 기억하여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행하지 않음’이다. 보리는 모든 소견을 버렸기 때문에 ‘끊어짐’이다. 보리는 모든 망상을 떠났기 때문에 ‘떠남’이다. 보리는 모든 원을 막았기 때문에 ‘막음’이다. 보리는 탐착이 없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음’이다.

順이 是菩提니 順於如故며 住가 是菩提니 住法性故며 至가 是菩提니 至實際故며 不二가 是菩提니 離意法故며 等이 是菩提니 等虛空故며 無爲가 是菩提니 無生住滅故며 知가 是菩提니 了衆生心行故며 不會가 是菩提니 諸入不會故며 不合이 是菩提니 離煩惱習故며 無處가 是菩提니 無形色故며

수순함이 보리니 여를 수순하기 때문이니라. 머무름이 보리니 법성에 머무르기 때문이니라. 이름이 보리니 실제에 이르기 때문이니라. 둘이 아님이 보리니 의식과 법을 떠났기 때문이니라. 평등이 보리니 허공과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무위가 보리니 생기고 머물고 소멸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앎이 보리니 중생의 마음 움직임을 알기 때문이니라. 알지 못함이 보리니 모든 입(入}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합하지 아니함이 보리니 번뇌와 습기를 떠났기 때문이니라. 처소가 없음이 보리니 형색이 없기 때문이니라.

강설 ; 보리는 여를 수순하기 때문에 ‘수순함’이다. 보리는 법성에 머물기 때문에 ‘머무름’이다. 보리는 실제에 이르기 때문에 ‘이름[至]’이다. 보리는 의식과 법을 떠났기 때문에 ‘둘이 아님’이다. 보리는 허공과 평등하기 때문에 ‘평등함’이다.

보리는 생기고 머물고 소멸함이 없기 때문에 ‘무위’다. 보리는 중생의 마음 흐름을 알기 때문에 ‘앎’이다. 보리는 6입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알지 못함’이다. 보리는 번뇌와 습기를 떠났기 때문에 ‘합하지 아니함’이다. 보리는 형색이 없기 때문에 ‘처소가 없음’이다. 이와 같이 보리는 모든 이치다.

假名이 是菩提니 名字空故며 如化가 是菩提니 無取捨故며 無亂이 是菩提니 常自靜故며 善寂이 是菩提니 性淸淨故며 無取가 是菩提니 離攀緣故며 無異가 是菩提니 諸法等故며 無比가 是菩提가 無可喩故며 微妙가 是菩提니 諸法을 難知故니라 世尊이시여 維摩詰이 說是法時에 二百天子가 得無生法忍일새 故我不任詣彼問疾하나이다

거짓 이름이 보리니 명자가 공하기 때문이니라. 변화가 보리니 취하고 버림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지러움이 없음이 보리니 항상 스스로 고요하기 때문이니라. 매우 고요함이 보리니 본성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취함이 없음이 보리니 반연을 떠났기 때문이니라. 다름이 없음이 보리니 모든 법이 평등하기 때문이니라. 비교할 바 없음이 보리니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미묘함이 보리니 모든 법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러한 법을 설할 때에 2백명의 천자가 모두 생멸이 없는 진리[無生法忍]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강설 ; 보리는 명자가 텅 비었기 때문에 ‘거짓 이름’이다. 보리는 취사가 없기 때문에 ‘변화’다. 보리는 항상 스스로 고요하기 때문에 ‘어지러움이 없음’이다. 보리는 본성이 청정하기 때문에 ‘매우 고요함’이다. 보리는 반연을 떠났기 때문에 ‘취함이 없음’이다. 보리는 모든 법에 평등하기 때문에 ‘다름이 없음’이다. 보리는 비유할 수 없기 때문에 ‘비교할 바 없음’이다. 보리는 모든 법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미묘함’이다.

미륵보살도 이와 같이 하늘에서 은하가 쏟아지는 것과 같은 현란한 법문을 들은 기억이 있어서 도저히 유마거사에게 문병 가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면서 사양하였다.

신청곡 : 여기가 어딘가요(심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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