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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48
普德華 2021-10-23 13:52:41, 조회 : 19, 추천 : 0
慈가 是道場이니 等衆生故며 悲가 是道場이니 忍疲苦故며 喜가 是道場이니 悅樂法故며 捨가 是道場이니 憎愛斷故며

사랑이 도량이니 중생들을 평등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여삐 여김이 도량이니 지치고 괴로움을 참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도량이니 기쁘고 즐거움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도량이니 미움과 애착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강설 ; 자비희사란 불교가 자랑하는 네 가지 큰 마음이다. 사람을 무조건 사랑하며, 고통 받고 힘들고 어려운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며, 모든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하며, 무엇이든 다른 사람에게 다 주는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이 깨달음의 장소 곧 도량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설법이다. 이와 같이 도량이라는 말 속에는 불교가 거의 다 들어 있다.

神通이 是道場이니 成就六通故며 解脫이 是道場이니 能背捨故며 方便이 是道場이니 敎化衆生故며 四攝이 是道場이니 攝衆生故며

신통이 도량이니 여섯 가지 신통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해탈이 도량이니 능히 편안하여 집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방편이 도량이니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사섭법이 도량이니 중생들을 거두어 드리기 때문입니다.

강설 ; 여섯 가지 신통을 통달하여 아무런 장애가 없고, 편안하여 집착이 없는 해탈감을 누리고,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서 온갖 방편을 써서 다 건지고, 보시와 애어와 이행과 동사로써 일체중생들을 다 포섭하여 거두는 일이 이것이 깨달음의 장소인 보리도량이다. 깨달음의 장, 즉 도량이란 곧 반드시 이와 같은 불행(佛行)과 보살행이 충만해야 한다. 유마거사는 항상 이렇게 산다.

多聞이 是道場이니 如聞行故며 伏心이 是道場이니 正觀諸法故며 三十七品이 是道場이니 捨有爲法故며

많이 듣는 것이 도량이니 들은 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항복받은 마음이 도량이니 모든 법을 바르게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37도품이 도량이니 유위의 법을 다 버리기 때문입니다.

강설 ; 다문이란 불교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해서 들은 대로 아는 대로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항복받은 마음이란 아상과 같은 자아의식이 없고, 인상과 같은 차별의식이 없고, 중생상과 같은 열등의식이 없고, 수자상과 같은 한계의식이 아주 없는 경지다. 그와 같은 상이 없어야 마음을 항복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불법은 모두 무위법이며 세상사는 모두 유위법이다. 유마경이 설해질 무렵의 불법이란 37도품이 그 기본이다. 그러므로 불교공부를 많이 해서 그 마음을 항복받고 나아가서 무위법인 불법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숙지하는 일이 곧 깨달음의 보리도량이다.

四諦가 是道場이니 不誑世間故며 緣起가 是道場이니 無明으로 乃至老死가 皆無盡故며

4제가 도량이니 세간을 속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연기가 도량이니 무명에서 늙고 병듦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설 ; 앞에서는 6바라밀과 4섭법과 같은 보살의 수행덕목을 열거하여 그것이 보리도량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소승성문의 법인 4성제가 보리도량이라고 하면서 세상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세상에는 고통이 있고 고통의 원이 있고 그 고통의 소멸이 있고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다시 연각의 교법에는 연기가 있다. 연기는 모든 존재는 연기로 형성되었는데 그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12연기를 들었다. 이 연기의 교법도 또한  불교교설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역시 보리도량이라고 하였다.

諸煩惱가 是道場이니 知如實故며 衆生이 是道場이니 知無我故며 一切法이 是道場이니 知諸法空故며 降魔가 是道場이니 不傾動故며 三界가 是道場이니 無所趣故며

모든 번뇌가 도량이니 사실과 같이 알기 때문입니다. 중생이 도량이니 무아를 알기 때문입니다. 일체법이 도량이니 모든 법이 공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군을 항복받음이 도량이니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계가 도량이니 나아갈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설 ; 도량이란 깨달음의 보리도량이다. 무엇이 깨달음의 보리도량인가. 중생의 번뇌가 곧 보리도량이다. 번뇌를 떠나서 달리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은 다 번뇌에서 깨달음을 이루었다. 또 중생이 그대로 보리도량이다. 깨달음이란 곧 중생이 깨달으며 중생을 의지해서 깨닫는다. 중생을 떠나서는 깨달음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중생이 곧 깨달음의 보리도량이다. 나아가서 일체법이 다 보리도량이며 삼계가 모두 보리도량이다.

獅子吼가 是道場이니 無所畏故며 力無畏와 不共法이 是道場이니 無諸過故며 三明이 是道場이니 無餘碍故며 一念에 知一切法이 是道場이니 成就一切智故라

사자후가 도량이니 두려워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특별한 법이 도량이니 모든 허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명이 도량이니 다른 장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에 일체법을 아는 것이 도량이니 일체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강설 ; 사자후가 도량이다. 사자후란 무엇인가.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의 말씀을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들려주는 소리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바르고 참된 이치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리고 온갖 힘과 두려움 없음과 특별한 법들이 모두 깨달음의 보리도량이다. 3명과 6통도 도량이다. 아무런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일체의 법을 다 아는 것도 역시 깨달음의 도량이다. 그것은 뛰어난 지혜이기 때문이다.

如是善男子여 菩薩이 若應諸波羅密하야 敎化衆生하면 諸有所作과 擧足下足이 當知皆從道場來하야 住於佛法矣니라 說是法時에 五百天人이 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일새 故我不任詣彼問疾하나이다

이와 같아서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모든 바라밀에 맞추어 중생을 교화하면 모든 하는 일과 발을 들고 발을 내림이 마땅히 다 도량에서 온 것임을 알아서 불법에 머무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법을 설할 때에 5백 명의 천인들이 다 같이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강설 ; 보살이 중생들을 교화하는 온갖 방법이 모두 도량이다. 만약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다 도량이다. 도량이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장소다. 또한 깨달음이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불사다. 그러므로 중생을 교화하는 일은 모두 깨달음의 도량이라고 할 수 있다. 유마거사는 광엄동자의 질문을 통해서 이와 같이 도량에 대해서 대승적 관점에서 설법하였다. 이 설법을 들은 경험이 있는 광엄동자도 유마거사에게 문병을 갈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신청곡 : 우리도 부처님같이(김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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