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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50
普德華 2021-10-27 19:34:06, 조회 : 16, 추천 : 0
天女卽問하되 何謂法樂이니까 答言하되 樂常信佛하며 樂欲聽法하며 樂供養衆하며

천녀가 곧 물었다. “무엇이 법의 즐거움입니까?” 유마거사가 답하였다. “법의 즐거움은 항상 부처님을 믿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법문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대중들을 공양하는 것이다.

강설 ; 보리심을 발한 천녀들이 유마거사에게 법의 즐거움에 대해서 물었다. 법의 즐거움이란 첫째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대중들을 잘 공양 올리는 일이다. 불자로서의 기본이다. 이와 같은 삼보를 따르고 공경하는 일에 마음이 없는 사람은 불자라고 할 수 없으며 불교에 대한 기쁨도 없는 사람이다.

불교에 대해서 어느 한 구석도 기쁨이 없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딱한 사람이다. 유마거사는 천녀의 질문을 통해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고자 하였다.

樂離五欲하며 樂觀五陰이 如怨賊하며 樂觀四大毒蛇하며 樂觀內入이 如空聚하며

법의 즐거움은 5욕락을 떠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5음을 원수나 도적처럼 관찰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지수화풍 4대를 독사로 관찰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밖의 경계로부터 들어오는 온갖 감정[內入]을 텅 빈 마을과 같이 관찰하는 것이다.

강설 ; 세속의 길이 있고 열반의 길이 있다. 열반의 길이란 불교적 삶을 사는 길이다. 불교적 삶의 길이란 세속의 길과 달리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으로 누리는 즐거움을 떠나서 차원이 다른 새로운 즐거움의 길, 즉 정신적인 즐거움의 길, 안빈낙도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형성하고 있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모두 원수나 도적으로 보아 그것들을 무시하고 무관심하며 그 대신에 진리의 가르침을 즐기는 것이다.

육신을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도 마치 독사처럼 생각하여 멀리하는 것이다. 경계를 대하여 보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받아드리는 것들을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마을처럼 여기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이 마음 이 몸이 얼마나 가볍겠는가. 마치 깃털과 같고 떠다니는 구름조각과 같을 것이다.

樂隨護道意하며 樂饒益衆生하며 樂敬養師하며 樂廣行施하며 樂堅持戒하며 樂忍辱柔和하며 樂勤集善根하며 樂禪定不亂하며 樂離垢明慧하며 樂廣菩提心하며

법의 즐거움은 도에 대한 뜻을 잘 보호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중생들을 요익하게 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스승을 공경하고 봉양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보시를 널리 행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계행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욕됨을 참고 부드럽고 친화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선근을 부지런히 모으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선정에 들어 어지럽지 않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번뇌를 떠나고 지혜를 밝히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보리심을 넓히는 일이다.

강설 ; 진실로 뜻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인생의 가장 값지고 소중한 길이 무엇인가를 늘 마음에 간직하고 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도에 대한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잘 살피는 사람이다. 스승을 공경하고 봉양하고 스승에게 배우는 일은 참다운 법의 즐거움이다. 널리 보시를 행하고 계를 잘 가지고 참을 줄 알고 언제나 부드럽고 친화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다.

선근과 선정과 지혜와 보리심 등등은 불교가 자랑하는 사람의 삶에 있어서 금과옥조와 같은 소중한 덕목들이다. 이와 같은 덕목을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법의 즐거움이리라.

樂降伏衆魔하며 樂斷諸煩惱하며 樂淨佛國土하며 樂成就相好故로 修諸功德하며 樂莊嚴道場하며

법의 즐거움은 온갖 마군을 항복 받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모든 번뇌를 끊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32상과 80종호를 성취하기 위해서 모든 공덕을 닦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도량을 장엄하는 일이다.

강설 ; 모든 장애들로부터 떠난 자리, 일체 번뇌가 사라진 자리, 이것은 모든 수행자들의 꿈이요 이상이다. 설사 중생제도를 크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장애가 없고 번뇌가 없다면 진정 수행자의 즐거움이리라. 나아가서 온 세상을 진실과 정직과 예의와 도덕으로 정화한다면 그보다 더 나은 일은 없으리라.

더구나 32상과 80종호를 다 갖추는 일체 공덕을 닦을 수 있다면 진정 수행자의 즐거움이리라. 도량을 장엄한다는 것은 선량한 사람, 도덕이 높은 사람, 오로지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며 사는 보살들이 내 주변과 국토와 전 세계에 꽉 차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불국토며 도량장엄이리라.

樂聞深法不畏하며 樂三脫門하야 不樂非時하며 樂近同學하며 樂於非同學中에 心無恚碍하며  

법의 즐거움은 깊은 법문을 들어도 두려움이 없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공과 무상과 무작이라는) 3해탈을 얻어서 (수행의 결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직 때가 아닌 것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함께 수행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법의 즐거움은 함께 수행하지 않는 사람과 더불어 있어도 마음에 걸림이 없는 것이다.

강설 ; 공부를 할 때에 수준이 아주 높은 이치를 듣더라도 두려움 없이 다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면 수행자의 큰 즐거움이다. 공과 무상과 무작이라는 3해탈을 얻었는데 설사 남이 나의 그와 같은 수행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거나 알아줄 때와 그 결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않는 다면 대단한 군자며 훌륭한 수행자다.

만약 뜻이 통하는 진정한 도반이 멀리서 오거나 옆에 있다면 그 또한 기쁘고 즐겁지 않으랴. 반대로 자신의 공부를 아무도 몰라주고 전혀 이해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더라도 진정한 수행자는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야 하리라. 이러한 것이 공부하는 보살의 참 즐거움이리라.

樂將護惡知識하며 樂親近善知識하며 樂心喜淸淨하며 樂修無量道品之法이 是爲菩薩法樂이니라하니라

법의 즐거움은 악지식을 거느려 보호하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선지식을 친히 가까이하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마음에 청정을 기뻐하는 일이다. 법의 즐거움은 한량없는 도품(道品)의 법들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보살의 법의 즐거움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강설 ; 세상에는 악지식도 많다. 그 악지식들을 꺼리거나 멀리하려고 하거나 피한다면 그 또한 보살이 아니다. 그들을 잘 보호하여 선지식이 되게 하여야 한다. 불교의 정신에는 그 어떤 한 사람까지도 배척하거나 멀리해야할 사람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호하는 일이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선지식을 친히 가까이하는 것이야 말해 무엇 하랴. 보살은 늘 마음을 청정히 하기를 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 한량없는 도품(道品)의 법들이란 4성제, 8정도, 12인연, 6바라밀, 37조도품, 3승12분교, 보살52계위 등등 8만4천 온갖 수행의 가르침들이다. 이러한 공부를 항상 즐겁게 하여 게으르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회향하는 일이 수행자 보살의 진정한 법의 즐거움이다.

於是에 波旬이 告諸女言하되 我欲與汝로 俱還天宮하노라 諸女言하되 以我等으로 與此居士일세 有法樂하야 我等이 甚樂하니 不復樂五欲樂也로다 魔言居士여 可捨此女하소서 一切所有를 施於彼者가 是爲菩薩이니다 維摩詰이 言我已捨矣니 汝便將去하야 令一切衆生으로 得法願具足케하라하니라

이에 파순이 여러 천녀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들과 천궁으로 돌아가려 하노라.” 여러 천녀들이 말하였다. “우리들을 거사님에게 주었으므로 법의 즐거움이 있어서 우리들은 매우 즐겁습니다. 다시는 세속의 5욕락으로 즐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군이 거사에게 말하였다. “거사시여, 이 천녀들을 놓아주소서. 일체의 소유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이것이 보살입니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나는 이미 버렸으니 그대는 곧 데리고 가서 일체중생들에게 법의 소원이 구족하게 하여라.”

강설 ; 마군이 천녀들을 유마거사에게서 돌려받아 떠나는 광경이다. 천녀들은 이미 법의 즐거움에 대하여 설법을 들었으므로 발심까지 하였다. 그래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였으나 유마거사는 이미 발심한 천녀들이 세속으로 돌아가서 일체중생들의 법의 소원을 구족하게 하라는 당부를 한다.

於是에 諸女가 問維摩詰하사대 我等이 云何止於魔宮이니까 維摩詰이 言하되 諸娣여 有法門하니 名無盡燈이라 汝等은 當學이니라 無盡燈者는 譬如一燈이 燃百千燈하야 冥者皆明하되 明終不盡이니 如是하야 諸娣여 夫一菩薩이 開導百千衆生하야 令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되 於其道는 亦不滅盡하며 隨所說法하야 而自增益一切善法이 是名無盡燈也니라

이에 여러 천녀들이 유마거사에게 물었다. “우리들이 어떻게 마왕의 궁전에 머물러야 합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여러 동생들이여, 법문이 있으니 다함이 없는 등불[無盡燈]이니라. 그대들은 마땅히 배울지니라. 다함이 없는 등불이란 비유하자면 하나의 등불이 백 천의 등불을 밝혀서 어두움을 다 밝게 하되 그 밝음이 마침내 다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동생들이여, 한 보살이 백 천 중생들을 가르쳐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게 하되 그 도는 또한 소멸해 버리지 아니하며 설하는 바의 법을 따라서 저절로 일체법을 더욱 불어나게 하는 것이 이것이 이름이 다함이 없는 등불이니라.”

강설 ; 이 대목에서 유마경의 명언이 나왔다. 비여일등 연백천등 명자개명 명종불진(譬如一燈 燃百千燈 冥者皆明 明終不盡)이라는 말이다. 수많은 조사들이 인용하였다. 유마거사는 천녀들을 돌려보내면서 동생들은 가서 여기서 배운 법의 즐거움에 대하여 무수한 중생들을 일깨워서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라는 당부를 하나의 등불에 비유하여 가르쳤다.

불교의 전법과 포교란 곧 다함없는 등불운동이다. 한 사람이 불법을 바르게 배워서 두 사람에게 가르치고, 두 사람은 다시 네 사람에게 가르치고, 네 사람은 다시 여덟 사람에게 가르치는 형식이다. 초파일 날 기념행사로 등불을 밝히면서 맨 처음 성냥 하나로 하나의 촛불을 밝히면 하나의 촛불이 둘로, 셋으로, 넷으로, 열로, 스물로 백으로, 천으로 이렇게 번지어 온 도량을 순식간에 환하게 밝히는 것도 바로 유마경의 이 이야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汝等이 雖住魔宮이나 以是無盡燈하야 令無數天子天女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면 爲報佛恩이며 亦大饒益一切衆生이니라 爾時에 天女가 頭面禮維摩詰足하고 隨魔還宮하야 忽然不現이러이다 世尊하 維摩詰이 有如是自在神力과 智慧辯才일세 故我不任詣彼問疾하나이다

“그대들은 비록 마의 궁전에 머물더라도 이 다함이 없는 등불을 활용하여 무수한 천자와 천녀들에게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발하게 한다면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될 것이며 또한 일체중생들을 크게 요익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천녀들이 머리로써 유마거사의 발에 예배하고 마왕을 따라 궁전으로 돌아가서 홀연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와 같이 자재한 신력과 지혜와 변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에게 가서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강설 ; 사람은 그가 사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서 비록 천녀들이 마왕의 궁전에 살더라도 다함이 없는 법의 등불, 진리의 등불을 들고 곳곳을 밝힌다면 오히려 좋은 조건에 살고 있는 것보다 더욱 훌륭하게 법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부루나 존자도 수로나라는 예의도 도덕도 없는 무지막지한 나라에 가서 법을 전하지 않았던가.

천녀들이 마왕의 궁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리심을 발하게 한다면 그것이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며 일체중생들을 요익하게 하는 일이 된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고 들은 지세보살은 도저히 자신으로서는 유마거사에게 문병 가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신청곡 : 부처님 마음(지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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