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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무비스님 강설)-69
普德華 2021-11-24 16:04:17, 조회 : 10, 추천 : 0
3. 불가사의 해탈

維摩詰이 言하되
唯舍利弗이여 諸佛菩薩이 有解脫하니
名은 不可思議라

유마힐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에게는 해탈이 습니다.
이름은 불가사의입니다.

若菩薩이 住是解脫者는
以須彌之高廣으로 內芥子中(내개자중)하되
無所增減하고 須彌山王도 本相如故하며

만약 보살이 이 해탈에 머무는 이는,
수미산과 같이 높고 넓은 것을 겨자씨에 넣더라도,
더하거나 감하는 바가 없고, 수미산도 본래의 모양이 예전 그대로입니다.

而四天王과 忉利諸天(도리제천)이
不覺不知己之所入이로되

그러나 4천왕과 도리천과 같은 여러 천왕은,
자신들이 겨자씨에 들어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唯應度者라사 乃見須彌가
入芥子中하나니
是名不可思議解脫法門이니라

오직 꼭 제도될 사람은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간 것을 볼 것입니다.
이것이 이름이 불가사의 해탈 법문입니다.”

세상사 자세히 뜯어보면 불가사의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마음작용이 불가사의합니다.
사람의 몸이 훈련에 의해서 상상도 못할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역시 불가사의합니다.

요즘은 정보가 발달해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가사의한 일들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사의하지만, 한 사람이 10000권의 책을 읽는 것도 불가사의하고, 손톱만 한 작은 칩 속에 수 10만 권의 책이 들어가는 것도 불가사의하고,
한국에 앉아 미국이나 아프리카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도 불가사의합니다.
모두가 불가사의 해탈 법문입니다.

又以四大海水로 入一毛孔하되
不嬈魚鼈黿鼉水性之屬(불요어별원타수성지속)하고
而彼大海도 本性如故하며

“또한 사방의 큰 바닷물로써 한 모공에 넣어도,
고기와 자라와 도룡용, 악어와 같은 물의 권속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저 큰 바다도 본래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諸龍鬼神과 阿修羅等이
不覺不知己之所入하고
於此衆生도 亦無所嬈(역무소요)니라

온갖 용과 귀신과 아수라들이
자신이 모공에 들어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이곳의 중생도 또한 번거롭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필자가 이 자리에 앉아 100페이지의 글을 쓴 것을 1000명, 10000명 수억만 명이 복사해서 사용해도 내가 쓴 글이 조금도 손상이 있거나 잘못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림이나 음악이나 동영상도 마찬가지로 수억만 명이 복사해가도 조금도 줄어들거나 손상되지 않고 원본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역시 불가사의 한 일입니다.
큰 바닷물을 한 모공에 넣을 수 있는 것도 불가사의입니다.
왜 모든 것이 불가사의인가 하면, 모든 존재의 이치가 본래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又舍利弗이여
住不可思議解脫菩薩은
斷取三千大千世界호대 如陶家輪(여도가륜)하야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은
3000대천 세계를 끊어 가지기를 마치 질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흙을 다루듯이,

着右掌中하고 擲過恒沙世界之外어든
其中衆生은 不覺不知己之所往하며(척과항사세계지외)

오른쪽 손바닥에 두고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 밖에다 던지는데,
그 안에 있는 중생은 자신들이 멀리 가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又復還置本處(우부환치본처)하되
都不使人으로 有往來想하고
而此世界는 本相如故니라

또다시 본래의 곳에 던져 두어도 도무지 사람에게는
가고 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이 세계도 본래의 모습이 예와 같이 그대로입니다.”

질그릇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흙덩이로 그릇을 만드는데 필요한 흙을 잘라서 버리기도 하고, 더 가져다가 붙이기도 하는 일이 자유자재합니다.
그래도 그 흙은 느끼지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또 흙의 본성도 아무런 손상이 없습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공간의 문제가 불가사의하다는 뜻입니다.

又舍利弗이여
或有衆生이 樂久住世而可度者면
菩薩이 卽演七日하야 以爲一劫하야
令彼衆生으로 謂之一劫이라하며

“또 사리불이여,
혹 어떤 중생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제도될 사람에게는
보살이 7일을 늘리어 1겁을 만들어
그 중생으로 하여금 1겁으로 여기게 합니다.

或有衆生은 不樂久住而可度者면
菩薩이 卽促一劫(즉촉일겁)하야 以爲七日하야
令彼衆生으로 謂之七日이니라

혹 어떤 중생은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지 않고, 제도될 사람에게는,
보살이 곧 1겁을 줄여서 7일이 되게 하여,
그 중생으로 하여금 7일로 여기게 합니다.”

공간이 불가사의하듯이 시간의 문제도 역시 불가사의함을 밝혔습니다.
중생을 제도하는 데 필요에 따라 시간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합니다.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보살은 불가사의한 일을 다 나타내 보입니다.

又舍利弗이여
住不可思議解脫菩薩은
以一切佛土嚴飾之事로 集在一國하야
示於衆生하며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은
일체 불토에 장엄한 것을 한 나라에 모아두어
중생에게 보입니다.

又菩薩이 以一切佛土衆生으로
置之右掌(치지우장)하고 飛到十方(비도시방)하야
遍示一切하되 而不動本處니라

또 보살이 일체 불토의 중생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두고 온 시방을 날아다니며,
일체 사람들에게 두루 보여도 본래의 장소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상천외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더라도 경전의 말씀은 마술과는 다릅니다.
마술은 눈속임으로 한순간 사람들의 눈을 속여서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경전의 말씀은 모든 존재가 이미 그와 같이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의 안목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가장 차별이 심한 문제가 안목입니다.
한 가지 사실과 사물을 두고도 그 견해는 천차만별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에는 먼지 하나와 지구 하나의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깨달은 사람에게 왜 위와 같은 불가사의한 경지가 없겠습니까?

신청곡 :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지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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