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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 ②
성종(性宗) 2014-01-11 06:40:08, 조회 : 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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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고행상(釋迦苦行像, 싯다르타상).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아 간다라 지역에서 만든 불상이다. 석가모니가 출가하여 고행할 때 모습을 묘사했다.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생로병사 진리 찾아 출가한 싯닫타
[특집]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 ②

생로병사의 고통을 목격

그러던 어느 날 태자는 부왕에게 성 밖으로 외출을 나가고 싶다고 했다. 숫도다나왕은 곧 명령을 내려 궁전 앞뒤의 길을 깨끗이 치우고 태자와 함께 성을 나섰다. 당시 길가에는 구름처럼 많은 사람이 몰려나와 태자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 태자가 수레에 올라 동문(東門)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 사이에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머리에 주름투성이 얼굴을 했고 마른 장작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손에는 비록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노인의 걸음은 아주 느리고 힘겨웠다.

이 모습을 본 태자는 생각에 잠겼다.
‘늙는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구나. 생기를 잃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다들 조롱하고 싫어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늙음을 피할 수 없다. 나도 저렇게 늙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조롱과 혐오를 피할 수 없으리라.’

또한번은 남문(南門)을 나와 나들이를 할 때 병자의 모습을 보았다. 몸은 비쩍 마르고 배는 복수가 차서 부어 있었으며 숨을 헐떡이면서 고통스레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더러운 줄도 모르고 길가에서 뒹굴고 있었다.

태자는 생각했다.
‘저 사람인들 이런 아픔을 상상이나 했을까. 저 사람 역시 과거엔 젊고 건강했을 것이다.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으며 넘치는 의욕으로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병마에 저렇게 쉽게 쓰러지는구나. 나 역시 저렇게 병드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

나중에 태자는 서문(西門)을 나서다 우연히 한 무리 장례행렬을 만났다. 죽은 시신에선 피와 고름이 흘러넘쳤고 악취가 진동했다.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마저 서글프게 했다.

‘슬프다, 누가 죽음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모두 저렇게 내 곁에서 떠나가리라. 나 역시 애타는 울음을 뒤로하고 홀로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하리라. 내일도 오늘처럼 살아 있으리라고 그 누가 과연 장담할 수 있겠는가!’

태자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세상 사람들은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상관없이 모두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태자의 사색은 더욱 깊어졌다.

출가와 구도(求道)의 길

숫도다나왕은 이런 태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다시 가까운 동산으로 봄나들이를 가게 했다. 마지못해 따라나선 태자가 북문을 벗어날 무렵 한 수행자가 거친 옷을 입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 손에는 발우를 들고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천천히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강렬했고 걸음걸이는 큰 강물처럼 평온했다.

수행자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태자는 숙연해지며 저절로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좋구나 좋아! 이야말로 사람이 동경할만한 생활이로다!”

이후로도 태자는 늘 어떻게 하면 삶의 고통에서 해탈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고뇌했다. 태자의 나이 19세(29세라는 설도 있다)가 되었을 때 그는 드디어 출가하여 도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이때는 바로 2월 초파일 밤이었다. 한밤중에 조용히 일어난 태자는 야소다라의 침소를 찾아가 깊은 잠에 빠진 아내와 그녀가 낳은 아들 라훌라(Rahula: 羅喉羅)를 마지막으로 한번 들여다보고는 시종 찬나(Channa)를 깨워 말안장을 얹게 한 후 성을 나섰다. 까삘라 성의 북문을 나서면서 태자는 이렇게 다짐했다.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 이 고통과 근심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최상의 진리를 얻기 전에는 결코 나를 키워준 마하빠자빠띠와 아내인 야소다라를 찾지 않으리라.’

싯닫타는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길을 재촉했다. 아노마(Anoma) 강변의 은빛 모래 언덕에 도착한 태자는 평생 그림자처럼 자신을 따랐던 마부 찬나에게 말을 데리고 대궐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눈물을 흘리며 함께 궁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는 찬나에게 태자는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부왕께 전해다오. 나라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숲속으로 들어간 왕들은 예전부터 있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고. 사람이 병들고 죽는 일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고 내가 출가하는 이유는 이런 고통에서 해탈할 길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마친 후 태자는 상투를 장식했던 화려한 구슬을 떼어 부왕께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몸에 지녔던 장신구들을 모두 떼어 자신을 길러준 이모와 야소다라에게 전하게 했다. 태자는 또 검을 꺼내 머리를 잘라버리고 수행자와 같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찬나는 태자의 굳은 결심을 확인하고는 어쩔 수 없이 말을 끌고 궁으로 돌아왔다.

진리를 찾아서

아노마강을 건너 말라(Malla)족의 땅으로 들어선 태자는 숲 속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었다. 그런 후 숲에서 여러 수행자를 만났다. 하지만 숲속의 많은 수행자 중 수행의 지침을 제시해줄 명확한 지혜를 지닌 이는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숲 속에서 굶주리며 초췌해진 태자 앞에 부왕이 파견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모두 태자에게 환궁할 것을 권했지만, 태자의 마음은 조금도 요동이 없었고 확고부동했다. 이 모습에 감동한 5명의 신하가 오히려 부왕의 명령을 저버리고 태자를 따라 수행자가 되었다. 이들의 이름은 꼰단냐(Kondanna), 왑빠(Vappa), 밧디야(Bhaddiya), 마하나마(Mahanama), 앗사지(Assaji)였다.

눈 밝은 스승을 찾던 싯닫타는 먼저 미틸라(Mithila) 근처에 사는 선인(仙人) 박가와(Bhaggava: 跋伽)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박가와를 따르는 많은 수행자가 있었고 이들은 물과 불을 섬기고 해와 달 및 여러 정령을 숭배했다. 이들은 고행했지만 차림새와 수행법은 가지각색이었다. 나뭇가지나 풀을 먹는 사람, 쇠똥을 먹는 사람, 풀이나 나무껍질로 몸을 가린 사람, 벌거벗은 채 가시 위에서 자는 사람 등등.

싯닫타는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후 물었다.

“당신들이 이런 고행을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그러자 박가와 선인은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싯닫타는 “천상에 올라가면 비록 즐거움은 있겠지만 그 복도 언젠가는 끝나는 날이 있을 텐데, 그 복을 다 누리고 나면 다시 떨어져 내려와 생사의 윤회를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결국 고행을 통해 고통스러운 결과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질문했다.

종일 박가와와 토론하며 하룻밤을 보낸 싯닫타는 그의 수행법이 자신이 찾는 길이 아님을 깨닫고는 곧 그곳을 떠났다.

이번에 싯닫타는 웨살리(Vesali) 인근의 유명한 선인(仙人) 알라라깔라마(Alarakalama)를 찾아갔다. 당시 그의 명성은 아주 대단했다. 도시 근교에 자리 잡은 그의 사원은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수많은 참배객으로 북적였다. 주변 나무 그늘에는 그를 따르는 삼백여 명의 수행자들이 선정에 잠겨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알라라깔라마는 직접 싯닫타를 맞이하며 고통스러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날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알라라깔라마는 사람이 생사윤회의 고통을 겪는 이유는 무지(無知) 때문이라고 보았고 바른 수행으로 지혜를 얻어야만 고통의 굴레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총명한 싯닫타는 오래지 않아 선인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했고 스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진정 수승한 지혜와 원만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때문에 싯닫타는 알라라깔라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라자가하와 빔비사라왕과의 인연

싯닫타는 이번에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강가(Ganga)강을 건너 마가다(Magadha)국으로 향했다. 마가다국의 라자가하(Rajagaha: 王舍城) 근처에 거처를 마련한 후 싯닫타는 위엄 있고 거룩하며 겸손한 수행자로 인근에 신비한 소문이 퍼졌다.

이 소문을 들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Bimbisara: 頻婆婆羅) 왕이 직접 수레를 몰고 싯닫타를 찾아왔다. 빔비사라왕은 싯닫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서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왕은 헤어지면서 “당신의 소원대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다면 가장 먼저 이 도시를 찾아와 저를 구도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나중에 37년간 이어진 빔비사라왕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라자가하는 빔비사라왕의 후원으로 혁신적인 사상가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브라만들이 중시하는 전통의 웨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사상을 주장했다. 당시 사람들은 직접적인 체험과 자유로운 사고로 무장한 이들을 가리켜 사문(沙門)이라 불렀다. 하지만 바라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비판하는 이들을 ‘발꿈치에서 태어났다’며 천시했고 심지어 이들을 후원하는 사람들까지 경멸했다.

어쨌든 라자가하는 당시 유명한 사문들의 집합장소였으며 특히 뿌라나깟사빠(Puranakassapa), 니간타나따붓따(Niganthanataputta), 웃다까라마붓따(Uddakaramaputta) 등이 유명했다.

싯닫타는 이들을 찾아가 인사하고 또 일부 것들을 배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웃다까라마붓따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이 곧 해탈이라고 말했지만 싯닫타가 직접 그 경지에 도달한 결과 이 역시 삼계(三界)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진정한 해탈이 아니었다.

결국 싯닫타는 라자가하에도 더 이상 의지할만한 스승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고행의 길에 올랐다.  


싯닫타의 고행

싯닫타는 네란자라강(Neranjara: 尼連禪河) 서쪽에 위치한 우루웰라(Uruvela) 근처의 숲 속으로 들어가 홀로 수행했다. 그는 다른 수행자들이 사용하던 다양한 방법을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사람들과의 모든 왕래를 끊고 호흡을 멈추는 고행, 음식을 끊는 고행 등을 극한까지 시도하면서 그의 몸은 갈수록 수척해졌다. 숲 속 수행자 중에서 가장 더럽고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의 모습에 다른 브라만 수행자들은 사문 고따마를 검둥이라고 놀렸고 심지어 지나가는 목동들조차 더럽다며 욕했다.

이렇게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행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는 얻지 못했고 해탈의 길은 얻을 수 없었다. 싯닫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처럼 격렬하고 모진 고행에도 불구하고 해탈은 찾아오지 않았다. 해탈은 커녕 성스럽고 거룩한 진리의 실마리조차 얻지 못했구나. 그렇다면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싯닫타는 문득 어릴 때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든 순간이 떠올랐다. 당시의 선정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새로운 길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선정에 들자면 고행으로 망가진 육체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싯닫타는 고행을 중단하고 음식을 먹기로 결정했다.

음식을 얻자면 마을로 나가야 하고 그러자면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다. 지금 걸친 누더기로는 속살조차 가리지 못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묘지에 버려진 옷들을 주워 우루웰라를 찾아가 몸을 씻었다. 시체의 피고름이 묻었던 더러운 옷을 빨고서 강변 그늘에서 말리자 출가자에게 어울리는 분소의(糞掃衣: 누더기 옷)가 되었다.

발우도 없이 인근 마을로 들어선 싯닫타는 미리 토지신의 점화를 받은 수자따(Sujata: 善生)의 우유 죽 공양을 받았다. 그가 우유죽을 받아 맛있게 먹자 그를 따르던 5명의 수행자는 고따마가 고행을 버리고 타락했다고 비난하면서 그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정각(正覺)을 이루다


싯닫타는 다섯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본 후 홀로 네란자라강에서 십리 정도 떨어진 삡팔라(Pipphala: 菩提樹)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었다. 당시 길가에서 꾸사(Kusa)풀을 베고 있던 솟티야(Sotthiya 吉祥)란 남자가 곱고 깨끗한 여덟 다발의 풀을 골라 방석을 만들어주었다. 싯닫타는 나무 주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는 나무를 향해 공손히 합장한 후 반석 위에 풀을 깔고 동쪽을 향해 앉았다.

몸을 바르게 세우고 호흡을 가다듬고 그는 이렇게 맹세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이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없어져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을지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싯닫타는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용기로 대도(大道)를 구하고자 했다. 이렇게 48일이 지난 12월 7일 밤 여러 악마들(다시 말해 마음속의 망상들)이 침범해왔다. 싯닫타는 위력을 드러내 마군(魔軍)을 항복시키고 다시 입정(入定)에 들어갔고, 진리를 사유하며 마침내 해탈을 얻었다. 초저녁에 삼세(三世)의 실상을 보고 삼세의 인과를 투철히 보았으며 누락 없는 바른 지혜를 획득했다. 49일째 되는 날(12월 8일) 새벽 별이 뜰 때 문득 크게 깨달아 일체 지혜를 증득하고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성취하니 이때 그의 나이는 30이 넘었다.

불교 경전의 기록에 따르면 싯닫타가 도를 깨달았을 때 대지가 진동하고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찾아와 하늘 꽃을 뿌리고 천악(天樂)을 울리며 석가모니가 불도를 성취한 것을 찬송했다.

도를 깨달은 석가모니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
번뇌의 흐름도 사라졌다.
더 이상 태어나는 길을 따르지 않나니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한다.”


글/ 임영철(동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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