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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 ③
성종(性宗) 2014-01-11 06:44:30, 조회 :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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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법륜인(轉法輪印) 불좌상.페사와르 출토. 2~5세기경. 전법륜인은 석가모니가 설법할 때의 수인으로,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뜻이다.

당시 석가모니는 누구에게 가장 먼저 진리를 전할까를 고민했다. 예전 자신의 스승이었던 알라라깔라마는 불행히도 7일 전에 사망했고 웃다까라마붓따도 어젯밤에 사망했다. 이때 문득 지난 오랜 세월 험난한 수행의 길을 함께 걸었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떠올랐다.

천안(天眼)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지금 사슴동산(鹿野苑: Migadaya)에서 여전히 고행하고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들을 구도하리라 결심하고 곧장 사슴동산으로 향했다. 중도에 만난 여러 상인으로부터 공양을 받았고 또 이들의 청을 받아들여 부처에게 귀의(?依)하게 했다. 석가모니는 이때부터 중생을 널리 제도하기 시작했고 이들 상인은 최초의 남자 재가 신자인 우바새(優婆塞)가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슴동산에 이르자 전부터 태자를 모시던 꼰단냐(Konda??a: ?陳如), 왑빠(Vappa: 跋波), 밧디야(Bhaddiya: 跋陀羅闔), 마하나마(Mahanama: 摩詞那摩), 앗사지(Assaji: 阿舍婆闔 또는 馬勝) 등 다섯 사람은 멀리서 그의 모습을 본 후 사문의 청정한 고행을 저버린 인물이라 여기며 일어나서 맞이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막상 석가모니 부처님이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공경한 예를 올리며 앉을 자리를 준비하거나 발우를 받들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들의 마음을 알고 물었다. “그대들이 나를 볼 때 일어나서 맞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지금은 왜 또 나를 받드는가?”

석가모니의 타심통(他心通: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신통)에 다섯 사람은 마음속 깊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어서 오십시오, 고따마. 먼 길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수련에 진보가 있으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석가모니는 그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그대들은 위없이 존귀한 여래(如來)의 성을 함부로 불러선 안 된다. 비록 내 마음은 텅 비어 아무런 분별도 없지만 그대들의 이런 말은 장차 좋지 못한 업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들에게 “그대들은 작은 지혜로 나의 도가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따지지 마라. 나는 이미 고통과 즐거움을 버렸고, 중도(中道)에서 행하며 내심은 조용하고 생로병사의 고통과 근심에서 멀리 벗어나 정각을 이뤘다.”라고 말했다.

다섯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쁨이 용솟음쳤다. 석가모니는 이들 다섯 사람이 이미 회개했음을 아시고 도를 깨달은 후 최초의 법륜을 돌렸다. 그들에게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의 수행법문을 말했고 그들이 더러움을 벗어나 과위를 증득하게 했으며 이들을 최초의 불제자(佛弟子)로 삼았다. 인간 세상에 최초의 비구(比丘)가 탄생한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세간에 삼보(三寶)가 두루 갖춰지게 되었다. 삼보란 불교의 전문 용어로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를 가리킨다. 불보란 부처님이요, 법보란 법이며, 승보란 승가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최초로 구도 된 다섯 비구를 지칭한다.


널리 중생을 제도

석가모니 부처님은 다섯 비구를 제도하고서 잠시 사슴동산에서 안거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와라나시(Varanasi)의 장자 야사(Yasa: 耶舍)와 그의 친구 50여 명이 세존께 귀의했다. 야사는 여섯 번째 비구가 되었으며 그의 모친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삼보에 귀의해 최초의 우바이(재가 여성신도)가 되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룬 첫해에 사슴동산에서 직접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60명의 비구는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첫 번째 안거를 끝내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법을 널리 전할 사명을 부여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되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가지 말고 혼자서 가도록 했다.

이처럼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방으로 제자를 파견해 중생을 제도하게 했으며 또 직접 나서 중생을 제도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루웰라의 깟사빠를 구도하기 위해 찾아갔다. 당시 그에게는 500명의 제자가 있었으며 바라문의 전통에 따라 웨다를 읽으며 성스런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다. 부처님은 사나운 독룡(毒龍)을 제압하는 등 여러 가지 신통을 발휘해 결국 그를 구도했다. 또 그의 500 제자들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의 갈 길을 선택하게 하자 모두 머리를 깎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뒤이어 우루웰라 깟사빠의 동생인 나디깟사빠(Nadikassapa)와 그의 300 제자, 셋째 동생인 가야깟사빠(Gayakassapa)와 그의 200 제자가 모두 부처님께 귀의했다. 당시 깟사빠 형제는 마가다국에서 가장 큰 교단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동시에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한 사건은 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때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름이 인근에 널리 전해졌다.

석가세존이 아직 도를 이루지 못했을 때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과 한 약속이 있었다. 언젠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면 가장 먼저 라자가하를 찾아와 자신을 구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에 부처님은 천여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라가가하로 향했다. 빔비사라왕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하며 직접 부처님일행이 머무는 랏티와나 숲까지 찾아와 설법을 듣고 기뻐하며 귀의했다. 그는 또 대나무 숲 속에 석가모니 부처님 일행이 머물 수 있는 숙소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竹林精舍 Veluvanarama)이다.


사리뿟타와 마하목갈라나의 귀의

이때 브라만 중에 사리뿟타(Sariputta: 舍利弗)와 마하목갈라나(Mahamogallana: 大目?連)라는 두 명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인물이 있었다. 이들은 각자 100여 명의 제자를 거느리며 수행하고 있었으며 인근에서 명망이 높았다. 어느 날 사리뿟타가 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앗사지(Assaji) 비구를 만나보니 위엄이 있고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마음속으로 공경하고 부러운 마음이 든 사리뿟타는 앗사지 비구에게 스승이 누구이며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다.  

앗사지는 “석가족 출신의 위대한 사문이 계시는데 그분의 지혜와 신통은 누구도 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막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운 것이 얕으니 스승님의 넓고 깊은 가르침을 그대에게 제대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사리뿟타가 제발 요점이라도 알려달라고 간청하자 앗사지 비구가 게송을 읊었다.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네.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

사리뿟타가 이 말을 듣고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찾고자 했던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과 동고동락하며 함께 불사(不死)의 도를 얻기로 맹세한 목갈라나를 데리고 함께 세존께 귀의했다.

이들 두 사람이 귀의한 후 석가모니 부처님은 학식이 뛰어난 두 사람을 아주 중시했고 이들은 부처님의 교단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인근에 명망이 높았던 사리뿟타와 마하목갈라나의 귀의에 힘입어 라자가하의 수많은 상류층 자제들이 줄줄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찾아와 귀의했다. 그 외 마가다국의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기존의 권위를 내던지고 진리를 찾아 부처님께 귀의했다. 빔비사라왕도 독실한 우바새가 되어 승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승가의 모순과 계율의 제정

하지만 일부 제자 중에는 나중에 들어온 두 비구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며 불평하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당시 교단에는 깟사빠 형제가 이끌던 1000명의 비구에 사리뿟타와 마하목갈라나가 이끌던 250명의 비구가 더해져 모두 천이백오십 명의 비교적 큰 승가로 변모했고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존재하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각종 마찰이 불거졌다.

각자 출신 성분과 배운 정도가 다르고 종족에 따라 관습이 다르다 보니 서로 오해가 생기기 쉬웠고 일부 비구들은 수행자의 기본예절조차 지키지 않았다. 또 승가의 급속한 성장에 두려움을 느낀 외도(外道)들이 몰래 사람을 잠입시켜 음해하기도 했다.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깨워주었다.

“모든 악을 저지르지 말고 여러 선을 봉행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승가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출가자의 자질을 유지하기 위해 비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족계(具足戒)를 받도록 하고 하나하나씩 계율을 제정했다. 우선 구족계를 받으려면 자신의 화상(和尙: 출가한 지 오래되고 수행을 많이 한 비구)을 선정해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서로 보살피고 돌보게 했다. 이렇게 스승인 화상의 보증이 있어야만 비구가 될 자격이 있었고 또 승가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승가의 동의를 구하게 했다.

또 승가 내부의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 구족계를 받은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했다. 미성년자는 출가는 할 수 있었지만 정식 비구로 인정하지 않았고, 스무 살이 넘는 성인에게만 구족계를 주었다. 나이가 어린 출가자들은 사미(沙彌)라 하여 비구의 지도와 보살핌을 받게 했다.

이런 식으로 승가에는 점차 계율의 제정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빠띠목(Patimokkha: 波羅提木叉)이라 한다.


글/ 임영철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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