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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조계종의 예불에서 신중단을 향해 반야심경을 외우게 된 이유
성종(性宗) 2015-02-21 06:43:48, 조회 : 1,928
신중단과 반야심경

김 현준(불교신행연구원 원장)

신중과 신중단 의례

사찰에서의 새벽 예불이나 저녁예불 시 佛壇(불단)을 향한 예배가 끝나면 모든 대중들은 神衆壇(신중단)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한 번의 목탁소리에 한 글자씩을 외우며 般若心經을 외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행신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
그러나 이 반야심경을 신중단을 향해 읊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1948년 이전까지는 전국 어느 사찰에서도 신중단을 향해 반야심경을 외우지 않았었다. 그 당시 신중단 예불은 부처님 전에서처럼 다게(茶偈)로 시작되었다.

청정한 명다의 약은 능히 혼침의 병을 없애나이다.
오직 바라옵건대 옹호신중께서는 이곳에 납시어 어여삐 거두어주소서.
淸淨茗茶藥 能除病昏沈
唯翼擁護衆 願垂哀納受

그리고 이 다게에 이어 신중탱화 속에 계신 호법 신장(護法神將)들을 향해 세 번의 지심귀명례를 올린다.

至心歸命禮 金剛菩薩明王衆
至心歸命禮 梵釋四王 日月諸天衆
至心歸命禮 下界當處一切護法善神等衆

이 함축예배의 글을 자세히 풀이해보자.
“지극한 마음으로 금강신과 보살님과 명왕님께 귀명례 하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대범천과 제석천, 사천왕과 일월 등 모든 하늘의 신중들께 귀명례 하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하늘 아래 여러 곳에 계신 일체의 호법선신들께 귀명례 하옵니다.”

곧 귀명례의 대상이 되는 이와 같은 神衆들은 神衆壇의 기본을 이루는 華嚴神衆(화엄신중)들이다.

이 華嚴神衆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중에서 가장 위력이 뛰어난 분들로 화엄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 어떠한 神도 華嚴神衆(화엄신중)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서 보시고 있는 華嚴神衆이 불교의 발생이나 화엄경의 탄생과 동시에 이루어진 神衆은 아니다.

초기의 神衆은 印度의 土俗神 중에서 부처님의 감화를 입어 불법을 지키겠다는 서원과 함께 불교의 호법신으로 그 역할을 바꾼 39位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불법이 中國을 거치고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불교의 순수 호법신과 中國및 우리나라의 土俗神이 다양하게 첨가되어 모두 104位의 神衆으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104위의 華嚴神衆 속에는 神衆들의 格에 따른 군락이 잇다. 그 군락은 크게 상. 중. 하의 3단으로 구별 지어진다.

上壇은 부처님의 화현으로서 원만한 신통을 나타내는 대예적금강성자(大穢跡金剛聖者)를 중심으로 한 8대금강. 4대보살. 10대명왕 등의 23位로 구성되어있다. 이분들은 과거의 다른 경력 없이 순수한 상태에서 불교에 귀의하고 수행한 다음 그 원에 의해서 호법신중이 된 분들이기 때문에 상단에 배치된 것이다.

中壇의 神衆은 色界의 높은 하늘에 계신 대법천왕과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에서 사바의 중생을 다스리는 제석천왕을 중심으로 하여 4천왕. 일월궁(日月宮)의 天子. 밀적금강(密跡金剛). 마혜수라천왕. 변재천. 공덕천. 칠원성군. 팔부신중 등 38位의 神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神의 이름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印度 고유의 神들이며 中國사람들이 신봉하였던 하늘에 있는 神들이 다소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下壇의 神衆은 호계대신(護戒大神). 복덕대신(福德大神)을 비롯한 토지신. 도량신. 산신. 강신. 측신. 조왕신 등 43位의 神으로 구성되어 있다. 43位 모두가 中國과 우리나라의 土俗 神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神들이다.

이상의 상. 중. 하단 神衆들께 예불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 번씩의 지심귀명례를 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 3단의 神衆들 속에서 불교가 그 어떤 신앙의 대상. 공포의 대상까지도 버리지 않고 佛法속으로 이끌어 들였다는 점과 그 神들이 불법을 보호하는 새로운 권능 속에서 다시 깨어났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실로 부처님께서는 그 어떠한 권능을 지닌 존재도 경계하거나 미워하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는 완벽하게 깨달으신 분. 眞理 그 자체의 몸을 완벽하게 회복해 가진 분이다. 완벽한 眞理의 몸은 걸릴 것이 없다.
언제 어디에서나 자재롭게 진리를 발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眞理의 몸 그 자체가 되신 부처님에게 모든 神들은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眞理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중생들의 소원 어느 한 부분에 순응하고 福을 주는 권능을 지닌 神들은 이미 부처님과의 경쟁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 神들 역시 福과 힘을 조금 더 지닌 衆生일 수밖에 없다. 그들도 慈悲 行을 실천하고 참된 眞理를 깨달아 마침내 부처를 이루어야 할 힘 있는 衆生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교화하셨다. 오히려 힘이 있고 개성이 강한 그 神들을 불법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煩惱가 짙은 衆生을 제도하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 神들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하였으며 나아가 그들이 지닌 힘으로 불법을 지키겠다는 원을 발하며 호법신으로 탈바꿈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神衆들을 모신 神衆壇에 세 번의 지심귀명례를 한 다음 끝맺음을 하는 게송을 다시 외웠다.

옹호성중의 지혜는 거울처럼 밝아서
사대주의 사람들 일을 한 생각에 다 아시고
중생을 갓난아이처럼 불쌍히 살피시니
제가 이제 정성 다해 예배드리옵니다.

擁護神衆慧鑑明 四洲人事一念知
哀愍衆生如嫡子 是故我今恭敬禮

이 게송에서와 같이 神衆은 단순히 힘센 존재가 아니라 불법의 큰 바다에 뛰어들어 지혜를 닦아 갖춘 분이요 자비심으로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분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앞뒤의 게송과 가운데의 3배로 이루어진 神衆壇예배는 현재도 대한불교조계종을 제외한 여러 종단에서 그대로 행하고 있다. 그러나 조계종은 달랐다. 1948년 하안거를 기점으로 하여 이 예배는 차츰 사라졌고 그 자리를 반야심경 독송이 메웠던 것이다.

이제 이 변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신중단에서의 반야심경 독송

1948년 문경 회양산 봉암사에는 청담(淸潭). 성철(性撤). 향곡(香谷). 자운(慈雲) 등의 큰스님들과 젊은 수좌들이 모여 結社를 하고 있었다. 그때 큰 스님들의 제안으로 조선시대 5백년의 억불정책과 일제36년 동안 거의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보살계를 설하기로 하고 자운스님을 전계사로 추대하여 범망경보살계산림(梵網經菩薩戒山林)을 개최하였다. 그때만 해도 스님네가 신도들과 맞절을 하고 神衆壇이나 여러 神像 앞에서 절을 하던 시절이었다.

자운스님께서 법상에 올라 10중 48경계의 한 조목을 설하시던 중 제40경계의 “출가인의 법은 국왕을 향해 절하지 아니하며 부보를 향해 절하지 아니하며 육친에게 경례하지 아니하며 귀신에게 절하지 아니 한다(出家人法 不向國王禮拜 不向父母禮拜 肉親不敬 鬼神不禮)”는 대목에 이르렀다. 그때 성철스님께서 손을 드시고 말씀하셨다.

“법사님. 법사님. 죄송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대목을 한 번만 더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자운스님께서 그 대목을 또박또박 다시 읽으시자 성철스님이 말씀하셨다.

“모두 들으셨지요. 출가사문은 국왕과 부모와 귀신에게도 예배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재가인 들과 맞절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출가인의 위의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보살계법을 설하고 우리가 계를 받는 것은 이 모두를 그대로 실천하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대중 가운데 스님 네는 모두 불단 가까운 쪽의 상판에 앉으시고 신도들은 바깥쪽인 하판에 앉으시오.
그리고 신도들은 스님들께 3배를 하십시오. 출가비구는 如法하게 거동을 가져야 하고 신도가 그 누구이든지 재가 불자들에게 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神衆壇 이나 山神壇 등 神을 모신 곳을 향해 빌거나 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 법대로 하기로 합시다.”

성철스님의 제안에 자운스님. 청담스님. 향곡스님 등 큰스님 네들이 모두 찬성하였고 그 자리에 모였던 신도들이 스님들께 3배를 올림으로써 그 이전까지 僧俗(승속)이 맞절을 하던 관습을 불식하였다.
그다음. 당시 불교의 정법회복을 주창하며 전국의 뜻있는 수좌들이 결성한 해인총림으로 청담스님과 몇몇 스님이 가서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인 효봉(曉峰)스님께 봉암사에서의 결의를 말씀드렸으나 선뜻 인가(印可)를 하지 않으셨다.
스님네가 신도들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용납되지만 神衆壇 에 지심귀명례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신중의 중심이 되는 대예적금강은 여래의 화현이고 8대금강과 4대보살. 10대명왕은 모두 불보살의 경지에 있는 분이므로 예배를 올린다고 하여 조금도 모순될 것이 없다.”는 말씀과 함께 ⋯⋯

실제로 神衆作法때 104位 神衆 가운데 첫 번째로 봉청 하는 문장은 “봉청여래화현원만신통대예적금강성자(奉請如來化現圓滿神通大穢跡金剛聖者)”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담스님은 끈질기게 설득을 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계를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비록 대예적금강성자가 부처님의 화현이라 할지라도 그 분은 이미 神衆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中壇과 下壇의 神衆은 그야말로 각종 神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정법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더욱이 출가사문은 부처님의 뒤를 이을 미래의 부처가 아닙니까? 왕자가 비록 왕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뒷날 왕위를 이어 받을 것을 생각하여 만백성이 경례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출가사문의 위의를 갖추어야 할 요긴한 때입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이와 같은 설득에도 효봉 스님은 응락 하지 않으셨다.
“이치야 그렇지만 우리 스님 네들에게 무슨 실력이 있어야지.”
마침내 청담스님은 방장실로 들어가 오체투지(五體投地)하고 다시 말씀하셨다.

“스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제 이마를 이 방바닥에서 떼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오체투지를 한 채 움직이지 않는 청담스님을 보고 효봉 스님은 마침내 허락을 내리셨다.

“그래. 대중공사를 하여 결정하도록 합시다.”

마침내 효봉 스님께서 주재한 대중공사에서 대중스님들이 결의함으로써 해인사의 큰 법당에서는 神衆壇에 대한 예배가 폐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예불문 대신 반야심경 1편을 독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한 가지 사항은 神衆壇의 神衆이 雜神(잡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神衆壇의 神은 정법으로 무장한 神이다. 장차 부처를 이룰 수는 있지만 아직은 힘이 미약한 스님 네가 神衆壇에 절하지 않는 원리는 한 나라의 왕자가 그 나라를 지키는 기둥인 장군들을 존경하고 의존할지언정 그들에게 경배하지 않는다는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따라서 神衆들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장차 부처가 될 法王子다운 면모를 갖추고 더 큰 힘을 길러야 하며 法王子답게 계행을 청정하게 하고 선정과 지혜를 길러야 한다.

이제 왜 반야심경을 神衆壇을 향하여 독송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것은 바로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반야심경이 팔만대장경 중에서 가장 간결하면서도 깊은 뜻을 간직한 경전이며 독송용으로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神衆들에게 이 반야심경을 들려줌으로써 더욱 반야의 지혜를 기를 수 있도록 하고 바라밀(해탈)을 완성시키게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셋째는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는 반야의 空思想(공사상)을 깨우치고자 함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한 가지 요긴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반야심경을 피상적으로 외울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새기면서 독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의 뜻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입으로만 외우거나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煩惱에 휩싸여 그 뜻을 새기지 않게 된다면 神衆壇을 향한 반야심경의 독송은 그 어떠한 法門도 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神衆을 향해 부처님의 법문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煩惱妄想(번뇌망상)을 전하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어찌 神衆을 위한 법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스스로의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는 반야의 독송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름지기 우리 불자들은 神衆壇을 향한 般若心經의 독송을 통하여 자타의 마음을 맑혀가야 한다. 우리 속에 있는 크고 넓고 깊은 마하의 마음을 맑히고 모아서 반야의 빛을 발현시키면 우리가 있는 이곳이 해탈의 언덕(바라밀)으로 탈바꿈 한다.

조석으로 神衆壇에 般若心經을 독송하면서 우리들 스스로를 일깨우자.
“마하심(摩訶心)을 반야하면 바라밀에 도달한다.” 우리 모두 참된 예불을 통하여 참사람으로 깨어나고 참된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리라.

-법공양 2009년 9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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