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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佛敎)란?
성종(性宗) 2015-09-08 08:43:30, 조회 : 647
불교란?
佛:부처님 또는 깨달은 사람.
敎:가르침
깨달은 사람(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불교인이란?
깨달은 사람. 즉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사천법문을 듣고 뭔가 깨달음이 있어야 진정한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佛敎)=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깨달은 사람(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불교는 부처님께서 깨달은 내면적, 정신적 체험에 의거한 종교체계로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보편종교 중의 하나다.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신념의 체계는 지역과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보편적인 종교체계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인도에서 출발해 동아시아는 물론 전지구상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불교는 정교한 교리체계와 실천체계로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란 말의 의미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불교는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불(佛)이란 불타(佛陀)의 준말로 붓다(Buddha), 즉 ‘깨달은 이’ 부처님을 가리킨다.

교(敎)란 교리, 교학 등의 의미로 가르침, 가르침의 내용을 의미한다.
불교란 ‘부처님 가르침’이란 의미지만, 다르게 설명되기도 한다. ‘부처가 되는 가르침’이란 뜻도 있다.

이 정의는 부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른 정의로, 대승불교의 가르침에서 볼 수 있듯 모든 인간들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을 ‘고유명사’가 아닌‘보통명사’로 이해하는 입장에서의 정의다.
결국 불교의 언어적 의미는‘부처님 가르침’,‘부처가 되는 가르침’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삼보에 바탕을 둔‘종교문화현상’
인도라는 지역적 한계 뛰어넘어 부처님 가르침 따르는 보편종교

하지만 이러한 언어적 정의는 불교란 말의 의미를 풀이한 것으로, 오늘날 보이는 종교적. 문화적 현상으로서 불교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정의는 불교의 교학적인 용어인‘법(法)’으로 표현되듯, 우리가 불교란 말을 생각할 때는 보다 근원적인 불교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종교체험에 의거하고, 그 종교 체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따르려는 사람들에 의한 문화적 현상이다.
근원적 종교 체험을 보여준 부처님과 그 종교체험의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가르침,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엮어내는 종교. 문화적 사회현상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며, 종교일반에서 말하는 교주와 교리와 교단을 지칭한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내용으로, 불교 또한 삼보를 근본으로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삼보는 불교의 독특하고 특징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불교의 핵심내용이다. 따라서 이 삼보에 근거해 우리는 불교를‘삼보에 의거하는 문화적 현상’또는‘삼보를 바탕으로 하는 종교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속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인간의 삶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인간의 정신적 내면적 고통을 덜어주고자 한 문화체계가 종교다.
그러나 종교는 발생지역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구성요소 상 다양한 차이를 보여준다.

불교라는 종교현상 역시 발생지인‘인도’라는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인도는 불교이외에도 다양한 종교가 생겨났으며, 오늘날에는 힌두교가 대표적인 종교가 돼 있다.
불교는 물론 인도라는 지역을 뛰어넘어 전 세계의 보편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편종교라 함은 인간 내면의 보편적 정신체계에 부합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불교의 어떠한 점이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체계에 부합될까.
‘삼보’라는 근본적 요소를 통해 불교의 보편성을 찾을 수 있다.
세계의 모든 불교문화에서 보이는 공통된 삼보의 내용을‘주지삼보(住持三寶)’라 말하듯, 삼보는 불교의 보편성과 체계성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요소이자 독자성을 보여주는 말이다.

불교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자녀의 합격과 남편의 사업을 도와주는 기복으로, 학문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고차원의 형이상학으로,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극락왕생으로, 현생과 내세를 초월하여 해탈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위없는 가르침으로 나타난다.

부처님께서는 미물에서부터 축생, 인간, 천상의 신까지 모두 중생으로 보시고, 이러한 중생들이 모두 진리에 들 수 있게 그들의 근기에 맞춰 수많은 가르침과 방편을 펼치셨기 때문에 불교는 각자의 인식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불교는 바다와 같다.
어떤 이는 연못으로, 어떤 이는 개천으로, 어떤 이는 강으로 종교를 접하지만 끝내는 모두 바다에 이르게 한다.

이처럼 불교는 모든 중생이 진리라는 바다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방편을 사용하므로 그 진수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면이 있다.
불교에는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가 있다.
이를 불법승 삼보라 한다.

먼저 '부처님'이 계신다. 본
래 부처님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자리 즉 진리를 말한다.
이 우주는 공간이 존재하므로 입장이 달라 대립이 생기고 시간이 존재하므로 변화가 생겨 필연적으로 생로병사가 일어난다.

따라서 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천상의 신부터 지옥 중생까지 필연적으로 대립 갈등과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없다.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진리에 들어야 비로소 생로병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이러한 진짜 부처님 외에도 보신불과 화신불이 계신다.
이분들은 진리의 세계에서 중생구제를 위해 일대사 인연을 지어 이 세상에 나타나신 부처님이다. 천상의 신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나신 분이 보신불이고, 지상의 인간을 구제하기 위하여 육신을 가지고 나타나신 분이 화신불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진짜 부처님이 아니라 중생구제를 위하여 25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생로병사와 거기서 벗어나는 법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신 화신불이다.

다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
부처님은 이 우주의 법칙을 알아내 그 법칙에 순응하며 사는 법과 그 법칙을 초월하는 법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씀이라 하지 않고 법(法)이라고 한다.

법이기 때문에 과학이 발전하면 그 정확성이 입증된다.
종교는 직관으로 단번에 우주의 비밀을 밝히지만 과학은 경험으로 조금씩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다.

예컨대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에 이 우주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말씀하셨다. 일월성신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은하계)를 1세계라 하고, 1세계가 1000개 모인 것을 소천, 소천이 1000개 모인 것을 중천, 중천이 1000개 모인 것을 대천세계라 하여 이 우주를 삼천대천세계라고 하셨다.
당시 인도인에게는 우주에 대한 부처님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았겠지만 허블 망원경이 발명된 지금에는 입증되고 있다.

다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이 있다. 승이란 중생과 부처님 사이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수행자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분이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이 다 해탈하기 전에는 해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지옥에 가서 지옥 중생을 교화하고 계신 분이다.
이런 대승보살은 내가 먼저 극락 가고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천상, 인간, 축생, 지옥을 마다 않고 가시기 때문에 불자들이 거룩하게 여기고 귀의하는 것이다.

불법승 삼보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기복을 얻을 것인가, 학문을 얻을 것인가, 내세에 천상이나 극락에 태어나는 것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깨달음을 통해 천상, 인간, 지옥으로 끝없이 윤회하는 윤회고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그것은 각자의 눈높이와 선택에 달려 있다.

백거이白居易(白樂天, 772-846)와  도림선사道林禪師(鳥窠, 741-824)
당나라 시인이요 뛰어난 정치가인 백락천은 본래 학식과 총명이 뛰어난데다 벼슬이 자사의 지위에 올라 자못 그 우월감에 충만해 있었는데 한때 그가 항주(杭州)의 자사로 부임한 후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그리 멀지 않은 사찰에 도림선사라고 하는 이름난 고승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백락천이 내가 한번 직접 시험해 보리라 작정하고 선사가 머물고 있다는 절로 수행원을 거느리고 찾아 갔다.

도림선사는 청명한 날이면 경내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위에 올라가 좌선을 하곤 했다. 마침내 백락천이 도림선사를 찾아온 날도 나무위에서 좌선을 하는 중 이었다.

백락천이 나무아래서 좌선하는 스님의 모습을 올려다보니 아슬아슬한 생각이 들어‘선사의 모습이 너무 위험합니다.’하고 소리치니 선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네가 더욱 위험하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듣고 있던 백락천이 어이 없어하면서‘나는 벼슬이 자사에 올라 강산을 진압하고 또 이렇게 안전한 땅을 밟고 있거늘 도대체 무엇이 위험하단 말이요?’하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선사는 그가 학문과 벼슬에 자만하다는 것을 알고 이 기회에 교만한 마음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곧바로 쏘아부쳤다.
‘티끌 같은 세상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백락천은 자기의 마음을 훤하게 꿰뚫어 보는 듯 한 눈매와 자기가 자사라는 벼슬에 있음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다하는 기개에 눌려‘제가 평생에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을 한 귀절 듣고 싶습니다.’하고 애초에 선사를 시험 하려했던 불손한 태도를 바꿔 공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諸惡莫作 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자정기의 시제불교 (自淨其意 是諸佛敎)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라.
칠불통게七佛通偈를 말했다.

이 같은 대답에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락천은‘그거야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니오.’하고 신통치 않다는 듯이 말하니, 선사는 다시 말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네’

이 말을 들은 백락천은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인격화 되지 않으면 아만과 번뇌만이 더할 뿐 진리의 길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백락천은 그 자리에서 도림선사에게 귀의하여 불법의 수행을 돈독히 하였다고한다.
종순이 [2017-12-05] :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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