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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의 의미와 수행공덕
성종(性宗) 2015-09-08 08:47:24, 조회 : 828
절의 의미와 수행공덕

오체투지(五體投地)는‘다섯 가지 몸을 땅에 던진다’는 뜻으로, 신체의 다섯 부분 즉 양무릎, 양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땅에 닿게 절하는 것이다.
불교 신자가 삼보(三寶, 부처·가르침·승려)께 올리는 가장 공손한 큰절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무한히 낮춤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극히 공경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오체투지는 인간의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예법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도 스스로 고통을 통하여 수행하는 방법으로 엎드려 온몸을 완전히 땅에 붙이는 오체투지가 사용되고 있다.

T.V에서 간혹 티베트사람들이 일생의 소원으로 라싸를 향하여 오체투지하면서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을 접한다. 그들은 하루에 10km 정도씩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서 이마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오체투지를 계속 한다.

그런데 이즈음 여기서는 서로 종교를 초월한 종교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체투지’를 통하여 사람과 생명의 소통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간의 유한함을 깨달은 티베트사람들이 신의 구원을 갈망하며 행하는 오체투지가,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위한 절실한 예배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체투지 절하는 법)

합장하고 똑바로 선다.
허리를 60도로 굽혀 반배
하나 : 시선은 부처님을 보면서 좌복에 살며시 앉는다.
둘 : 머리가 들어갈 정도로 폭을 남기고 두 손을 한꺼번에 팔을 쭉 펴서 짚는다.
셋 : 엉덩이를 든다.
넷 : 왼발을 오른발 위에 겹치고 엉덩이를 양발 위에 얹는다.
다섯 : 오체투지 절을 한다.
여섯 : 양손을 귀까지 수평으로 들어 올린다.
일곱 : 양손을 다시 바닥에 놓는다.
여덟 : 둘 자세와 같다.
아홉 : 합장하고 일어날 자세를 취한다.
열 : 두발을 나란히 모은 상태로 무릎에 힘을 주어 흔들림 없이 똑바로 일어난다.

절이란 머리를 숙여 상대방에게 존중의 예를 표하는 것으로, 예 혹은 예배라고도 한다. 예를 나타내는 방식은 문화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절하는 방식과 의미도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을 인사라고 한다.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로부터 우리 생활 속에서 절이 중시되어 왔음을 말해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말없이 손을 무릎 아래까지 내렸으며, 왕 앞에서는 무릎을 굽히거나 땅에 엎드렸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서로 손을 잡고서 코끝을 맞대어 인사를 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오른발을 뒤로 빼면서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이슬람교에서는 액수례라고 하여 몸을 구부리고 오른손 바닥을 이마에 대는 형태의 절을 한다.

인도와 네팔 등의 힌두교 국가에서는 누구에게나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한다.
그리고 성자나 연장자에게 존경심을 표현하는 경우에는 무릎을 꿇고 상대방의 발을 만진 손을 자신의 눈과 이마에 차례로 대는 인사를 한다.

불교 문화권에서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을 한다. 태국 에서는 이를 와이라고 하고 라오스에서는 놉 이라 부른다. 합장하고 인사함으로써 불심에 전념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표현하고 있다.
다만, 태국이나 라오스, 스리랑카 등에서는 인사하는 대상에 따라 손의 높이가 달라지는데 존경할수록 손이 높이 올라간다.

보통은 손이 가슴 언저리까지 닿으면 되지만 웃어른에게는 입술 근처까지 스님이나 관료. 스승에게는 눈썹까지 올려야 한다.
이처럼 절이란 우리나라나 불교만의 특징이 아니라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것이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공경하는 데서 인간다운 삶이 비로소 시작되었을 것이다.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초자연적인 대상을 향하여 절하면서 부터 종교적인 마음이 싹텄다.

그래서 절은 일상적인 의례에서부터 종교적인 제의에 이르기까지 두루 행해졌다. 이와 같이 절에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면 불자들이 사찰에서 절을 하는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부처님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과 자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불교 신행의 첫걸음이며, 그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절이다.

둘째, 자기를 비우기 위해서이다.
절을 하려면 머리와 허리를 굽혀야 한다.
몸과 마음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게 되면 마음도 저절로 낮춰지고 비워지게 된다.

불교의 수행은 자기를 비우는 데서 출발한다.
나라는 아상을 버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수행이라 할 수 없다.
절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도 없고 아상으로 가득찬 사람이라도 인연에 따라 반복적으로 절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고 자기를 비우게 된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기도 하지만 절을 함으로써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절 수행의 장점이다.

절 수행은 절을 반복적으로 하는 수행을 말한다.
이때의 절은 대개 오체투지를 말한다.
즉, 두 무릎과 두 팔꿈치 그리고 이마 등 다섯 부분을 바닥에 붙인 다음 양 손을 뒤집어 수평으로 귀밑까지 들어올린다.
여기서 이마를 바닥에 붙이고 양 손을 뒤집어 귀밑가지 들어 올리는 행위는 자신의 신체 중 가장 높은 이마를 바닥에 대고 가장 낮은 발에 극진한 예를 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낮추려는 하심의 표현이다.
즉 자신을 비워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몸을 굽히는 행위로 끝나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없으면 절 수행이라 할 수 없다.
이는 법화경의 상불경보살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상불경보살로 수행하던 때가 있었다.
상불경보살은 어떤 중생이라도 심지어 어린아이일지라도 존중하고 예배하여 마침내 육근의 청정을 얻었으며 부처님을 만나 뵙고 깨달음을 이룰 수 있었다. 상불경보살이 수행하던 시기는 위음왕불이 교화하던 시대이다.
당시는 정법이 쇠퇴한 시기였으므로 수행자들 대부분이 아만과 이기심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상불경보살은 아만심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예배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자신의 이익과 가족의 안위만을 살필 뿐 타인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는 이들이 많으니 위음왕불이 교화하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에는 타인을 공경하고 자신을 낮추는 절 수행이 절실히 필요하다.

절 수행을 통하여 자신을 비우게 되면 결국 무아를 체험하게 된다.
무아란 우리가 연기로 존재하여 나라고 할 실체가 본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절 수행을 바르게 하면 나와 우주 만물이 하나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

그러면 나와 남의 분별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동체대비의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 동체대비의 마음은 괴로움에 빠진 이웃을 살피어 그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는 마음을 저절로 내게 한다.

원각경의 주석서인 원각경약소초 에서는 오체투지를 일러 오개를 제거하기 위한 수행법 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개란 인간의 마음을 덮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로 욕망. 분노. 혼침 .들뜸. 의심을 말하는데 절 수행을 통해 이 다섯 번뇌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번뇌를 완전히 끊는 것이 불교 수행의 목표이다.
번뇌를 소멸하는 누진통을 얻어야만 제대로 된 수행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다섯 가지 신통을 아무리 확실하게 얻었다고 해도 누진통을 얻지 못하면 궁극적인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원각경양소초에서 오체투지를 통해 다섯 가지 번뇌의 오개를 제거한다고 밝히고 있으니 절은 번뇌를 제거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효과적인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절만 한다고 해서 성불하는 것은 아니다.
절이 바른 불교수행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불교의 중도 연기적 세계관과 가치관이 전제되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절 수행만을 강조하게 되면 자칫 육체적인 운동으로 전략될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 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하여 정견을 세우고 확고한 신심과 발심을 바탕으로 절을 할 때, 비로소 절 수행은 올바른 불교 수행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편 절은 기도. 염불. 사경. 참회. 주력과도 연결되어 수행의 효과를 증진시키는 기초 수행의 역할도 한다.

나아가 절은 자신을 비우고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가장 기초적인 수행이므로 불교 수행법과 병행할 수 있다.

불교에서 수행은 몸과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고 이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불교의 수행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절 수행은 육체를 움직이면서 수행하는 것이므로 몸과 마음을 같이 닦을 수 있다.
말과 관념이 아닌, 몸을 통해 무아를 확인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만으로 무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무아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노력과 수행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에 집착한다. 나라는 생각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몸뚱이를 비롯하여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실체가 없는 공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체가 없는 몸뚱이의 형상만 보고 집착하며 살고 있다.
특히 몸과 관련된 나라는 상은 다른 어느 것보다 두드러진다.
요즘 몸짱, 얼짱 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것은 연기로 이루어져 실체가 없는 허망한 몸에 집착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을 받는 것이다.

절 수행은 이런 부질없는 집착들을 하나하나 몸을 통해서 비워나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물질과 욕망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나라는 육신과 재산, 명예 등 모든 것은 인연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임을 생각으로는 알더라도 실제로 이것을 생활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 수행을 통하여 나와 남, 물질 ,명예에 집착하여 짓는 온갖 죄업을 참회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완전히 비워 가는 정진을 해나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절 수행은 몸과 마음을 통해서 진짜 내가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몸과 마음을 나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업력에 지배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절 수행을 통해서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극복하게 되면 몸과 마음으로 인한 업력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된다.

절 수행은 잘못 길들여져 게으르고 성내고 욕심을 일으키는 나의 마음을 다스려 나가는 것이다.
절 수행을 통해 정진을 방해하는 유혹들을 물리칠 수 있다.

몸을 조복시키면서 입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마음으로 끊임없이 부처님을 생각하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업장이 점차 소멸되고 나아가 몸과 마음이 잘 다스려 지게 된다. 절 수행을 꾸준히 하면 삼매력이 중장되어 자연스럽게 반야의 지혜가 드러난다.

특히 몸과 마음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절 수행이기 때문에 수행의 효과도 오히려 빠르게 나타난다.
하심하는 마음가짐으로 부지런히 수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아의 경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고 이에 따라 몸과 마음의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 수행에서는 선정과 지혜를 닦아야 한다.
선정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하고 적적해지면 그 속에서 지혜가 나타나고 또 지혜가 작용하는 그 마음을 비추어 보면 고요하고 적적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선정, 즉 삼매는 체험했지만 지혜가 드러나지 않아 번뇌를 소멸할 수 없거나 지혜는 작용하는 것 같은데 마음을 적적한 상태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이는 제대로 된 수행이라 할 수 없다.

절은 약간의 공간과 시간만 주어지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절 수행은 육체적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동시에 찾아주어 운동이 부족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에게 적합한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절 수행을 하면서 경계할 일은 절을 하는 행위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다.

수행은 운동과는 달라서 절의 횟수가 깨달음을 나타내는 징표는 아니다.
숫자에 집착하여 성불이라는 수행의 큰 목표를 상실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절 수행을 하는 사람 가운데는 오히려 아상이 더 강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부처님 법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절 행위만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절 수행을 꾸준히 하다 보면 심신의 안정과 함께 삼매력이 생기고 또 삼매력이 증진 된다. 삼매력이 증진되면 이에 따라 지혜가 들어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절 수행은 가기를 비워 무아로 돌아가는 훌륭한 수행 방법이며 아울러 절을 하면서 화두를 들거나 염불, 주력, 관법, 사경 등 여러 수행을 병행할 수 있다는 데에 큰 특징이 있다.
종순이 [2017-12-05] :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석가모니 부처님 시아본사 나무아비 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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