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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삼귀일(會三歸一)
성종(性宗) 2012-03-11 06:52:44, 조회 : 1,455
불교에서 부처가 방편(方便)으로 설한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인 삼승(三乘)이 궁극적으로 일승(一乘)에 귀착된다는 가르침.

승(乘)이란 '타고 가는 것', 즉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을 의미한다. 삼승이란 부처의 깨달음에 이르는 하나의 길을 중생들의 성품과 능력에 따라 3가지로 나눈 것이다. 〈법화경 法華經〉에는 삼승에 대하여는 성문승은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등을 닦아 열반을 증득(證得)하는 길이며, 연각승은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관하여 일체법(一切法)의 인연을 잘 아는 길이며, 보살승은 육바라밀(六波羅密)을 닦아 깨달음을 구하는 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삼승 가운데 성문승과 연각승은 소승(小乘)에 해당되고 보살승은 대승(大乘)에 해당되지만, 모든 부처의 가르침은 오직 하나의 일불승(一佛乘)이며 이 하나의 불승에서 방편으로 삼승을 시설한 것이다

1. 삼승(三乘)

삼승(三乘)이란 '3가지의 탈 것'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탈 것'이란 불교의 궁극적 경지인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 의지해야 하는 가르침을 수레에 비유한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곧 이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피안(彼岸) 의 세계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르침을 이처럼 탈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수레[乘]나 지혜의 배[船]로 비유한 것입니다. 삼승이란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말합니다  

(1) 성문승(聲聞乘) :  성문승이란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성제(四聖諦) 법문(法門)을 듣고  八正道를 닦으며 사성제를 관(觀)하여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의 경지로 나아간 이을 말합니다. 성문은 고. 집. 멸. 도.(苦 集 滅 道) 사제를 통해 수행합니다. 소승(小乘)이라고도 하며 중생 제도를 하지 않고 아라한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2) 연각승(緣覺乘) : 연각승이란  육근 육경(六根 六境) 즉, 12처(十二處)를 청정(淸淨)이 하고 12인연법의 이치를 깨달은 분을  연각승(緣覺僧)이라 합니다. 그래서 스승 없이 스스로 12연기법을 터득하여 깨달음을 얻은 이를 독각승(獨覺僧)이라고도 하고, 중승(中乘)이라고도 하며 열반을 목적으로 합니다. 부파불교 시대의 이상이었던 연각승은 스승을 찾지 않고 스스로 12인연법을 관(觀)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갑니다.

(3) 보살승(菩薩乘) : 보살승은 초기 대승불교의 이상인데 보살승은 육바라밀(六波羅密) 을 닦고 사법인(四法印)을 깨달아 지혜와 복덕을 두루 갖추어 보살위에 올라 중생제도를 위해 다시 중생세계로 돌아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하여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고 교화 제도한다는 보살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자신과 남을 해탈케 하고 마침내 성불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

2. 일승(一乘)과 이승(二乘)
이렇게 불교사의 발전에 따라 등장하는 이상과 그들이 의지하는 가르침에 따라 성문, 연각, 보살이라는 삼승이 생겨났습니다. 이 삼승 가운데 성문승과 연각승만을 따로 떼어내어 이승(二乘)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일승(一乘)이란 삼승은 모두 방편이고 모두가 부처님이 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것만이 참된 진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달리 일불승(一佛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3. 『묘법연화경』과 일불승(一佛乘)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나 부처님을 지향하는 일승(一乘) 사상에 중점을 두고 성문승과 연각승을 '작은 탈 것'이라는 의미에서 소승(小乘)이라고 낮춰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각각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성문승(聲聞乘)을 '작은 크기의 탈 것[小乘]', 독각승(獨覺乘)을 '중간 크기의 탈 것[中乘]', 보살승(菩薩乘)을 '큰 크기의 탈 것(大乘)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화경』에서는 이 같은 분별적 구분을 넘어 진실한 것은 오직 일승(一乘)뿐이라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은 모두 일승(一乘)을 지향하는 방편(方便)일 뿐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고도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두 일불승(一佛乘)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법화경』의 가르침입니다.

4. 삼거(三車)의 비유
『법화경』에는 이 삼승(三乘)을 설명하기 위해서 네 종류의 수레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양이 끄는 수레[羊車]'입니다. 양이 끄는 수레이다 보니 힘이 약합니다. 이것은 바로 초기 불교의 이상이었던 성문(聲聞)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사슴이 끄는 수레[鹿車]'가 등장합니다. 여전히 많은 짐을 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양보다는 힘이 뛰어납니다. 이는 부파불교 시대의 이상이었던 연각(緣覺)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소가 끄는 수레[牛車]'가 등장합니다. 바야흐로 튼튼하고 많은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레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바로 초기 대승불교 시대의 이상이었던 보살(菩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승(三乘)입니다. 풍부하고 아름다운 비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법화경』에서는 삼승을 이처럼 수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소가 끄는 힘센 수레가 등장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수레가 등장합니다. 바로 '크고 흰 소가 끄는 수레[大白牛]'입니다. 그것은 바로 『법화경』의 핵심 사상인 불승(佛乘) 또는 일승(一乘), 일불승(一佛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5. 회삼귀일(會三歸一)
이상과 같이 『법화경』에서는 비유를 통해 성문, 연각, 보살이라고 하는 차별적 삼승(三乘)을 보여 준 뒤 이들 삼승은 결국 일승(一乘)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설합니다. 일승의 드높은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삼승이라는 도구를 빌렸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그 같은 삼승의 차별상을 버리고 일승의 세계로 돌아오라고 설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된 진실의 세계이기 때문에. 초기불교의 성문과 부파불교의 연각, 초기 대승불교의 보살로 대변되는 삼승은 모두 하나의 방편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 각각의 방편을 버리고 진실한 세계, 즉 '오직 하나의 수레'인 일승(一乘)으로 돌아오라.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타는 수레인 불승(佛乘)입니다. 이처럼 차별적 방편을 버리고 진실의 세계로 돌아와 하나가 되는 것을 회삼귀일(會三歸一), 즉 셋이 모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법화경』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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