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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금강경 金剛經 일체동관문
常不輕菩薩 2015-07-05 18:30:43, 조회 : 1,330, 추천 : 0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윤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는 육안이 있ㅅㅂ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천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는 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혜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법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법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불안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불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생각하느냐. 항하가운데 있는 모래를 부처님이 모래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래라고 말씀하겼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 항하의모래수가 많은 것 같이 그렇게 많은 항하가 있고 이 여러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 수와 같은 부처님 세계가 있다면 이러한 부처님 세계들은 얼마나 많겠느냐?
대단히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부보리에게 이르시길,
그렇게 많은 국토가운데에 있는 중생들의 어러가지 마음을 여래께서 다 아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마음은 다 마음이 아니고,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니라. 어찌된 까닭인고 하면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수 없기 때문이니라..
-----------------------------------------------------일체를 하나로 봄.


해설

일체 만상의 이면에는 하나의 진리가 관통하고 있고 중생의 마음 그 밑바탕에는 부처님의 마음자리가 있습니다.
만상을 대할 때 차별 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껍데기가 아닌 마음의 진리성을 바라보는 것이 일체동관(一體同觀)입니다.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은 마음을 닦아 수행이 깊어질수록 열리는 눈의 단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갈고 닦은 정도에 따라 점차 다른 경지의 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육안이란 그냥 보이는 것만 볼 줄 아는 우리 육신의 눈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태를 살펴보면 반쪽밖에 보지 못합니다.
앞을 보면 뒤를 못 보고 위를 보면 아래를 못 봅니다.
종이 한장만 가려도 앞을 못 보고 가까운 것을 보면 먼 것을 못 봅니다.
만나면 헤어질 날이 있고 태어나면 죽을 날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천 년 만 년 살 줄 알고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시야가 좁은 사람들은 편견에 휩쓸리고 자기밖에 모르는 독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니 이 세상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는 것입니다.

천안은 시간과 공간의 장애가 없는 눈으로 앞을 보면서 뒤를 보고 왼쪽을 보면서 오른쪽도 봅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훤히 알고 지옥이나 극락세계도 볼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알 수 없는 경계로 하늘나라 천인들의 눈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아나율존자는 눈이 멀었지만 밤낮 없는 수행으로 천안을 얻었습니다.
천안이 열리면 눈 뜬 우리 중생보다 더 자세히 보고 풍요로운 세계를 살게 됩니다.
마음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면 광대무변한 우주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가득히 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눈이 막혀서 못 보고 있을 뿐 열리면 열릴수록 불가사의한 세계를 보게 됩니다.
우리도 마음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차근차근 차원을 높여 가다 보면 아무런 장애 없이 보는 눈이 열려올 것입니다.

혜안은 만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을 말합니다.
일체 만상이 인연의 소산으로 무상한 것임을 분명히 파악하여 물질에의 집착이 끊어진 성문 연각의 눈입니다.
좋다.싫다, 예쁘다 밉다는 껍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별을 떠나 만상의 평등한 성품인
근본 마음자리를 보는 눈입니다. 판단의 척도가 올바로 서있는 지혜의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안은 일체법의 진리를 훤히 꿰뚫어 이 거대한 우주를 하나로 보는 눈입니다.
너와 내가 하나이며 중생과 부처가 하나임을 아는 깨달음의 눈입니다.
일체중생과 자신을 하나로 보아 한없는 자비의 마음을 일으킵니다.
중생의 근기와 인연을 한눈에 꿰뚫어 그들에 맞는 자비와 방편으로 자유자재하게 제도하는 보살의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은 부처님이 구족하신 눈을 말합니다.
완전히 깨달은 눈이며 온 법계를 훤히 비추시고 모든 중생에게 자비와 광명을 드리우는 눈입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는 불가사의한 경계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이 없고,듣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아는 경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므로 지금도 우리의 마음자리를 다 보고 다 듣고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번뇌 망상도 수만 가지인데 그 많은 우주세계에 가득한 중생들의 온갖 마음을 다 아신다니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그러나 여래가 말씀하신 마음이란 껍데기의 마음이 아닌 하나로 통해 있는 영원의 마음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의 오안을 갖추셨으므로
모든 중생의 마음을 환히 꿰뚫어 다 보고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대목과 관련된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당나라의 고승 덕산 스님은 금강경에 통달하여 그 스님을 따를 자가 없었으므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용담이라는 선사가 대선지식으로 소문이 자자하자 덕산스님은 도대체 나보다 불법에 통달한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해졌습니다. 덕산스님은 금강경 주석서를 잔뜩 짊어지고 용담스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먼길을 가는 중에 어떤 노파가 떡을 굽고 있는 것을 보고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여 등짐을 내려놓았습니다.
할머니,배가 점심(點心)을 해야겠으니 떡을 파시오" 라고 말하자 노파는 "등에 진 짐이 무엇이오"라고 물었습니다.덕산스님은 금강경 주석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잘됐소, 내가 평소에 금강경을 독송하다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었는데 설명을 해주면 떡을 그냥 드리리다.
하지만 대답하지 못하면 떡을 안 팔겠소"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금강경에 보면 '과거심불가득,현재심불가득,미래심불가득' 이라고 나오는데
스님은 점심을 하시겠다고 하면서 도대체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시겠소" 라고 물었습니다.
덕산 스님은 그만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떡도 먹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중생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흔들리고 변화하는 중생의 마음은 얻을 것이 없습니다.
지나간 마음은 이미 사라져 붙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찰나에 일어나 곧 사라지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허망한 그 마음 가운데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을 갖추시고 보신 것은 번뇌망상의 마음이 아니고 영원의 마음이며 중생의 진여심을 보신 것입니다.
육조 혜능은 "모든 사람이 다 오안이 있건만 미혹에 덮인 바가 되어서 능히 스스로 보지 못함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가르쳐 미혹한 마음을 없애 버리면 곧 다섯 눈이 뚜렷이 밝아져서 생각생각에 반야바라밀을 수행케 하신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상하게 순간순간 변화하는 껍데기에 마음을 쏠리지 않고 만상을 차별심 없이 보아 간다면
일체동관의 경계에 이르러 만상을 하나로 보게 될 것입니다.  / 옮김



영가전에 / 자명스님
法空 [2015-07-06] : 나무 관세음 보살_()_ 법공 합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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