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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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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30 20:36:22, 조회 : 1,14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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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이란 무엇인가 .. 두번째
곧은 마음이란 진여를 생각하는 것이니 왜 진여를 생각하면
마음이 평등해질까?
진여란 만물의 참모습으로 그 모습에는 나와 네가 없고,
못났다거나 잘났다거나, 더럽다거나 깨끗하다거나, 추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일체의 분별이 없다.
따라서 사물이 현상적으로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래는 모두 진여의 법성 그 자체임을 생각하면 차별심이
없어지고 따라서 분별과 대립이 사라지며 자리와 이타가 하나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을 알게 되면 아무리 사소한 선행이라도 즐겨 닦고자 하며,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는 자리이타의 행이
저절로 나온다.
이러한 서원이라야 모든 중생을 다 건질 수 있는 무상보리를
얻을 수 있으므로 무상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자는 처음 발심할 때 이러한 마음을 뚜렷하게 세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서원을 세우고 수행을 하면 이것이 바로 원력에 의지한 삶이다.
세속의 사람들은 욕망에 의해 산다.
욕망에 기초하여 여러 가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그러나 욕망에 기초한 모든 것은 그 과정에 있어나 결과에
있어서나 모두 괴롭다.
이루지 못할 때는 이루지 못해서 괴롭고 이룬 뒤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괴롭다.
그러나 원력에 의한 삶은 그 결과가 즐거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과정이 또한 즐겁다.
만일 처음과 중간과 끝이 모두 즐거운 것이 아니라면 바른 수행이라 할 수 없다.
흔히 수행하면 고행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수행은 성불이라는 궁극에 가기 전에도 첫 마음을 낸 순간부터 이내 즐거움을 준다.
물론 수행 중에 장애도 있고 고통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세속의 고통과 다르다.
수행 중의 고통은 고통을 마감하기위한 고통이므로 끝이 있는 고통이다.
즉 앞으로 나아감을 위한 과정이므로 은근한 인내를 가지고
극복해 나가다보면 모든 고통의 본질을 꽤 뚫고 그 자리에서 지혜를 싹틔운다.
따라서 수행자는 마음이 편안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탐진치 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잘 조복 받는다.
또한 경계에 부딪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이를 수행의 재료삼아 더욱 정진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깨달음을 이룬 후 뿐만 아니라 발보심을 낸 바로 그 순간 이미 안락을 얻는다.
발심과 마지막은 차별이 없지만
이런 두 마음에 앞 마음이 어렵네
자기 제도는 못했으나 먼저 남을 건지나니
그러므로 초발심에 나는 경례하노라. <무량수경종요>
초발심의 마음과 깨달은 후의 마음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앞
마음과 뒷 마음은 차별이 없다.
그러나 초발심이 없었던들 어떻게 부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듯 초발심이 중요하다.
계율수행에 있어서도 보리심을 버리지 않으면 비록 계를 어겼다고 하더라도
잃은 것은 아니라 하였고, 염불수행에 있어서도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보리심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보리심은 모든 수행의 근본이자 성불과 왕생극락의 씨앗이며, 공덕장이다........가장행복한공부.
구절초 / 범능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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