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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묘법연화경,서품..1
常不輕菩薩 2015-09-03 15:11:53, 조회 : 1,193, 추천 : 0
이렇게 나는 들었노라(如是我聞=여시아문)   서품..(해설)

다문제일의 아난존자는<여시아문>이라 -고 법화경 설법의 시작을 예고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나는 들었노라>고 하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분명히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졸면서 한 눈을 팔면서 들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들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들은 바에 의하면 바로 이러하다 하는 뜻으로 <나는 들었노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부처님이 아닌 보통의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들은 것이니까, 만약 틀리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밝히는 책임의식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난존자는 자기의 기억력의 자신감을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몹시 겸손한 태도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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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처님께서 마갈타국 왕사성 기사굴산 영산 도량에 계시었다. 큰 비구 대중 일만 이천 인과 함께 하셨으니 이들은 다 아라한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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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부처님(佛)이란 인도어(語)로 불타(佛陀)입니다. 한문으로는 깨달은 사람 곧 각자(覺者) 입니다. 깨달았다는 것은 단지 책을 읽어서 사물의 지식을 알았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깨달았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본래부터 타고난 존귀한 성질을 남김없이 발전시켜서 절대의 진리를 확고하게 붙잡은 어른이 불타, 곧 부처님이라는 존재를 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와 같이 태어나서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고 자라서 출가(出家) 수행하여 부처님이 되신 분은 석가모니 불(佛) 한 분 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우는데 있어서 석가모니불에 의지하여 배우지 않거나 석가모니불을 뛰어 넘어서 배울 수는 없습니다. 석가여래의 가르치심 가운데는 석가여래 이외의 다른 부처님의 일도 설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우리와 같이 이 땅 위에 태어나신 부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석가여래를 통해서 배우지 않으면 신앙 상에 등장하는 모든 부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도 약사여래(藥師如來)도 대일여래도 모두 석가여래의 입으로부터 태어나신 분신불(分身佛) 부처님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佛)이라고 하면 그것은 곧 석가여래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바세계에 나타나신 부처님은 석가여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부처님을 가리킬 때는 반드시 명호(名號)를 붙여서 무슨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쌀에는 좁쌀 찹쌀 보리쌀 기장쌀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마는

이것을 가리킬 때는 쌀 자 앞에 조 보리 기장의 이름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교(敎)를 설하시는 장소를 이른 바 정사(精舍)라고 합니다. 기원정사(祇園精舍)죽림정사(竹林精舍)니 하는 것이 다 교(敎)를 설하신 장소입니다. 정사(精舍)의 정(精)은 잡 된 것이 섞이지 아니한 마음으로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교(敎)를 설하는 사람도 일체의 인간을 구원코자 하는 마음 뿐 다른 생각이 없고, 듣는 사람도 진정한 도(道)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수행할 뿐이므로 정사(精舍)라 합니다, 지금의 절(寺院)입니다. 청신사 청신녀의 청신(淸信)이라는 것은 깨끗한 믿음의 신앙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삶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교(敎)를 배워야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맙다.감사하다는 생각으로 믿는 것이 깨끗한 믿음, 곧 청신(淸信)입니다. 어떤 이해득실(利害得失)의 문제를 목적하고 믿는다면 그것은 청신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가 부처님을 믿음으로 해서 마음이 깨끗해진다 마음이 소생(蘇生)한다
마음이 바로 세워진다. 이러한 생각으로 믿는 것이 청신입니다. 이와 같이 경전에 나오는 숫자를 지금의 수사(數詞)의 개념으로 엄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넷이니 여덟이니 아홉이니 하는 숫자는 조금도 빠짐이 없이 다 모였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므로 그 곱수(倍數)를 써도 좋습니다.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부처님의 키를 장륙(丈六)이라고 합니다. 장륙은 16을 뜻합니다. 8의 배수(倍數)입니다. 부처님이란 모든 덕(德)이 원만(圓滿)하게 갖추어져 있어서 대중이 우러러 사모하는 분이라는 뜻으로 8의 배수인 장륙으로 부처님의 키를 나타내었습니다. 실제로 석가여래의 키를 잰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덕(德)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분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을 (장륙신)이라 하였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에서 부처님의 상(像)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나무로 조각할 경우에 8의 배수로 하는 것이 정례(定例)로 되어 있습니다. 여덟 치(寸) 여덟 자(尺)도 괜찮으며 또는 한 치 육 푼도 무방합니다. 아무튼 8의 배수(倍數)로 하여 장륙불상(丈六佛像)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수사(數詞)를 말할 때에는 구족(具足), 곧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즉 큰 비구대중 1만 2천인과 함께 계셨으니 한 것도 정말로 그 수효가 꼭 1만 2천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넷(四)의 배수로써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빠짐없이 모두 모였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앞으로 자주 수사(數詞)가 나옵니다마는 그 수효에 구애 될 필요는 없습니다. 즉 미혹이라는 것은 돈을 원한다 옷을 원한다 밉다 싫다 하는 세속의 미혹을 깨끗이 없앤 사람이 곧 아라한 입니다. 그러나 미혹을 없이 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서 미혹을 없앤다는 것은 세상을 위해 인간을 위해 노력하거나 수업(修業)을 쌓아 즉신성불하는 것을 전제한 준비단계(準備段階)라는 것입니다. 곧 아라한 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랜 동안 수업(修業)을 쌓아 속세에 대한 미혹이 없어진 모든 아라한 제자들이 40여 년 동안 방편의 교(敎)를 받아서 이제는 덕행이 상당히 높아졌으므로 이제 그들에게 좀 더 깊은 진실의 교(敎)를 설하시겠다는 것이 법화경을 설하신 목적의 하나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꽃들이 만발한 이곳에 / 야운
오도행 [2015-09-04] : 새로움 공부를 시작하게되어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_()_
대덕심 [2015-09-05] : 귀한 공부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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