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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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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6 21:51:17, 조회 : 1,49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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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20150906_034248_841536797.jpg (74kb) 다운 :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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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남 사라짐이 괴로움으로 느껴진 수행자는 괴롭도록 조건지어진 오온을 좋아하거나 집착의 대상으로 끌어 안을까요?
아닙니다.
무상과 괴로움을 직접 경험으로 이해한 수행자는 오온을 싫어하게 되고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수행이 발전되면서 무상을 보고 아, 정말 오온은 괴로움이다.오온을 마음대로 조절할 나라는 것이 없네!..라고 지혜가 익으면 오온을 집착의 대상으로 하던 것이 이제는 그냥 법으로 보는 눈이 열립니다.
이미 생긴 오온은 어쩔수 없지만
새로운 오온을 원하지 않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제 윤회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수행자가 몸과 마음에서 무상을 보고 괴로움이라고 알면
이제 오온을 염오厭惡하는 마음이 생기고
오온에 대한 욕망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고 욕망을 떠나는 이욕離欲으로 모든 괴로움이 소멸하는 열반을 향해서 갑니다.
열반은 탐진치의 소멸입니다.그런데 우리 자신을 돌아보거나 주위의 다른 사람을 보아도 정말 탐진치가 다 소멸될 날이 있을까?..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마다
이랬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면서 더 좋기를 바라는 마음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부처님은 열반을 지고의 행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감각적인 욕망을 추구해서 얻는 행복은 정말 낮은 행복이고
감각적인 욕망을 버려서 얻는 행복은 지고의 행복입니다.
우리는 오욕락으로 재 색 식 명 수를 추구합니다.
그것만이 행복이라고 알고 노력해서 얻지만 그것은 찰나의 행복이고 이어서 그것이 변하는 괴로움을 겪어야만 합니다.
탐진치의 완전 소멸인 열반은 일어남과 사라짐이라는 조건이 없는 무위법이랍니다.세간은 조건에 의해서 굴러가기 때문에 조건따라 매 순간 변하지만 출세간은 조건을 벗어난 세계라서 출세간의 법인 열반은 변하지 않습니다.
조건지어진 세계에서 괴로움의 소멸은 불완전하지만
열반은 모든 조건을 초월한 완전한 것입니다.
열반상태는 다시 갈애가 일어날 일도 없기 때문에 소멸할 일도 없습니다.이렇게 열반을 설명을 하는데 이것이 어떤 경지인지
우리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나중에 체험을 해 봅시다.
지금까지 괴로움의 윤회를 끊는 열반을 얻는 과정을 설명드렸습니다.수행자는 사념처 수행을 해서 오온의 일어남 사라짐을
열심히 보는데 까지만 하면 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지혜가 익어서 무상이 보이고 고가 보여서
오온을 싫어하게 되고 오온을 집착하지 않는 힘이 생겨서
모든 탐진치를 소멸한다는 열반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수행이 매우 근사하지요.
여러분, 분명하고 바른 길이잖아요.
죽으면 열반이 아닌가요?...
죽는 것을 열반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만일 죽기 직전에 고도의 알아차림으로 탐진치를 완전히 소멸하고 죽으면 그 분은 아라한의 죽음 즉 완전한 열반, 반열반에 들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죽는다고 윤회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열반이 아닙니다.
보통사람의 죽음은 몸과 마음의 생명기능이 다해서
그 몸과 마음을 이어가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일을 하지 않는 죽음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마음의 에너지가
새로운 몸과 마음을 다음 찰나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이 생에서는 사라졌지만
다음 순간 어떤 존재로든 태어납니다.
부처님에 의해서 열반으로 가는 과정이 세세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그것이 7청정과 16단계의 지혜입니다.
먼저 계청정입니다.수행자가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욕망에 휘둘리면 마음이 들떠서 수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재가자는 오계를 지키고 출가자는 비구계 비구니계를 지켜서
일단 몸과 말과 마음으로 하는 모든 행동이 청정해야 합니다.
재가 수행자는 오계를 지켜서 자신이 떳떳해야 됩니다.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이나 약물을 먹지 않는 것을 실천해야
계가 청정해져서 수행을 시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 수행자가 계율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지금 계율을 지키지 못했네!..라고 알아차리면
다시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실컷 나쁜 짓 해 놓고 알아차리면 되는가?
그 죄가 한 번 알아차린다고 소멸되는가?
아닙니다.
알아차림은 이미 지은 죄를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새로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 이전에 지은 불선업의 과보는 반드시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알아차림을 한 선업의 과보도 반드시 있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알아차려서 놓고 지금 다시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아차림을 한다는 것은 이전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한 과보가 익어서 어느 때 괴로움으로 나타날 때 이건 내 탓이야!..라고
그 괴로움을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내 탓이라고 알기 때문에 과보로 겪는 괴로움을 피하려는
새로운 불선업을 짓지 않습니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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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한/보현행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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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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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상식이 적다보니 "사념처 수행?"내일 스님 설명들으면 이해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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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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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오도행 보살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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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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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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