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꽃의 장
꼬살라 왕자 위두다바의 사끼야 족에 대한 원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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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꼬살라 국왕 빠세나디의 아들인 위두다바와 관련하여 게송을 설법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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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빠세나디 왕은 사왓티의
자기 왕궁 위층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왕은 수 천 명의 빅쿠들이 탁발을 하기
위해 거리를 지나 아나타삔디까 쭐라아나타삔디까 사카, 그리고 숩빠와사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시종에게
물었다.
"저 빅쿠들은 어느 집으로 탁발들을 가시는 건가?"
시종은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저 수천의 빅쿠들은
매일같이 음식이나 약품을 공급받기 위해서 아난타삔디까 쭐라아나타삔디까 위사카, 그리고 숩빠와사의 집으로
가십니다."
이런 대답을 들은 빠세나디 왕은 자기도 그들과 같이 빅쿠 상가를 위해서
무언가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곧 수도원으로 부처님을 찾아뵙고 빅쿠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빅쿠들을 초청하게 된 왕은 이레 동안 부처님께 자기가 직접 공양을 올렸고, 마지막 날에 이르러 부처님께 이렇게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후부터는
매일같이 제 왕궁에 오시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대왕이여, 여래는 한 곳에서
규칙적으로 공양을 받는 법이 아니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요. 여래는 그들의 집을 골고루 방문하여 그들의 정성을 받아 주지 않으면 안 되오."
"부처님이시여, 정 그러시다면
한 분의 테라님만이라도 규칙적으로 저의 왕궁으로 탁발 오시도록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왕의 청을 받아들여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테라를 왕궁에서 공양받는
빅쿠로 정하시었다.
그래서 아난다 테라가 중심이 된 일군의 빅쿠들은 매일같이 왕궁에 가서
공양을 받게 되었다. 왕은 빅쿠들이 도착하면 자기가 직접 받따를 받아 들고 음식을 담아 빅쿠에게 건네주곤
했다. 왕은 그처럼 자기가 직접 빅쿠들을 공양하면서, 시종들은
다만 자기를 돕는 데 그치도록 했다. 이같이 공양을 올리던 도중 여드레째가 되던 날 왕은 정신이 약간
흐트러져서 직접 공양을 올리던 일을 소홀히 했다. 그러자 빅쿠들 간에 이런 말이 돌았다.
"이제 왕궁에서는 아무도 우리에게 앉을 자리를 권해 주지 않는다. 혹시 왕이 챙겨서 명령을 내리면 모를까 왕궁 사람들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다리지 말고 다른 곳으로 탁발을 가도록 하자."
그래서 빅쿠들은 다른 곳으로 다 떠나고 책임이 있는 아난다 테라만 혼자서
왕궁에 가 음식을 받아오곤 했다. 그래서 왕은 많은 빅쿠들을 공양하지 못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제자가 있다. 아난다 테라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들 특별한 인연을 가진
제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법을 수호하고 빅쿠 상가를 지키는 신심 깊은 사람들인데, 이는 빅쿠 상수
제자인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 테라 빅쿠나, 상수 제자인 케마와 웁빨라완나 테리, 남자 재가 신자로서 으뜸인 찟따와 핫타까알라와까, 그리고 여자 재가
신자로써 으뜸인 난다의 어머니 월루깐타끼와 쿠주따라를 말한다.
이들 여덟사람은 과거 전생부터 큰 서원을 세우고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하여
금생에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가 된 것인데, 아난다 테라도 이들에 못지않아서 과거 십만 겁 동안을 큰
서원과 열 가지 공덕을 성취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초인적인 인내와
으뜸가는 지혜로써 부처님의 정법을 지키며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게 마련이었다.
빅쿠들이 왕궁을 떠날 시간이 되어 음식을 살펴 본 빠세나디 왕은 많은
음식이 건드려지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시중에게 물었다.
"빅쿠 존자들은 오늘도 오시지 않았느냐?"
"예, 오직 아난다 테라만이
오셨을 뿐입니다."
"빅쿠들이 나에게 큰 손해만 끼치는구나!"
이같이 화를 내고 그는 곧 부처님을 찾아뵙고 자기의 심정을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어, 저는 오늘도
오백 명의 빅쿠들이 드실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직 아난다 테라만이 오셨을 뿐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까닭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대왕이여, 여래의 제자들이
대왕에게 가지 않은 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오."
부처님께서는 곧 빅쿠들을 불러서 수행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는 공양을
받고, 어떤 경우에는 공양을 받지 않아야 하는지, 그 바른
태도에 대해 이렇게 설법하시었다.
"빅쿠들이여, 어떤 집에 아홉
가지의 결함이 있으면 빅쿠들은 그 집에 가서는 안 되며, 만일 부득이하여 방문했을 때에는 그 집에 들어가
앉아서는 안 되느니라. 무엇이 그 아홉 가지인가?
가족이 모두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지 않을 때,
가족이 모두 반갑게 인사하지 않을 때,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지 않을 때,
그들이 소유한 것을 감출 때,
너무 많은 음식을 준비했거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게 공양 올리거나,
좋은 음식이 있으면서도 나쁜 음식을 공양할 때,
공양 올리는 마음이 존경스럽지 않고 불경스러울 때,
그들이 앉아서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자 청하지 않을 때,
그들이 기쁘고 즐겁지 않은 목소리로 말할 때 등이니라.
빅쿠들이여, 그런 집에는
가지 말아야 하며 그럴 책임도 없느니라. 또 행여 그런 집을 방문할 때에는 그 집 안에 들어가 앉아야
할 책임이 없느니라. 빅쿠들이여, 그러나 어떤 집에 아홉
가지 좋은 태도가 있으면 그 집은 빅쿠의 방문을 받을 자격이 있느니라. 그런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방문하도록 해야 하며, 만일 방문했다면 마땅히 집안에 들어가 앉아야 하느니라. 그렇다면 그 아홉가지란 무엇인가?
빅쿠가 그 집을 방문하였을 때 가족 모두가 반갑게 맞이하며,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인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고,
가진 것을 감추지 않으며,
충분한 음식을 준비하여 다 공양하고,
좋은 음식을 공양하며,
불경스럽지 않고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며,
공양이 끝난 다음에는 여래의 가르침을 청하고,
그들이 즐겁고 기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니라."
부처님의 이 같은 설법을 듣고 빠세나디 왕은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빅쿠들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부처님의 혈족을 왕실에 두어 빅쿠들에게 공양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왕은 왕궁으로 돌아오자 곧 사신을 까삘라왓투에 보내어 사끼야족의
공주를 자기 왕비로 삼겠다고 제의했다. 이 요청을 받은 사끼야 족 사람들은 회의를 열고 마하나마 왕(정확히는 왕족)과 노예 사이에 태어난, 아주 예쁜 와사바캇띠야를 공주로 만들어서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빠세나디 왕의 사신이 돌아와서 왕의 청을 사끼야 사람들이 받아들였다고
보고하자 왕은 공주가 누구의 딸이냐고 물었고, 사신은 사끼야 족의 마하나마 왕의 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매우 흡족해했다.
왕은 즉시 그녀를 왕비로 책봉하고 오백 명의 궁녀들로 하여금 왕비를
보호하도록 했다. 그리고 왕비는 곧 아들을 낳았는데, 왕은
아들의 이름을 사끼야 족에서 받아와 위두다바라고 지었다. 위두다바는 그렇게 왕자가 되었는데, 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 저에게는 왜 외가에서
아무런 선물이 오지 않나요? 다른 왕비 슬하에서 난 왕자들은 다들 외가에서 선물로 장난감을 보내 준다든지
하는데 말예요. 어머니에게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안 계신가요?"
이에 당황한 왕비는 "그건
네 외조부모님이 사끼야 왕족으로서 여기서 너무 먼 데 사시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위두다바는 자기가 외가에 가겠다고 말했다.
위두다바가 외가에 가겠다는 마음은 끈질긴 것이어서 왕비는 더 이상 막지
못하고, 그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그를 사끼야 족들에게 보내게 되었다. 그 전에 왕비는 따로 사끼야 족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그 편지에다
왕비는 말하기를, 자기는 지금 꼬살라 국의 왕비가 되어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이제 아들이 외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아들에게 왕자에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사씨야 족들은 회의를 열었고,
노예의 아들과 상대하지 않게 하려고 왕자 위두다바를 객사에 쉬게 하는 한편, 자기네의 나이
어린 공주나 왕자들은 모두 지방으로 여행을 보냈다. 그래서 위두다바는 사끼야 족의 어른들에게만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어른들에게 여기에는 어린 왕자나 공주가 없느냐고 물었고, 사끼야 족의 어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두들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네."
위두다바는 이 말을 별로 의심하지 않고, 얼마 더 머물다가 까삘라왓투를 떠났다.
위두나바가 그렇게 떠나고 나서 그가 묵었던 방을 청소하던 궁녀들은 기분이
나빴다. 그녀들은 여기가 노예의 아들이 묵었던 곳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우유와 물로 방을 닦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위두다바의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는
위두다바의 친위대에 속한 사람으로 마침 놓고 간 소지품을 찾으려고 왔다가 무심코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는
놀라서 궁녀에게 되물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소?"
궁녀가 지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노예의 자식이 앉았다 간 곳을 청소한다고 했소이다."
"그러면 우리 왕자님의 어머니가 노예였단 말이오?"
"그렇고말고요. 마하나마 왕과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와사바캇띠야니까요."
이 말에 기겁을 한 그 병사는 그 이야기를 곧 위두다바에게 전했다. 위두다바는 놀라고 흥분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소리쳤다.
"더러운 사끼야 족 놈들! 내가
만약 왕권을 잡으면 사끼야 족 놈들을 모두 말살하고 그놈들의 피로 내가 앉았던 그 자리를 씻으리라!"
위두다바는 이렇게 사왓티에 돌아왔고,
이 사실은 왕자를 호위했던 대신을 통하여 빠세나디 왕에게도 전해졌다. 왕도 사끼야 족에
대해 대단히 화를 냈고, 왕비와 위두다바의 지위를 박탈하여 노예로 삼아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다음 부처님께서 왕실을 방문하시게 되었다. 왕은 멀리까지 나와서 부처님을 매우 공손하게 마중하여 궁내의 아주 높은 자리에 앉으시게 한 뒤 세 번 절을
올렸다. 왕은 저간의 사정을 모두 부처님께 사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왕이여, 사끼야 족이 왕에게
한 행위는 참으로 옳지 않은 것이었소. 그들이 왕에게 딸을 시집보내려면 대왕의 신분에 맞는 배필을 보냈어야
마땅했소. 그러나 대왕이여, 여래는 와사바캇띠야가 분명 마하나마
왕의 딸이기도 한 만큼 귀족의 피를 받은 여인이라고 말하고 싶소. 그의 어머니 쪽이 누구였던 간에 아버지
쪽은 왕족이 아니오? 그리고 위두다바로 말하더라도 또한 왕의 아들임이 분명하오. 자식들의 혈통은 어버지로부터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소? 대왕이여, 예전의 왕들은 길거리에서 나무를 줍는 가엾은 여인을 왕비로 삼기도 했는데, 그녀는
미린나레스우 왕의 왕비로서 강대국을 건설했던 깟타와나 왕이 그의 아들이었소. 그러니 그들의 신분을 노예로
만든 것은 재고해야 할 것이오."
이에 빠세나디 왕은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와사바캇띠야와
위두다바의 신분을 예전대로 회복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