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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信心銘(신심명 )17.귀근득지(歸根得旨) 수조실종(隨照失宗)
법성화 2016-11-09 17:52:52, 조회 : 1,565,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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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귀근득지(歸根得旨) 수조실종(隨照失宗)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다 보면 종취(宗趣)를 잃으리라.

귀근(歸根)의 근(根)은 뿌리 ‘근’으로 원점(原點)을 의미하는 것이니 마음속 근본이 되고, 득지(得旨)의 지(旨)는 맛있을 ‘지’이니, 합하면 뿌리의 맛, 혹은 원점의 맛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니, 즉 ‘마음속 근본에 돌아가면 대도의 뜻을 얻게 되지만’이 되고, 수조(隨照)의 수(隨)는 따를 ‘수’이고, 조(照)는 비출 ‘조’인데 앞의 근(根)의 상대는 마음 밖의 경(境)이 되니, 수조(隨照)는 밝게 비치는 외경(外境)을 따르면 실종(失宗), 즉 종취(宗趣)를 잃어버린다고 했다. 종취(宗趣)는 원칙(原則)이니 원칙을 잃는다는 의미이다.

먼저 귀근(歸根)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위 게송 16 절언절려(絶言絶慮) 무처불통(無處不通), 즉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 곳에 근본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게송 11 지동귀지(止動歸止) 지갱미동(止更彌動), 즉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니 그침이 다시 움직이게 되더라의 ‘지동귀지(止動歸止)’의 귀지(歸止)가 귀근(歸根)과 같은 뜻으로 해석된다.

귀지(歸止)는 지동(止動)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절언(絶言) 절려(絶慮)가 곧 움직임을 멈추는 지동(止動)이 된다고 본다. 몸과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그 한 곳마저 사라지게 할 때 지동귀지(止動歸止)가 되고, 또 귀근(歸根)이 된다고 생각한다. 동(動)하는 것은 생멸하는 것이고, 지동(止動)은 생멸을 멈춘 것이니 귀지(歸止)는 생멸이 완전히 멈추어져 본래 고요한 자리, 불생불멸하는 자리로 돌아간 것이니, 바로 이 자리가 근본(根本)이 되는 것이다.

그러하니 귀근(歸根)은 근본이 되는 본래의 자리인 원점(原點), 즉 불생불멸의 자리로 돌아오다. 이다. 본래의 근본자리로 돌아오면 그 근본자리의 맛, 혹은 뜻을 얻을 수 있지만 눈 밖의 어떤 대상이 비추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망상에 걸려들어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적정열반(寂靜涅槃)의 종취를 잃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화두를 잘못 잡거나 그릇된 심상(心相)을 참된 것으로 알고 그를 비춰보고 따라가는 것이나, 지식을 쌓기 위한 노력, 명예(名譽), 재(財), 욕(欲)을 쫓는 것 등은 종취와 멀어지는 행위들이다.


18 수유반조(須臾返照) 승각전공(勝脚前空)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 봐도 [눈]앞의 공함보다 수승하리라.

수유(須臾)의 수(須)는 모름지기 ‘수’이고, 유(臾)는 잠깐 ‘유’이니, 수유(須臾)는 ‘모름지기 잠깐이라도’가 된다. 반조(返照)의 반(返)은 돌아올 ‘반’이고, 조(照)는 비출 ‘조’인데, 반(返) 자나 귀(歸) 자는 주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본래의 자리, 즉 원점(原點)을 돌이켜 비추어 본다가 되니 수유반조(須臾返照)는 모름지기 잠깐사이라도 마음의 자성(自性)을 돌이켜 비추어 보면이 된다.

승각전공(勝脚前空)의 승각(勝脚)은 보다 수승하다는 뜻이고, 전공(前空)은 ‘앞의 공(空)이니’ 눈앞의 공이고, 눈앞의 공은 경계(境界)를 공(空)으로 관(觀)하는 수행법이다.
경계(境界)를 관(觀)하는 수행법에는 화관(火觀), 수관(水觀), 백골관(白骨觀), 수식관(數息觀), 공관(空觀) 등과 같이 수행하는 대상을 불(火)이라고 바라보거나, 물 혹은 백골(白骨)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게 되면, 생각하고 바라보는 대로 그 대상이 바뀌어 나타나게 된다.

공관(空觀)이란 앞에 있는 경계, 즉 수행의 대상을 바라보면서 생각으로 공(空)하다고 보는 것이다. 계속해 보다보면 그 경계가 공하게 보이는데 공해진 경계를 앞에 나타난 공이라 해서 이 게송에서 전공(前空)이라 했다.
자기 내면에 있는 마음의 근본자리를 반조(返照), 즉 돌이켜 보는 것이 자기 밖에 있는 경계를 공(空)하게 한 것보다 수승하다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왜 반조(返照)가 전공(前空)보다 수승(殊勝)한가?
전공(前空)은 눈앞에 있는 대상이 공(空)한 것을 보았지만 그 법(法)이 공한 이치를 보지는 못하였다. 법이 공한 이치란 몸과 마음 등 일체 경계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제법은 인연(因緣)따라 이루어진 것이고, 인과 연은 시간과 장소가 변함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공한 것인데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공한 것만 보았으니 반조(返照)보다 못하고, 또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이치도 모르니 불생불멸하는 적정열반(寂靜涅槃)에도 들 수 없으니 반조(返照)가 전공(前空)보다 수승하다고 했다.

그러나 혹 어떤 수행자가 전공(前空)을 이루었다고 하면 적어도 거친 번뇌는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미세한 번뇌까지 소멸하여 일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불생불멸의 적정열반에 까지는 이를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비록 전공(前空) 수행법으로 전공(前空)을 얻었다고 하여도 마음 속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무념(無念)에 들 수는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조(返照)하는 수행이 더 수승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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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만스님/제행무상
오도행 [2016-11-10] : 삼법인을 다시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합장
법성화 [2016-11-10] : 큰언니법우님 공부를해도 참 어렵네요, 불교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것같습니다, 무슨공부도 다 그렇겠지만요^^오늘도 열심히 정진하는 고운날 되십시요 ()
성등 현수언 [2016-11-10] : 지도무난으로 시작됟 신심경은 알듯 말듯 읽고 생각하고 명상하면서 고부해야 될것같습니다,법성화법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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