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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信心銘(신심명)33~34,집지실도(執之失度) 필입사로(必入邪路)
법성화 2016-11-23 17:34:53, 조회 : 1,431,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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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집지실도(執之失度) 필입사로(必入邪路)

집착이 심하여 법도(法度)를 잃으면 반드시 삿된 길로 빠지리라.

집착으로 말미암아 법도(法度)를 잃으면 반드시 삿된 길로 빠진다는 말씀은 항간에 신문지상이나 방송 뉴스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학위에 집착해서 남의 논문을 표절한다거나, 이력서 학력 란에 허위로 기입하는 등 학력 위조로 삿된 길로 빠지는 것, 부(富)를 쌓기 위해서나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해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것, 혼외(婚外) 정사(情事), 노름, 마약 등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경우 등이 집지실도(執之失度) 필입사로(必入邪路)에 해당된다.

항간에 흔히 쓰는 두 가지 용어가 있다. 하나는 실용(實用)이고 다른 하나는 원칙(原則)이다. 실용을 세우다보면 원칙이 무너질 수도 있고, 원칙을 고집하다보면 실리(實利)가 없는 경우이다. 여기에서는 실리(實利)에 집착하다보면 원칙이 무너지고, 원칙이 무너지면 삿된 길로 빠진다. 즉 도덕성이 무너져 오히려 더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눈에 보이는 이익에 집착해서 법도(法度)를 잃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실리(實利)를 쫓다보니 법도(法度)에 어긋나는 행정을 했고, 그로 인해 정도(正道)로 가지 못했으며, 일이 오히려 더뎌져 정치와 경제에 많은 손실을 보게 된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미국 부시행정부가 현재 곤란을 받고 있고 또 국민이 어려움을 받고 있는 것도 좁은 소견으로 남을 믿지 못하고 정추(精麤)가 본래 일공(一空)임을 알지 못하고, 편당(偏黨)을 지어서 싸워 상대방을 정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오히려 극심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실리(實利)가 눈앞에 보이거나 상대의 잘못이 눈앞에 보이더라도 공(空)의 원점(原點)에서 그리고 중도(中道)의 입장에서 잘 살펴서 행하는 것이 법도(法度)에 맞는 실행(實行)이 되리라고 믿는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법답고 가장 빠른 길이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34 방지자연(放之自然) 체무거주(體無去住)

놓아 버리면 저절로 그러하여 본체(本體)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다.

집착을 놓아도, 하고자 하는 일이나 해야 할 일들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왜야하면 우리들의 근본인 체(體)는 가지 않아야 할 때 가는 법이 없고, 머물지 않아야 할 때 머무는 법이 없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본체인 우리들의 본심(本心)은 집착이 있는 곳에서는 현현(顯現)하지 않으니 머물음이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요, 집착을 여의었을 때는 그 자리에 현현하니, 간 것이 아니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집착을 놓은 자리에서는 저절로 그러하여 우리의 본심이 현현(顯現)하여 항상 우리와 더불어 있으니 본심이 사역(使役)하는 대로 하면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집착은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니 욕심을 버려야 하고, 욕심은 성격에서 성격은 습관에서 나오는 법이니, 욕심을 내는 습관을 버림으로서 집착을 지울 수 있다.

이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각자의 악습(惡習)을 고침으로서 본심에 일체 근심 걱정을 맡기고 본심이 사역하는 대로 열심히 정진하면 이루어 지지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이니 이렇게 하는 마음을 원력(願力)이라 한다.
체무거주(體無去住) : ‘본체(本體)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다.’는 것은 우리들의 본심은 마치 해가 짙은 구름에 가려졌을 때 보이지 않듯이 본심이 어리석은 집착으로 가려져 있을 때는 머물러 있어도 머물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구름이 개었을 때 해가 나타나는 것은 해가 본래부터 어디 간 데가 없기 때문인 것과 같이 우리의 본심도 어리석은 집착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것이니 본심이 본래부터 어디 간 데가 있는 것이 아닌 것에 비유된다.

‘체무거주(體無去住) 체(體)가 감도 없고 머물음도 없다.’ 는 뜻은 또 어리석음이 사라진 본심은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어 머물러야 할 때 가는 법이 없고, 가야할 때 머무는 법이 없다는 말도 된다. 또 바꾸어 말하면 가야할 때 가고, 머물러야 할 때 머물 줄 아는 것이니, 가고 오고 머묾이 사리에 맞게 자유롭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 명구는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앉을 자리 설자리를 안다. 밥 먹을 때와 쉴 때를 안다. 공부할 때와 쉬는 때를 안다 등등의 의미를 갖는다. 집착을 여의면 이익이 있는 일에 이익이 있을 것을 알고, 이익이 없는 일에 이익이 없을 것을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다. 즉 집착이 있을 때는 현상(現像)을 보는 눈에 착각이 있어 하는 일이 순조롭지 못해 괴로움이 깊어지지만, 어리석음이 없을 때는 체(體)의 본성(本性)이 현현(顯現)하여 그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眼目)이 있어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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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능스님/무소의 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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