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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信心銘(신심명)54~55. 구경궁극(究竟窮極) 부존궤칙(不存軌則)
법성화 2016-12-06 20:34:26, 조회 : 1,585,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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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구경궁극(究竟窮極) 부존궤칙(不存軌則)
구경과 궁극에는 궤칙(軌則)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경궁극(究竟窮極) 중 구경(究竟)은 ‘사리(事理)의 마지막,’ 궁극(窮極)은 ‘가장 마지막’이니 같은 뜻을 반복하여 더 이상 높은 것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게송 52)에서 지동무동(止動無動)하여 일체 번뇌를 소멸하고 중생제도의 길로 나가고, 53) 양기불성(兩旣不成)에서 대립되는 양단(兩段)이 성립되지 않으니, 만법제관(萬法齊觀)하여 만법을 있는 그대로 편견(偏見) 없이 가지런히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니 사리(事理)의 가장 마지막인 구경(究竟)에 이르게 되니 궤칙(軌則), 즉 궤도(軌道)도 없고 법칙도 없다고 했다.

구경에는 결국 공성(空性)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공성은 형체(形體)도 없고 색깔도 없는 것이나 바람과 같이 움직이기도 하고 볼 수도 있는 것이라 없다고 할 수도 없고, 또 크다고 할 수도 작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며,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입을 열면 잘못이 된다고 할 정도이니 궤칙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체법이 불법(佛法)인가 하면 불법(佛法)이 아니기도 하니 불법(佛法)이라 해도 틀릴 수 있고 아니라고 해도 틀릴 수 있으니 궤칙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니, 구경의 경지에서 궤칙이 있지 않다고 해도 사실 맞는 말은 아닌 것이다.
공성(空性)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하지만 불생불멸에서 생멸(生滅)이 일어나는 법이니 불생불멸이라고 규정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생멸(生滅)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세계라 하지만 불생불멸에서 나왔고, 또 불생불멸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생멸은 엄격히 현상세계만이라고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있고 없음의 사리를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그 이치를 깨달아야 할 것이며 사량(思量)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금강경(金剛經)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제7(第七)에서 말씀하시기를 :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須菩提言
수보리 의의운하 여래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유소설법야 수보리언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無有定法 如來可說 何以故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역무유정법 여래가설 하이고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게송 54)의 부존궤칙(不存軌則)과 금강경에서 일정(一定)한 법이 없다고 한 무유정법(無有 定法)은 같은 뜻이라고 생각된다.



55 계심평등(契心平等) 소작구식(所作俱息)
마음을 평등과 맺어서 일체 짓는 바를 쉬어라.


계심평등(契心平等)은 ‘마음을 평등하게 맺어라,’ 혹은 ‘맺으면’ 인데, 마음을 평등하게 맺는다는 뜻은 앞에서 양기불성(兩旣不成) 일하유이(一何有爾), 즉 ‘양쪽이 성립되지 않는데 어찌 하나가 있느냐,’고 한 단계에 이르면 사물을 잘못보아서 일으키는 편견(偏見)이 없으므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사물을 대할 때, 마음은 평등하여 만법(萬法)이 평등(平等)하게 마음에 와 닿아 연(緣)을 맺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계심평등(契心平等)이라 할 수 있다.

소작구식(所作俱息)의 소작은 조작(造作)하는 바인데, 말하자면 나와 남을 집착하여 남의 허물을 보고 그를 험담하거나 시기(猜忌) 질투(嫉妬)하여 일으키는 여러 가지 번뇌들이 모두 마음으로 조작하는 바이다. 그러하니 소작구식(所作俱息)은 이러한 편견에 의한 조작하는 바를 모두 쉬게 하라, 혹은 계심평등하면 조작하는 마음이 모두 쉬게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반대로 소작구식(所作俱息)하면 계심평등(契心平等)하게 된다고 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마음의 대상에 대해 조작하는 마음이 쉬어져야 일체를 평등하게 수용(受用)할 수 있는 계심평등(契心平等)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여하간 일체 사물을 평등하게 보고, 마음으로 조작하여 남을 험담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행위는 모두 쉬게 하라는 말씀이고, 또 이 말씀은 남이 이것을 하던 저것을 하든 살펴보지도 말고, 잘하는가? 못하는가 알려고 하지도 말며, 자기가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미국과 같이 다민족(多民族) 사회에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참으로 귀중한 좌우명(座右銘)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출처] 승찬대사 신심명 해설 - 현성(玄性)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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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스님/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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