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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信心銘(신심명) 56~57.호의정진(狐疑淨盡) 정신조직(正信調直)
법성화 2016-12-09 18:09:46, 조회 : 1,296,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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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호의정진(狐疑淨盡) 정신조직(正信調直)
심한 의심이 다 정화되면 바른 믿음이 조화(調和)롭게 하고 곧게 한다.

호의(狐疑)의 호(狐)는 여우이고 의(疑)는 의심이니, 여우처럼 의심이 많다는 의미이니, 의심이 대단히 많은 것을 호의라고 한다. 이렇게 심한 의심의 예를 들어 보면, ‘내 것은 왜 저 사람 것보다 작을까?’, ‘저 사람은 어떻게 나보다 돈이 더 많을까?’, ‘저 사람은 어떻게 나보다 더 잘생겼을까?’ 등 남과 자기를 비교하여 남을 의심하는 생각을 이어가는 마음이다. 어떤 사람이 하는 사업이 잘 되었을 때, 그를 축하해 주기보다, 자기 일은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하느냐고 의심하며 불만을 일으키는 마음이다.

이렇게 의심하는 마음은 항상 자기와 남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며 의심하기 때문에 그 의심은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소모적(消耗的)이고, 불만을 하기 위한 불만으로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고 스트레스로 심적 육체적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정진(淨盡)은 이렇게 심한 의심을 정화(淨化)하여 그 의심이 다하면 혹은 끝나면 이니 깨끗하게 해서 더 이상 깨끗하게 할 것이 없는 것을 말함이니 의심하는 마음을 완전히 정화한 마음이다. 즉 의심하는 마음이 완전히 정화되었을 때 바른 신심(信心)이 일어나고 그 신심은 일체를 조화롭게 보는 마음이고 왜곡(歪曲)되지 아니하고 곧은 마음이란 뜻이다.

조화(調和)로운 것은 내가 작으면 큰 것을 탓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와 조화롭게 보는 마음이고, 내가 추(麤)하면 정(精)한 것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조화롭게 보는 마음이니, 자기가 상대보다 크든 작든 불만이 없고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직(直)은 곧다 혹은 정직하다는 뜻이니 마음에 일어나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고, 그 마음이 고르고 바르다는 의미가 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심은 갈등을 일으키고, 갈등은 번뇌이니 그 번뇌를 정화하여 일상생활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갈등관계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일체가 평등한 것임을 볼 줄 알면 상대와 조화롭게 대할 수 있고 또 모호하거나 왜곡된 표현이 아니라 곧은 마음에서 곧게 표현하라는 말씀이라고 해석된다.

이는 또 바른 신심(信心)을 가지고 항상 상대와 조화롭게 그리고 정직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여 가면 필경에는 모든 의심이 정화(淨化)되어 정화하려야 더 정화할 것이 없게 되어 적정(寂靜)한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호의정진(狐疑淨盡) 정신조직(正信調直)을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57 일체불유(一切不留) 무가기억(無可記憶)
일체에 머물지 아니하니 가히 새겨놓고 기억할 것이 없다.


여기에서 일체(一切)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모든 것’이라 생각한다. 간택(揀擇), 증애(憎愛), 순역(順逆), 위순(違順), 취사(取捨) 등 만사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일체의 마음이다. 불유(不留)는 그러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머물음이 없다. 즉 일체만사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의미이다. 무가기억(無可記憶)은 마음에 머물음이 없으니 기억될 것이 없다.

작은 것을 작다고 불만하지 않았으니 마음에 남은 것도 없고 기억할 것도 없게 되는 이치이다.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꽃과 크고 작은 꽃들이 모여 서로 상대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대립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다양성이 오히려 저절로 그러한 자연이고 조화로워 아름답다. 어느 꽃이 더 좋고, 더 예쁘다는 차별심이 일어나지 않으니 생각할 것도 기억할 꽃도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전체의 꽃이 모두 평등하게 조화롭고 아름다울 뿐이다.

수많은 불법(佛法)이 그러하고, 세간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차별이 없고, 승(僧)과 속(俗)이 차별되지 아니하며, 부처와 중생이 차별되지 아니한다. 차별되지 않는다는 말이 다르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일체를 평등하게 대하므로서 조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고, 전체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볼 수 있을 때 다만 즐거울 뿐 개별적으로 특별히 차별해서 기억할 것도 마음속에 새길 것도 없게 된다는 말씀이다.

금강경(金剛經)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제4(第四)에서 말씀하시기를 :
復次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부차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소위부주색보시 부주성향미촉법보시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須菩提 於意云何 東方虛空 可思量不 不也 世尊 須菩提 南西北方 四維上下虛空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불야 세존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可思量不 不也 世尊 須菩提 菩薩 無住相布施福德 亦復如是 不可思量 須菩提 菩薩
가사량부 불야 세존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수보리 보살
但應如所敎住
단응여소교주

이 게송의 일체불유(一切不留)와 금강경의 응무소주(應無所住)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출처] 승찬대사 신심명 해설 - 현성(玄性)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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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주/부처님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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