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방송게시판
|
|
|
|
![]()
| 信心銘(신심명)71~73 단능여시(但能如是) 하려불필(何慮不畢) |
|
|
2016-12-18 20:43:19, 조회 : 1,408, 추천 : 0 |
|
첨부파일 : 20161018_073453.jpg (116kb) 다운 : 156
![]()
![]()
|
71 단능여시(但能如是) 하려불필(何慮不畢)
다만 능히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어찌 마치지 못하였음을 염려하랴.
단능여시(但能如是)의 여시(如是)는 이와 같이 인데, 이와 같이는 게송 68) 유즉시무(有卽是無) 무즉시유(無卽是有) 즉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다. 와 70)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 즉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다. 를 능히 이해하고 이와 같이 실천하고 있다면, 하려불필(何慮不畢)의 필(畢)은 마칠 ‘필’ 자이니 진리를 깨달아 유와 무(有無)나 일(一)과 일체(一切)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불이(不二)임을 통달하지 못할까 염려할 것이 없다는 말씀이다.
즉 그와 같이 실천하면 어느 때인가는 반드시 허명자조(虛明自照)하여져 유와 무(有無)가 원융하고 일(一)과 일체(一切)도 원융하게 되어 구경의 극락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른 궤도에 서 있으면 바른 궤도로 가게 될 것이요, 바른 궤도로 가고 있으면 어느 때인가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니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부터 염려하면 오히려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는 말씀이다.
72 신심불이(信心不二) 불이신심(不二信心)
믿음과 마음은 둘이 아니요, 둘 아닌 것이 믿을 신(信)과 마음 심(心)이다.
믿을 신(信), 무엇이 믿는가? 마음이 믿으므로 믿는 마음이다. 믿는 대상은 무엇인가? 연기(緣起), 중도(中道), 지도(至道), 지복(至福), 불생불멸 등을 믿는다. 연기, 중도, 지도, 지복, 불생불멸은 어디에 있는가? 내 마음에 있다. 그러면 믿는 내 마음이 연기하는 내 마음을 믿는 것인가? 그렇다. 내 믿는 마음인 능(能)이 그 믿는 대상으로서의 소(所)인 연기하는 마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마음이 그 대상으로 연기하는 마음, 중도적인 마음, 불생불멸하는 마음을 믿는 것이니, 이들은 능소(能所)의 면에서 보면 다르지만 한 마음인 일심(一心)에서 나오는 것이니 둘이면서도 다르지 않은 것이 진리이다. 이 진리를 신심불이(信心不二)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들, 즉 믿는 마음과 그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마음은 서로 다르면서도 둘이 아닌 신심(信心)으로 귀결(歸結)된다고 하여 불이신심(不二信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믿는 마음과 믿는 마음의 대상인 연기에 괴리(乖離)가 생기면 연기에 대한 믿음이 성립될 수 없으니 부처님의 근본사상에 대한 신심불이(信心不二)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연기에 대한 믿음에 괴리가 일어나지도 않고 의심이 없다면 연기를 보는 마음과 연기를 대상으로 믿는 마음은 괴리(乖離)가 생기지 않으니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하여 신심불이(信心不二)라고 했다. 그리고 또 연기를 보는 마음과 연기를 믿는 마음은 서로 다르지만 연기를 보는 마음이 연기를 믿는다면 연기를 보는 마음과 연기를 믿는 마음은 하나로 귀결(歸結)되어 조화를 이루고 원융해져서 한마음이 될 것이니 이 귀결된 마음은 하나라고 할 것도 없는 하나의 신심(信心)이니, 이를 불이신심(不二信心)이라 했다.
73 언어도단(言語道斷) 비거래금(非去來今)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 미래 현재가 아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란 말이나 단어의 길이 끊어졌다 인데, 이 뜻은 앞에서 설한 허명자조(虛明自照), 유즉시무(有卽是無) 무즉시유(無卽是有),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 등에서 설한 불이(不二) 법문은 이 자연의 이치가 둘이면서도 둘이 아니고, 둘이 아니면서도 하나도 아니므로 자연의 궁극의 진리는 언어(言語)의 길이 끊어졌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비거래금(非去來今)이란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앞에서 설한 게송 64) 종비촉연(宗非促延) 일념만년(一念萬年) 즉 종지란 (시간적으로)짧거나 긴 것이 아니니 한 순간이 만년이라고 한 뜻과 같은 맥락에 있는 말씀이다.
대도(大道)는 시간적으로 짧고 긴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니 한 생각이라는 짧은 순간의 대도의 원리는 만년(萬年)의 대도(大道)의 원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니, 이 일념(一念)과 하나 된 만년(萬年)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체가 일념(一念)에 집중된 삼매(三昧)에서는 만년(萬年)이 일념 하에 있으니, 과거, 현재, 미래의 분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비거래금(非去來今)이라 했다. 즉 거(去)는 과거, 래(來)는 미래, 금(今)은 지금이니 과거 현재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니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즉 의식(意識)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무리 긴 시간의 일이라도 과거, 현재, 미래가 분별되지 않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금강경 제18품 마지막 부분에
佛告須菩提 爾所國土中 所有衆生 若干種心 如來悉知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불고수보리 이소국토중 소유중생 약간종심 여래실지 하이고 여래설제심 개위비심
是名爲心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시명위심 소이자아 수보리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에서 설하시는 ‘마음’은 우리들이 알고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하신 것에서 우리는 일념만년(一念萬年)이나 비거래금(非去來今)을 우리의 의식으로 보고 사량하는 마음의 차원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한 것이 아닐까?
진리는 이 우주에 무시이래로 이미 있었고 우리는 끊임없이 그 진리를 말과 글로 표현하려고 하지만 그 표현들이 진리자체는 될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출처] 승찬대사 신심명 해설 - 현성(玄性) 스님
# 동안 스님 법우님 애쓰셨습니다.
신심명 73편으로 막을내립니다.
다른 불설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 ()#
-----------------------------------------------------------
태산보살님/날마다 좋은날 |
|
|
|
|
|
|
|
|
|
|
|
|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