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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해스님의 편역 법구경 - 위사카 이야기(게송 213)
법광(法光) 2017-01-21 14:51:33, 조회 : 1,248, 추천 : 0

제16장 쾌락의 장

게송 213

 

위사카 이야기

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수도원에 계시던 어느 때, 뿝빠라마의 건립자인 여자 신자 위사카와 관련하여 게송을 설법하시었다.


손녀 수닷따가 갑자기 죽자 위사카는 매우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녀는 위안을 받으려고 제따와나 수도원으로 부처님을 찾아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위사카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위사카여, 너는 사왓티에서 매일같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만약 네가 사왓티에서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너의 손녀로, 혹은 아들로, 손자로 생각한다면 너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잠시라도 마음은 편안치 않으리라. 위사카여, 한 어린아이의 죽음 때문에 건강을 크게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니라. 무릇 슬픔과 두려움은 지극한 애정 때문에 일어나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귀여워함 때문에 슬픔이 일어나고
귀여워함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난다.
귀여워함으로부터 해탈한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거니,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열린 눈 - 범능스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관련 글 옮겨 봅니다.>

아기가 태어나 백일이 되자 부모가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 축하연을 열었다. 초대받은 손님들이 선물을 들고 와 덕담을 해 주었다.

“아이가 관상이 아주 좋구먼!

나중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겠어!”

“아기 눈빛이 어쩜 이렇게 똘망똘망해요?

앞으로 큰 인물이 되겠어요.”

아기 부모는 싱글벙글하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이 아이는 나중에 죽을 겁니다.”

아기 부모는 버럭 화를 내며 그 손님을 당장 쫓아냈다.

위 이야기 속 남자는 진실을 얘기했다가 쫓겨났다. 그런데 다른 손님들이 거짓을 했기 때문에 환대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한 말은 일반적으로 하는 듣기 좋은 말들이었다.

우리는 언젠가 꼭 죽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다. 우리 모두가 죽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변하지 않는 진실, 죽음을 외면한다. 그저 우리가 꿈꾸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축하하는 자리에 죽음을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진실을 외면한 채 허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예일뿐이다.

부처는 일찍이 죽음의 의미를 깨달았다. 부처에게 죽음이란 ‘끝남’이 아니라 ‘올라감’을 의미했다.

죽음을 인식할 때 우리는 현실 생활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자아 해방을 첫 발을 내디을 수 있다.

불교의 수행 방법 중에 염사念死라는 것이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늘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다.

티베트의 라마교 겔룩파 창시자인 종객파는 염사를 깨달음을 얻기 위한 첫 단계로 보았다. 그는 염사가 모든 번뇌와 악업을 깨뜨리는 망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염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항상 정사定死를 생각해야 한다. 누구나 반드시 죽으며, 수명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늘어날 수 없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언제 죽을지는 정해진 것이 아니며, 언제든 죽을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처도 “목숨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는 한 번 내쉬는 사이에 있다”고 했다.

셋째,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고,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고, 오로지 자기 내면의 신념에만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한 마디로 염사란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생활함으로써 속세의 이익에 대한 애욕을 떨쳐 내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을 인식하고 죽음을 염두에 둔 채 사는 것은 비관적인 태도가 아니라 무한함의 시작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축복과 찬미의 말로 만들어 낸 낙관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즐거움에만 집중하고, 죽음이라는 진실을 일부러 숨기려 한다. 태어나서 자라는 오랜 세월 동안 죽음을 똑바로 보지 않는다.

그저 자신과 무관한 일이거나 아무 먼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가 죽음을 인생에서 필연적인 것임을 인식할 때 지금의 삶이 보다 더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이 필연인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들을 더욱 소중히 대하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 또한 느낄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때

비로소 소중해지는 것들이

보인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book.naver.com에서 옮김

오도행 [2017-01-21] :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불안, 걱정, 두려움을 다스리는 금강경의 지혜 ~~`감사합니다 성불하삽시오_()_
성등 현수언 [2017-01-22] : 죽음에 대하여 좋은 글 주셨네요 남의일을 보며 내일로 생각하는 것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는것 삶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하게 하여주었습니다.법광법우님 감사합니다.
普德華 [2017-01-22] : 법광법우님 올려주신 경전말씀과 불서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성불하십시요_()_
법광(法光) [2017-01-22] : 읽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이 지금 행복하시길 기도드리며 참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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