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head9.jpg
Home 방송안내 신행생활 음악수필 불교강좌
 
  운영자인사
  운영자소개
  방송시간표
  생방송듣기
  방송대화방
  윈앰프설치
  사이버연등
  후원금보시

무창포불교대학


  방송게시판

 연종집요. (七) 십념 왕생(十念往生)의 의의(意義)
법성화 2017-09-05 22:31:41, 조회 : 1,158, 추천 : 0
  첨부파일 : 514079379.jpg (39kb)   다운 : 115

실제크기로 보기

(七) 십념 왕생(十念往生)의 의의(意義)

어떤 이가 묻기를 「경에는 중생의 지은 업(業)이 저울과 같아서 무거운 데로 먼저 끌린다 하였는데, 중생들이 오늘날까지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한 적이 없거늘 어떻게 임종 시의 十념염불로 곧 왕생 할 수 있겠는가. 만일 十념으로 왕생한다면 무거운 데로 끌린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하였더니 그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은 나쁜 업(業)이 중하고 十념의 선(善)이 경(輕)하다 하거니와 十념으로 왕생되는 것은 곧 마음에 있고 연(緣)에 있으며 결정(決定)에 있는 것이므로 시간의 오래고 짧음이나 일의 많고 적은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 마음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허망(虛妄)하고 전도(顚倒)된 마음으로 짓는 것이요 이 十념은 선지식(善知識)의 안위(安慰)에 의하여 실상법(實相法)을 듣고 염불하는 것이므로 하나는 허망하고 하나는 진실하거늘 어찌 대비할 수 있으랴 千념이나 묵은 어두운 방도 일찰나(一刹那)의 광명으로 밝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유일마니보경(遺一摩尼寶經)에는「중생이 비록 수천거억만겁(數千巨億萬劫)을 애욕중(愛慾中)에서 죄에 덮여 있더라도 만일 불경을 듣고 一념이 선(善)하면 죄가 사라져 없어진다」하셨으니 이것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나) 연(緣)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망상(妄想)에 의하고 또 번뇌(煩惱) 과보(果報) 중생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나, 이 十념은 무상신심(無上信心)에 의하고 또 아미타불의 진실 청정한 한량없는 공덕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독(毒 )한 화살을 맞아 골육(骨肉)이 깨어져 상하였더라도 멸제약고성(滅除藥鼓聲)을 들으면 화살이 나오고 독이 제거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연(緣)에 있는 것이다. 『릉엄경(楞嚴經)』에 「비유하면 한 약이 있으니 이름이 멸제(滅除)라 만약 전쟁할 때에 이 약을 북에 바르면 그 북소리를 듣는 이는 화살이 빠지고 독이 제거되는 것이니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도 이와 같이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에 머무르면 그 이름을 듣는 이가 삼독(三毒)의 화살이 저절로 빠져 나온다」하였다.

(다) 결정(決定)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유후심(有後心) 유간심(有間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요 이 十념은 무후심(無後心) 무간심(無間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 결정에 있는 것이다 「지도론(智度論)」에는 「일체 중생이 임종 시에 죽는 고(苦)가 매우 절박하여 대단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므로 이때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대용맹(大勇猛)을 발하여 마음과 마음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증상선근(增上善根)이 되어 곧 왕생케 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적(敵)을 대하여 진(陣)을 쳐부술 때에 평생에 있는 힘을 다 쓰는 것 같이 이 十념의 선근(善根)도 그러한 것이고 또 임종 시에 一념의 사견증상악심(邪見增上惡心)이 생기면 능히 삼계(三界)의 복(福)을 기우려서 곧 악도(惡途)에 들어가게 된다」하였다.

                                                                              [安樂集]



임종 시의 염불하는 마음 밖에 후심(後心)이 없고 후심이 없으면 딴 생각이 섞이지 않으므로 임종 시에는 무후(無後) 무간(無間)의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맹렬하고 날카로운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고 평상시의 악업(惡業)은 유후(有後) 유간(有間)의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맹렬하지 못하고 날카롭지 못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十념에 왕생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경계(境界)에 있고 정(淨)에 있는 것이다.

(가) 마음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허망심(虛妄心 )이요, 염불하는 것은 진실심(眞實心)이니 진실로서 허망(虛妄)을 떨어버리는 것이 마치 千년이나 된 어두운 방에 아침 해의 밝은 빛을 막지 못하는 것 같은 것이다.

(나) 경계(境界)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전도경계(顚倒境界)에 연(緣)한 것이요 염불은 뛰어나게 기묘한 공덕에 연한 것이니 진정(眞正)으로써 허위(虛僞)를 여의는 것이다.


(다) 정(淨)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염의(染意)요, 염불하는 것은 정심(淨心)이니, 정심이 염의를 이기는 것이 마치 동자(童子)의 칼이 능히 천장(千丈)의 노끈을 끊으며 작은 불이 능히 萬 속(束)의 땔 나무를 태우는 것 같은 것이다.

                                                                              「 阿彌陀經通贊疎」


----------------------------------------------------------

법만스님/허튼소리


  이전글 아함경210. 소를 길들이듯 자기를 다스려라... 普德華 2017-09-06
  다음글 아함경209. 수행자의 거룩한 모습 普德華 2017-09-05

목록으로 수정하기 삭제하기 추천하기
ⓒ 2001-2004 by Passkorea Co., Ltd. All rights reserved   

후원금보시함

신행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