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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 23:23:18, 조회 : 1,056,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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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c2ee0711e62423a1755355052ac1c3f4_77887_1.jpg (75kb) 다운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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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처음으로 가르침의 바퀴를 굴리시다(중도와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계셨다. 부처님은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비구들이여, 출가 수행자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하여야 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 번째는] 감각적인 쾌락에 몰두하는 것으로 이것은 고통스럽고, 저열하고, 천박하고, 하찮고, 유익함이 없으며,
[두 번째는] 지나친 고행에 몰두하는 것으로 이것은 고통스럽고, 저열하고,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에 치우침이 없이 중도를 깨달았다. 중도는 통찰력을 주고, 지혜를 주며, 평화를 주며, 깨달음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이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여래가 깨달은 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바로 여덟가지 바른 길(팔정도)이다. 여덟 가지 바른 길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수단,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 이다. 이것이 여래가 깨달은 중도로서 통찰력을 주며, 지혜를 주며, 평화를 주며, 깨달음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이끈다.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괴로움이며,
싫은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며,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며,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가 괴로움이다.
괴로움의 근원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갈애는 쾌락과 욕망을 수반하며
여기저기서 쾌락을 찾아 헤매고 윤회로 이끈다.
갈애에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다시 태어남에 대한 갈애,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는 갈애가 있다.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갈애를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버려서 더 이상 갈애에 집착하지 않고
갈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괴로움의 소멸에로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그 길은 바로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수단,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근원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로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일찍이 어느 누구도 말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 이 들어본 적도 없는 진리를 알았다는 통찰력이 일어났고 지혜가 생기고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이와 같이 나는 신과 악마와 범천과 수행자와 브라흐민과 모든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최상의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흔들림 없는 해탈을 얻었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 ‘윤회하는 일은 이제는 없다.’ 라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겼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자 다섯 명의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에 기뻐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꼰단냐 비구는 티끌 없는 진리의 눈이 열렸다. ‘무엇이든지 생긴 것은 모두 소멸한다.’ 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때 부처님은 이렇게 감탄의 말씀을 하셨다.
“참으로 꼰단냐는 알아들었다.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다.”
이로 해서 꼰단냐 비구는 안냐-꼰단냐(깨달은 꼰단냐)로 불리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서 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다시 굴릴 수 없는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다.
한마음 있음이여 - 하윤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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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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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오늘 올려주신 글은 모레(수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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