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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6 13:28:10, 조회 : 1,103,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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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들자 모든 비구들은 몸을 땅에 던지고 슬프게 울었다.
“부처님이 멸도하심이 어찌 이리도 빠른가. 이제 중생은 도의 길은 쇠하고, 세간에는 눈이 없어지게 되었도다.”
이때 아니룻다는 비구들을 달래고, 아난다를 시켜 성중(城中)으로 기별을 해 부처님의 멸도(滅度)를 알렸다. 아침 일찍 소식을 접한 말라유 사람들은 비통해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람들은 각기 향과 꽃을 들고 와 부처님의 시신에 공양했다. 그렇게 하기를 7일이 지나자 사람들은 전륜성왕의 장례절차에 따라 시신을 씻고 향을 바르고 무명으로 감싸서 관에 안치했다. 절차가 끝나자 사람들은 부처님의 시신을 화장하려 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한편 이 무렵 마하카사파는 파바 국에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오다가 한 외도를 만났다. 카사파는 부처님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부처님이 멸도한 지 벌써 7일이 지났다’고 했다. 카사파와 그를 따르던 5백 명의 제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당황해 하며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무리 가운데 발난타(跋難陀)라는 비구는 이런 말을 했다.
“형제들이여, 슬퍼하지 말라. 부처님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그 노인은 항상 ‘이것은 하고 이것은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으나 이제는 듣지 않아도 된다.”
카사파는 이 말을 듣고 불쾌했으나 일단 참고 비구들을 재촉해 쿠시나가라로 향했다. 열반지에 도착한 카사파는 부처님의 유신에 예배하고 화장더미에 불을 붙였다. 화장이 끝나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사리에 공양하고 예배했다.
부처님이 열반하여 다비하고 사리를 공양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인근에 8개국의 왕과 백성들이 찾아왔다. 파바 국의 밧지 족, 카필라의 석가족 등이었다. 그들은 부처님과 각별한 인연을 내세워 각기 자기들이 사리를 모셔 가야 된다고 주장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군대까지 동원해서 오기도 했다. 사태가 자못 험악해지려고 하자 마침 향성이라는 바라문이 나서서 중재를 했다.
“여러분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분입니다. 부처님은 자비로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리 분배로 서로 다투고 죽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리를 모시고자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니 골고루 나누어 모시는 것이 옳습니다.”
왕들은 바라문의 중재에 동의했다. 그는 사리를 정확하게 8등분으로 나누어 분배했다. 그리고 사리를 담아 나누던 것은 자기가 갖겠다고 해서 허락을 받았다. 사리 분배가 끝나자 필발라 마을 사람들이 와서 화장하고 남은 재를 가져다가 공양하고자 했다. 그들도 허락을 받았다. 그들은 각기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돌아가 탑을 세워 공양했다.
장아함 3권 3경《유행경 遊行經》
나무아미타불 / 이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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