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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265
법광(法光) 2019-06-20 21:08:08, 조회 : 1,142, 추천 : 0



ㅇ 여섯 이교도 사상가의 견해

아자따삿뚜왕은 부처님께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저는 여섯 명의 사상가를 방문하여 출가 수행생활의 결실에 대하여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뿌라나 깟사빠는 대답하기를,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훔치고, 문을 부수고 도둑질하고, 강탈하고, 노상 강도짓을 하고, 간통하고, 거짓말하는 등의 나쁜짓을 해도 ㅗ그것은 악을 짓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날카로운 날을 가진 원반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갈아 한 무더기로 만든다해도 악을 지은 것이 아니며, 이 결과 때문에 악이 더 덧붙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남쪽 강변으로 가서 살해하고 살해하게 하더라도 악을 지은 것이 아니며, 이 결과 때문에 악이 더 덧붙지도 않는다. 갠지스 강의 북쪽으로 가서 보시를 하고 보시를 하게 하더라도, 제사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게 하더라도, 공덕을 지은 것이 아니며 이 결과로 공덕이 더 덧붙지도 않는다. 보시하고 자신을 절제하고 감각기관을 절제하고 진실을 말한다해도, 공덕이 되지 않으며 공덕이 더 덧붙지도 않는다.

막칼리 고살라는 대답하기를,
사람을 타락시키는 어떤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사람을 정화시키는 어떤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원인도 조건도 없이 타락되기도 하고 정화되기도 한다. 나 자신의 행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도 없고, 남의 행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도 없고,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도 없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들 자신에게는 힘이나 에너지가 없으며, 다만 그들의 운명에 따라서 그들이 속한 여섯 종류의 윤회의 조건에 따라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팔백사십만 대겁을 유뇌한 후 괴로움이 끝난다. ‘계행에 의하여, 의무의 수행, 고행, 청정한 수행생활을 함으로써 아직 익지 않은 업을 익게 한다든지, 또는 이미 익은 업을 점차적으로 없애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즐거움과 괴로움은 윤회에 의하여 이미 ㅣ정해져 있기 때문에 줄일 수도 없고 늘일 수도 없다. 마치 실타래를 던지면 감겨있는 실의 길이만큼 멀리 굴러가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윤회할 만큼 윤회한 후에 괴로움이 끝난다.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대답하기를,
보시나 제사 제물에 대한 공덕도 없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저절고 생긴 것도 없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최상의 지혜로 깨달아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말하는 바르게 수행하는 사문도 없고 브라흐민도 없다. 인간은 제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가 죽으면 땅의 요소는 땅의 본체로 돌아가고, 물의 요소는 물의 본체로, 불의 요소는 불의 본체로, 바람의 요소는 바람의 본체로 돌아가고, 감가기능들은 허공에 흩어진다. 관을 다섯 번째로 하여 네 사람이 시체를 메고 간다. 송경은 오직 화장터까지만 들린다. 뼈는 회색으로 변한다. 제식은 끝날뿐이다. 보시는 바보들의 생각이다. 죽은 후의 존재를 말하는 사람들은 거짓이며 빈말이다. 어리석은 자도 지혜로운 자도 죽은 후에는 몸은 파괴되고 없어져버린다. 죽은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빠꾸다 깟짜야나는 대답하기를,
다음의 일곱 가지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만들어진 어떤 것이 아니며, 창조된 것도 아니고 창조자도 없다. 그러므로 이 일곱 가지에서 생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일곱 가지는 산의 정상처럼 확고하고 문가에 세워진 기둥처럼 겸고하고 영원하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서로 방해하지 않으며, 서로 즐거움이나 괴로움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이 일곱 가지는 땅의 본체, 물의 본체, 불의 본체, 바람의 본체, 쾌락, 고통, 영혼이다. 이 일곱 가지에는 죽이는 자도 없고 죽임을 당하는 자도 없다. 듣는 자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고, 아는 자도 없다. 날카로운 칼로 목을 베어도 누구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칼날이 이 일곱 가지 본체 사이의 공간을 지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니간타 나따뿟따는 대답하기를,
이 세상에서 니간타는 네 가지 자아 절제로 자신을 절제한다. 그는 모든 물의 사용을 절제하여 찬물을 취하지 않는다. 악을 삼간다. 악을 삼감으로써 악을 완전히 버린다. 완전한 절제를 성취한다. 이것이 네 가지 자아 절제이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자아 절제로 자신을 절제하는 니간타를 일러 ‘자아를 성취한 사람,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자아가 확고부동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산자야 벨랏타뿟따는 대답하기를,
만일 그대가 나에게 ‘저 세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만일 내 생각이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되면 ‘다른 세상이 있다.’고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저렇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저렇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 세상이 있다고도 말하지 않고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만일 그대가 ‘우연히 생기는 존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또는 ‘선행과 악업의 과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또는 죽음 후에 삶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있다고도 말하지 않고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 저렇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저렇지 않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거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부처님, 이 여섯 사문이나 브라흐민의 주장을 듣고 나는 그들의 말에 찬사도 거부도 나타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옥아의 꽃신 - 심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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