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들은 성적이 여의치 않을 때 머리를 짧게 깍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는다. 이른바 삭발투혼이 경기력 향상에 영향을 끼치는지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이만치로 노력하고 있다는 각오를 널리 알려 악플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스님들의 삭발 역시 분별 망상을 끊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흡사 마음속에 들끊는 번뇌처럼, 끊임없이 자라는 머리카락을 승가에서는 무명초라 부른다. 잡초를 뽑는 심정으로 스님들은 정수리에 면도날을 가져다 댄다.
스님들의 삭발은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진 전통이다.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하고 왕궁을 빠져나오자마자 맨 먼저 한 일이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은 일이었다. “태자가 이제 수염과 머리를 깍았사오니 일체 번뇌와 죄장罪障을 끊어 주시옵소서. 이에 인드라는 머리칼을 받아 떠나갔으며 허공에서 여러 하늘이 향을 사르고 꽃을 흩으면서 ‘장하십니다. 장하십니다.’고 찬탄했다.(과거현재인과경)”
결국 삭발이란 수행자로서의 첫걸음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출가자에게 주어지는 최초의 의무는 삭발이며 파르라니 깍인 머리 앞에 스승은 법명을 선물한다. 새로운 신분과 이름을 받았으니 여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서원인 동시에 그리 하라는 격려다. “보전寶殿에 주인공 꿈만 꾸었더니 무명초 몇 해를 무성했던고. 금강보검 들어 번쩍 깍아 버리니 무한광명이 대천세계를 비추네. 옴 실전도 만다라 발다야 사바하.(집도게)”
머리카락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0.5밀리미터씩 자란다. 보름만 지나도 두발이 지저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통상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삭발한다. 보통 음력 14일이나 29일에 행한다. 삭발은 포살布薩과 관련이 있다. 포살은 대중이 모여 각자가 지난 15일 동안을 돌아보고 허물이 있었으면 참회하는 의식이다. 포살하는 날은 공식적으로 목욕하는 날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의 때를 씻고 머리를 깨끗하게 밀면서, 결연히 또 다른 보름을 시작한다.
또한 삭발은 불교만의 전통이기도 하다. 불교가 형성될 즈음 인도의 주류 종교였던 브라만교의 성직자들은 머리를 길렀다. 목사도 신부도 그런다. 탈모를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머리를 일정하게 길러 단정히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남자들은 교주인 마호메트를 본받겠다는 취지에서 수염을 기르는 것이 관행이다. 한편 삭발은 과거부터 죄인이나 천한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이기도 했는데, 부처님은 아마도 여기에서 삭박을 수행자의 상징으로 착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인도의 고질적인 신분제인 카스트를 부정하면서 출발한 불교는 만인의 절대적인 평등을 지향한다. 삭발은, 항거다.
그래서인지 부처님은 삭발을 소홀히 하는 비구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초기불교 율장인 사분율의 잡건도품은 수행자가 사용하는 도구에 대한 규정을 담았다.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심지어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사문을 보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꾸짖는 장면이 보인다. 아울러 머리가 긴 비구를 보면 “깍아라. 스스로 깍든지 남을 시켜서 깍든지 하라”며 타일렀다.
장아함경에도 수행은 삭발을 통해 비로소 발을 내딛는 것이라는 확신이 나타난다. 부처님은 “출가사문이 되는 것이란 무엇이냐”는 아사세 왕의 질문에 “수염과 머리를 깍고 삼법의三法衣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는 것”이라고 답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깍는다는 속담은 결심의 어려움을 시사한다. 알고보면 제 머리를 깍을 줄 알아야, 비로소 스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