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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7 22:55:32, 조회 : 1,364,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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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목사는 목사이고, 신부는 신부인데, 왜 스님만 ‘남’자를 붙일까?
‘스님’은 스님이다. 집을 떠나 사찰에서 평생을 거주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익히고 행하는 출가수행자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스승님’에서 스님이 되었다는 것. 출가자 본인이 자기의 스승을 ‘사승師僧님’이라고 높여 부르다가, 이게 ‘스승님’으로 뭉뚝해졌다. 게다가 발음이 불편하니 ‘승’마저 생략되면서 스님으로 굳어졌다는 추측이다.
특히 청빈과 금욕으로 일관하는 출가수행자의 삶은 누구나 본받을 만한 삶이다. 일반인이 승려를 스님으로 존칭하게 됐다면, 그만큼 예전부터 백성들의 폭넓은 인정과 지지를 얻어 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스님들은 중국에서 유학한 엘리트였고 신문물의 전파자였으며 뛰어난 한문학자였다. 유생儒生들이 건국한 조선은 그래서 국가의 오랜 지배층이었던 스님들을 무너뜨려야 했다.
또 다른 설은 ‘승님’에서 스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승僧이란 출가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화합하며 수행하는 공동체인 승가僧伽의 줄임말이다. ‘승’에 존칭 어미 ‘님’자를 합해 ‘승님’이라 하다가 받침 ‘ㅇ’이 소멸되면서 스님으로 변이됐다는 짐작이다. 스님을 폄하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중’이란 비속어도 본래는 승가 곧 ‘화합중和合衆’을 일컫는다.
『잡고雜攷』라는 문헌은 “중의 어원은 신라 때 한 마을의 우두머리로서 천신제 등 제사를 주관하던 ‘차차웅次次雄’이 있었는데, 불교가 전래된 이후 스님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차차웅 -> 자웅 -> ㅈ+웅 ->중’이 되었다”는 변천사를 소개하고 있다. ‘중’이라는 단어의 표면은 볼썽사납지만, 내면에는 스님의 위상과 영향력을 품고 있다는 점이 자뭇 얄궂다.
한편 이웃종교 성직자인 목사, 신부, 교무(원불교) 등과는 달리 유일하게 ‘님’자가 붙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심심찮게 갑론을박이 일어난다. “존칭 어미 때문에 신문과 같은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기록물에는 스님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문제 제기다. 종교간의 형평성을 고려해 ‘스님’ 대신 ‘승려’라고 써야 옳다는 논리에는 눈에 불이 켜져 있다.
실제 일부 언론에서는 ‘000 추기경’이나 ‘000목사’처럼, 스님의 법명을 앞세우고 직함을 뒤로 돌려서 표기하는 경우가 간혹 보인다. ‘00종정’ ’00 총무원장’ 하는 식이다. 다종교 사회이고 그리하여 종교를 균형적으로 다루기 위한 방책일 수 있겠으나, 불자들이 시선에서는 불교를 깍아내리기 위한 꼼수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님’에 대한 거부 반응은 인터넷에도 나타난다. 종단이나 스님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세간의 입방아에 오를 때, 네티즌들은 댓글에서 ‘님’음 빼고 ’00 스’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물론 승려僧侶조차 부정적인 뜻을 가진 낱말은 아니다. ‘짝 려’자를 쓰는데서 보듯, 승가와 비슷한 말이다. 말하자면 ‘스님들’이다. 이와 함께 부처님 당시의 언어인 빨리어 ‘samana’를 한문으로 음역한 사문沙門도 출가수행자를 이르는 별칭이다. ‘누더기 옷을 입은 사람’이란 뜻인 ‘납자衲子’ 역시 선원禪院을 중심으로 통용된다. 여하튼 ‘스님’이란 단어를 사회 전체 구성원이 별다른 불만 없이 사용하고 있는데, 억지로 바꾸려는 시도가 과연 사리에 맞는가 싶다.
더구나 한걸음 양보해서 승려와 같이 이른바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썼다가는 외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목사의 ‘사師(스승 사)’나 신부의 ‘부父(아버지 부)’에 이미 존칭이 함축되어 있지 않느냐”며 “다만 한자여서 의미가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한수 『조선일보』 종교전문기자의 생각도 이와 일치한다. “만약 종교간 평등을 실현하겠다고 스님과 똑같이 ‘목사님’ ‘신부님’이라고 공식적으로 편현하게 되면, 민망한 어감은 차치하더라도 사실상 ‘님’ ‘님’으로 존칭이 중복되는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서양도 마찬가지도. 미국인에게도 스님은 ‘스님’이다. 서울대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에서 박사후後 과정을 밟은 전前 조계종 교육아사리 명법 스님은 “영어권 국가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자리에 있다’는 맥락에서 목사는 주로 ‘레버러블reverable’, 스님은 주로 ‘베너러블venerable’이란 호칭을 덧붙여 예를 표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영어 약자 ‘ven’은 서구에서 스님을 뜻하는 접두사다. 어느 나라든 성직자는 공경의 대상이다.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뉘앙스 차이로 공연한 논란이 불거진다고 볼 수 있다.
언어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사회성이다. 결론적으로 ‘스님’은 엄연히 국어사전에 등재된 보통명사다. 불교계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연스럽게 듣고 말하는 단어다. “언어는 개인이 함부로 바꿀 수도 없앨 수도 없는 공용물이며 그것은 사회 구성원간의 약속으로 맺어진 것이다.” 언어학의 아버지라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말이다. ‘스님’을 대체할 낱말을 찾으려는 노력은, 어떤 측면에서 반사회적 행위인 셈이다.
참 다행이다 - 수안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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