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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17
법광(法光) 2020-01-18 17:37:43, 조회 : 1,165, 추천 : 0



17 스님들에게는 왜 삼배를 하나?


전국의 고찰들은 다들 아름답고 그윽하다. 발군을 꼽으라면 으레 다음의 세 곳이 회자된다. 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와 합천에 있는 해인사 그리고 전남 순천에 있는 송광사, 통틀어서 삼보사찰이라 한다. 불교를 이루는 근간인 삼보를 품은 덕분이다. 통도사는 불보종찰, 해인사는 법보종찰, 송광사는 승보종찰이다. 종찰宗刹이란 수식에는 근본이자 으뜸의 도량이라는 긍지가 묻어난다.

통도사는 부처님이 실제로 존재하는 절이기에 불보종찰이다. 엄밀히 말하면 부처님의 뼛조각 이른바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해인사가 법보종찰인 까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유명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어서다. 승보종찰 송광사는 사람을 보물로 키워냈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을 위시한 16국사國師부터 현대에는 무소유의 법정 스님까지, 고승高僧을 유독 많이 배출했다.

그럴듯한 생각과 함께 주변에 추종자깨나 있다면 누구든 종교를 만들 수 있다. 특급 연예인들은 거의 교주다. 종교의 구성 원리는 간명하다. 뛰어난 사람이 있었고, 그가 남긴 말이 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으면 종교가 된다. 이를 각각 교조敎祖, 교리敎理, 교도敎徒라고 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불법승佛法僧 삼보로 구성된다. 불은 불교를 창시한 부처님을, 법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승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 구체적으로는 스님들을 의미한다. 원칙적으로 '교도'에는 스님이 아닌 일반 불자들도 포함되겠다. 다만 불교가 최초로 발흥할 무렵이라면,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스님들이었을 것이다. 불법승 가운데 어느 하나만 빠져도 불교는 존속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낱낱이 귀중한 보배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부처님이 없었다면 불교는 시작되지 못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부처님은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스님들이 없었다면 부 처님이 아무리 위대했다손 흘러간 허명虛名에 불과할 것이다. 2,500여 년간 정법正法을 올곧게 지키고 올바르게 펼쳐 온 스님들은 불교의 얼굴이자 뼈대다. 그래서 스님을 만나면 신도들은 마땅히 예를 표해야 하는게 원칙이고 관습이고 미덕이다. 조계종 포교원이 발간한 『불교입문』은 “길에서 스님을 만나면 안면이 있고 없고를 떠나 합장 반배를 올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나이와 신분의 고저高低는 나중 문제다.

윗사람 앞에서 아랫사람이 절을 하는 건 동양의 오랜 전통이다. 불교 에서도 보편적인 인사법이다. 삼배三年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향한 대표적인 섬김의 방법이다. 양쪽 다리의 무릎과 양쪽 팔의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바닥에 대는 것, 이름하여 오체투지五體投地를 세 번 연거푸 하는 형식이다. 맨땅바닥이거나 장소가 비좁을 경우에는 약식略이 허용되기도 한다. 서서 합장한 채 머리와 허리를 굽히는 반배半年다. 물론 이때에도 세 번 한다는 것은 똑같다.

흔히 웃어른에게는 한 번 절하고 죽은 웃어른에게는 두 번 절한다. 삼배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겠다는 맹세를 지극한 마음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귀의 歸依란 ‘돌아와 의지한다.’ 곧 제맘대로였거나 제멋대로였던 그간의 마음을 뉘우치는 동시에, 절대적 존경의 대상인 삼보를 철저히 믿고 따르겠다는 취지다. 번뇌를 씻고 정성을 다한다는 뜻도 품었다. 그 마음이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간절하다는 맥락에서 귀명命이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절에 가면 맨 먼저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에게 삼배를 올리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찰 예절이다. 아울러 독실한 불자에게 스님은 곧 부처님이다. 스님에게 삼배를 하는 마음의 바닥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스님이 부처님에 버금갈 만큼 훌륭한 분이라는 믿음이 흐른다. 또한 삼배는 인사법이면서 수행법이다. 탐욕(탐食)과 분노(진瞋)와 어리석음(치痴)이라는 삼독심三養心을 없애겠다는 다짐이, 삼배를 할 때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몸의 낮춤은 마음의 낮춤을 위한 동작인 셈이다.

한편으로 스님들 개개인에 따라서 삼배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일 배만 하라거나 심지어 신도에게 맞절을 하는 스님도 간혹 보게 된다. 대개 ‘나는 삼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는 겸양의 태도에서 나온 배려다. 그래도 원칙적으로는 삼배가 권장된다. 단,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두는 개차법開遠法에 의거하면 일배라도 결례는 아니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장 원철 스님은 “스님께는 삼배를 하되 절을 받는 스님이 그만할 것을 권하면 그만둬야 한다는 구절이 『사미율의沙彌律儀』 에 나와 있다” 며 “이는 배례拜禮를 받는 스님의 의향이 중요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근대 이후 스님에 대한 삼배를 정착시킨 주역은 성철 스님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1947년 봉암사 결사結社는 한국불교의 풍토와 위상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 당시만 해도 조선시대 억불의 악습으로 승려들은 일반인에게 천시와 반말의 대상이었다. “오로지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며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의기투합한 스님들은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좌선으로 일관하며 사람들의 불신과 냉대를 조금씩 씻어 갔다. 그즈음 절들의 보편적인 생계 수단이었던 불공佛供과 제사 역시 정법正法 에 어긋난다며 일절 받지 않았다. 스님은 무속인이 아니라 수행자임을 확인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결사를 주도하던 성철 스님의 불호령이 압권이다. “스님은 부처님 법을 전하는 당신네 스승이고 신도는 스님한테서 법을 배우는 제자야. 법이 거꾸로 되어도 분수가 있지. 스승이 제자 보고 절하는 법이 어디 있어? 조선 500년 동안 불교가 망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그게 부처님 법은 아니야! 부처님 법에 신도는 언제나 스님들께 절 세 번을 하 게 되어 있어. 그러니 부처님 법대로 스님들에게 절 세 번 하려면 여기 다니고, 부처님 법대로 하기 싫으면 여기 오지 말아! 『수다라』 10집에 수 록된 성철 스님 법문(1995)"

삼배는 불교가 유입된 국가라면 어디서든 통용되는 문화다. 몸짓은 조금씩 다르지만 세 번이라는 원칙은 동일하다. 남방 불교 그러니까 동남아시아 불교국의 신도들은 스님의 발등에 자신의 이마를 세 번 맞대는 것을 최상의 예경이자 영광으로 여긴다. 중국에서는 우리처럼 오체투지가 아니라 무릎만 땅에 대고 허리를 꼿꼿이 편 장궤합장으로 머리만 세 번 조아리는게 관례다. 사실, 이게 더 힘들다.

이렇듯 나라와 풍습에 따라 다른 예법이지만, 본질은 같다. 신도는 삼배로써 하심下心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고, 스님 역시 공양供養에 걸맞은 인격을 잃지 않도록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별칭 가운데 하나가 응공應供이다. 충분히 공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존칭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닫히거나 격해질 때, 마음은 설움이 되거나 군림이 된다.





내가 다니던 시골 절 - 김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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