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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29
법광(法光) 2020-02-12 05:00:08, 조회 : 1,201, 추천 : 0



29 절은 왜 산속에 많은가?


한반도는 산들의 땅이다. 전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이며, 웬만한 촌락의 뒤편에는 뒷산이 있다. 산의 인문적 가치는 '높음'이라는 물리적 현상과 '오름'이라는 실존적 도전으로 완성된다. 산을 등반하는 자는 중력과 피로에 맞서며 세상과 맞서 싸울 힘을 기른다. 그러나 막상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평온하거나 우습다. 무엇보다 만물을 두루 포용할 수 있는 자리여서, 부처님을 앉혀 두기에 걸맞다.

우리나라 사찰은 위치에 따라 평지형, 산지형, 석굴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석굴형 사찰은 천연 혹은 인공 석굴 안에 지은 절이다. 대표적인 것이 불국사 석굴암. 공간이 은밀하고 시원하고 고즈넉해 주로 기도도량으로 활용됐다. 평지형 사찰은 예로부터 나라의 도읍지 부근에 형성됐다. 주로 왕실의 원찰 역할을 했는데 많은 도시인이 자주 오가면서 불교의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고려의 개성 영통사,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등이 이런 식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에 성행하던 패턴이었다. 그리고 널따란 토지를 소유했던 교단은 대지주 계급에 속했다.

산지형 사찰이 가장 보편적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우선 탈속주의와 풍수지리설의 영향 때문이다. 마을과 떨어져 우뚝 솟은 산은 가까이하기 어렵다. 그래서 멋지고 그래서 신령하다. 앞서 밝혔듯 우리나라는 산악신앙이 유행하기에 알맞은 지리적 조건이다. 조상들은 국토의 시원지를 백두산으로 삼았고 산신이 나라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강했다. 곤란에 처하거나 가뭄이 들면 산신에게 운명을 맡겼다. 비로봉, 관음봉, 문수봉, 보현봉, 나한봉, 천왕봉 등등.... 명산 봉우리들이 불보살의 이름들로 장식된 사실에서도 산악신앙의 강렬함을 엿볼 수 있다.

산지형 사찰은 세속 권력과 거리를 두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신라 말 선승의 결집을 이룬 구산선문九山禪門은 말 그대로 산문山門이다. 아홉 개의 산에 각각 자리한 선찰들은 수도였던 경주와 일정하게 떨어져 제도권의 귀족적 불교에 저항했다. 아울러 수행과 청빈으로 일관한 생활로 민중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풍수지리학을 국내에 도입한 도선국사의 산천비보설은 산악신앙에 이론적 풍성함을 더했다. 산천비보설이란 기력이 쇠진한 땅에 기를 불어넣어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지칭한다. 풍수학적 관점에서 산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땅도 사람과 같아 팔자가 끊임없이 오르내린다는 지리쇠왕설, 산천순 역설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도선국사는 지형이나 지세는 국가와 개인의 길흉화복을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이러한 전제에서 마치 인체에 뜸을 놓듯이, 기운을 북돋워야 할 산에 절과 탑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막강한 후견인이었던 고려 태조 왕건이 이를 충실히 실천했다.

물론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은 조선 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이었다. 이성계와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집권층은 중앙 집권 체제의 강화를 위해 사찰과 스님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절 땅을 몰수해 세수稅收를 비약적으로 증장시켰고, 승려의 대량 환속 조치로 군역을 충당할 머릿수를 대폭 늘렸다. 3대 임금 태종은 242개의 사찰만 남겨 두고 모조리 없앴다. 그나마 명맥을 잇던 승과(승려 과거 제도)를 폐지하고 대다수의 스님을 관노官奴로 삼았던 연산군은, 폐불廢佛에서도 압도적인 폭군이었다.

결국 빈털터리가 된 데다 천민 취급을 받아야 했던 스님들이었다. 백 성들의 눈에 띄는 곳에서는 도저히 남아날 수가 없었다. 왕족이 복을 빌던 극소수의 원찰을 제외하고는 모든 절이 산속으로 숨어들어 무속과 함께 연명했다. 그러나 기어이 살아남은 절들은 유서 깊은 문화재로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상전벽해이고 고진감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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