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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1
법광(法光) 2020-04-18 23:12:45, 조회 : 1,241, 추천 : 0



한 권으로 보는 세계 불교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편찬

불광출판사

Ⅰ. 인도불교사

1. 불교 흥기의 배경

기원전 6세기의 인도는 구질서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그려지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인도 문화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격변의 시대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종교와 철학의 변화와 발전이며, 둘째는 사회질서 및 고대국가 체제의 정비이다. 이를 다시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첫째는 베다 시대가 막을 내리고 브라만교가 성립했으며, 우빠니샤드 철학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대이다. 둘째는 불교와 자이나교를 비롯한 사문samana 사상이 흉기하며 베다ᆞ 브라만적 세계관을 압도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셋째는 유목 생활에서 농경을 기반으로 한 도시 문명이 건설되면서 기존의 사회질서에 변화를 초래한 시기였다.

브라만교의 성립과 우파니샤드 철학의 전개는 인도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아리아인들이 갠지스 강 유역에 정착했을 때 베다교는 새로운 변모를 꾀하여 브라만교로 변화한다. 이 시기 브라만교 사제들이 역점을 둔 것은 계급 질서(카스트제도)의 확립과 토착 종교의 브라만교화,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적 영역 확대였다.

계급 질서의 확립은 사회의 여러 계급에 적용된 신분을 규정함으로써, 사회의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또한 갠지스 강 유역의 여러 토착 종교를 베다 전통과 통합하는 작업을 거쳐 원주민이 숭배하던 비슈누와 쉬바를 베다의 주요 신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브라흐만Brahman 과 함께 우주의 창조, 유지, 파괴의 신 관념이 완성되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종교적 영역의 확대였다. 이는 곧 종교적 신앙의 요점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재생과 정령 gandiharve을 숭배하는 토착 종교는 생을 결정짓는 행위(業)의 유효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이들은 삶을 고苦라고 보고, 어떤 조건에도 좌우되지 않는 상태인 해탈을 목표로 삼았다. 현자들은 요가, 정진, 고행, 무욕의 활동, 지혜의 획득, 신과의 결합을 통해 해탈을 성취하고자 했는데, 이는 베다 전통에서는 낯선 것이었다. 브라만교의 사제들은 이러한 전통을 베다 속으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종교적 영역을 확장시켰다.

한편 이 시기의 사회는 유목 생활에서 농경을 기반으로 한 도시 문명이 건설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갠지스 강 상류 유역 평원에 철제 농기구가 도입되면서 농업 중심의 정착 생활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철기 문화의 발달은 밀림을 농경지로 개간할 수 있게 했고, 농업의 발달은 상공업의 발달을 촉진시켜 화려한 도시 문화를 가능케 했다. 소를 이용한 농업의 발달은 결과적으로 소 희생제를 하는 브라만교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사회 계급적 측면에서 상공업의 발달은 사회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는데, 바로 바이샤 계급의 지위 향상이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북인도는 인도의 군소 국가들이 끊임없는 전쟁을 하며 거대한 통일 왕조를 이루어 가는 과도기이기도 했다. 고대국가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왕권이 강화되었고, 카스트로 구분된 사회구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즉 이전에는 단순히 전쟁에서 용감히 싸우는 임무만을 강조하던 끄샤뜨리야 계급이 점차로 통치자인 왕족 계급으로 성장하면서 이전의 상위 계급이던 브라만 사제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바야흐로 끄샤뜨리야 계급이 브라만을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왕권의 신장과 상공업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브라만 중심의 사회질서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정치, 사회적 혼란은 역설적이게도 정신문화의 다양성을 자양분으로 삼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롭고 풍요로운 사상이 시대를 풍미하게 되었다. 후기 베다 시대 말기가 되면, 기존의 베다적 질서에 반대하는 사문 전통이 대두하기 시작한다. 이는 사제들의 타락을 비판하고 베다의 사상을 반대하면서 등장한다. 사문 전통이 대두되는 배경에는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 놓여 있다. 이러한 자각은 각 개인이 신과 같은 외적인 절대자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반브라흐마니즘anti-brahmanism의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베다 · 브라만적 질서에 반기를 든 사문 전통의 강력한 지지 세력은 이 시기 새로운 경제적 강자로 떠오른 바이샤 계급이었다. 바이샤 계급의 장자들은 경제적 부를 통한 사회적 역할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브라만교적 사회 체계 속에서는 자신들의 권리가 제한된다는 사실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불만은 자연스럽게 반브라흐마니즘의 기치를 든 사문들을 지지하게 된 동인이 되었다. 동시에 이들은 독립적으로 브라만 계급에 대항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통치 계급인 끄샤뜨리야 계급과 손을 잡는다. 끄샤뜨리야와 바이샤 계급이 브라만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종교 혹은 사상의 대체였다. 이 같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 불교와 자이나교로 대표되는, 비非베다 혹은 반브라흐마니즘의 사상인 사문 종교였다. 사문 사상은 끄샤뜨리야와 바이샤의 적극적인 비호 아래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외적으로는 기존의 모든 사회제도와 내적으로는 카스트라는 신분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반발이 일어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사회 혹은 국가라는 전체에 속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고 독립적인 개별적 · 주체적 존재 혹은 정신적 존재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① 부처님 당시의 여섯 사상가들
불교가 흉기한 시기를 전후해서 인도 사회에는 자유사상가들이 사회를 풍미하고 있었다. 이들을 불교 경전에서는 육사외도大師外道라고 총칭한다. 이 외에도 경전에서는 당시 62가지 사상이 난무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를 62견이라고 한다. 간략하게 정리한 여섯 사상가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아지따 께사깜발라Ajita Kesakambala
- 보시에는 아무런 효력도 없다. 제사를 드리거나 희생물을 바쳐도 아무런 효력이 없다. 선 · 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도 없다.
- 인간은 흙·물·불· 바람의 요소라는 사대四大(네 가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시신이 불에 타 버리면 백골만 남고, 공물도 재가 되어 버린다. 사후의 존재를 설하는 것은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 현세만을 긍정하는 현실주의적 경향이 강하여, '로까야따okāyata' 라고 하며, 불교 경전에서는 '순세외도順世外道’ 라고 한다.

뿌라나 까싸빠Pürana Kassapa
- 남의 집에 침입하거나, 약탈하거나, 남의 아내와 정을 통하거나, 거짓말을 했어도, 조금도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 사람이 사람을 죽이거나 괴롭혀도, 그것으로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고 정해져 있지는 않다. 사람이 보시나 제사를 행했다고 해서 공덕이 있다고 정해져 있지는 않다.
- 이러한 주장은 브라만교라는 종교의 제사를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악과보의 인과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
- 인간이 번뇌에 물들어 있거나 청정하거나 간에, 거기에는 아무런 인因도 연緣도 없다.
- 어리석은 사람이든 현명한 사람이든, 모두가 윤회를 통해 언젠가는 고통에서 벗어나는바, 던져진 실타래가 실이 끝날 때까지 풀리는 것과 같다.
- 인간의 노력이나 정진을 부정하며 모든 것을 자연의 이치라고 보는 자연론, 운명결정론으로 '아지비까ajivika' 라고 부르며, 불교에서는 '사명외도邪命外道’ 라고 한다.

니간타 나따뿟따Nigatha Nataputta
- 네 가지의 계율을 제정한다. 즉, 불살생 · 불투도 · 불망어 · 무소유라는 계율을 정한다.
- 모든 생물에게는 생명 · 영혼이 있다고 인정하고, 철저한 불해사상不害思想(아힘사)을 주장한다. 수행은 고행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빠꾸다 깟짜야나 Pakuddha Kaccayāna
- 인간은 일곱 가지 요소(地·水·火·風·樂·苦·靈魂)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칼로 찔러도 이는 단지 요소들 사이를 통과한 것일 뿐, 살인은 아니다.

산자야 벨랏티뿟따Sañaya Belatthiputta
- 선 · 악의 행위에 과보가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 결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하는 판단 중지를 주장한다. 이 가운데 자이나교의 교주인 니간타 나따뿟따와 회의론자인 산자야 벨랏티뿟따는 불교와 관련이 많은 사람들이다. 특히 산자야 벨랏티뿟따의 두 수제자는 부처님께 귀의한 사리뿟따sariputta 舍利弗와 목갈라나 Moggallāna 目犍蓮였다.


② 유행기 운동의 확산
인도의 종교 전통, 즉 브라만교에서는 인생을 네 단계로 구분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아슈라마asrama라고 하는데 범행기梵行期 Brahamacari, 가주기家住期 Grhastha, 임서기林棲期 Vana- prastha, 유행기遊行期 Sannyass로 구분한다. 성립된 당시인 후기 베다 시대에는 유행기가 생략된 세 단계로만 되어 있었다. 유행기가 갖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브라만교적 삶의 질서를 부정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정서가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즉 유행기는 후기 베다 시대 말기에 카스트로 첨예하게 구분된 사회구조에 대한 반발로서 물질을 추구하는 재가 중심의 삶에 대한 포기 운동의 성격을 갖는다. 앞의 세 가지는 각 카스트에서 규정하는 의례가 있지만 유행기의 경우는 카스트에 구애받지 않는다. 결국 범행기, 가주기, 산림기라고 하는 카스트를 기초로 하는 재가 생활의 문화에 반카스트의 이질적인 문화가 포함되어 아슈라마가 확립되었다.

사문 전통은 아슈라마에서 가주기와 임서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유행기로 나아가는 특징을 보인다. 부처님 역시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않고 바로 출가 유행의 길을 걷는데, 이는 당시 사문들의 자유로운 정신을 반영하기도 한다.

③ 부처님과 브라만교와의 관계
브라만교는 갠지스 강을 기점으로 서부 지역에서, 부처님은 동부 지역에서 활동했기에, 브라만과의 실질적 영향 관계는 없었다고 보인다. 발레 뿌생Vallee-Poussin은 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교 생기生起의 토대가 된 브라만교는, 브라흐마나와 우빠니샤드의 브라만교가 아니라, 오히려 인도 고대 요가를 상기시킨다.” 이 말의 의미는 부처님이 브라만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흔히 말하듯이 우파니샤드 철학의 영향을 받아 불교철학이 성립했다고 하는 일반설을 부정하는 것이다. 현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의 우빠니샤드조차 불교 흥기 이후에 성립한 문헌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 밖의 많은 우파니샤드가 오히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저술되었다는 학설이 피력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부처님 오신 날 - 비뮤티(홍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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