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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9 22:35:23, 조회 : 1,286,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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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의 생애
① 부처님의 연대 문제
인도 고대사를 기록 없는 역사라고 한다. 즉 어떠한 사건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 인도 고대사의 연도를 추정 할 근거가 있으니, 바로 아소카 왕의 즉위 연도이다. 아소카 왕의 즉위 연도는 주로 그리스 역사와의 관계에서 정해지는데 그에 따르면 기원전 268년이 된다. 인도불교사는 주로 이 연도를 기점으로 기술된다. 따라서 아소카 왕과 불멸佛滅을 몇 년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도불교사의 사건 발생 시기도 크게 달라진다.
아소카 왕의 대관식을 통해 불교 연대를 산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전승이 있다. 하나는 북방불교 전승이며, 다른 하나는 남방불교 전승이다. 북방불교 전통에서는 불멸 후 100년, 남방불교 전통에서는 불멸 후 218년으로 계산한다. 두 전승 가운데 어느 전승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정적이지 못하다.
남방의 전통에 따른 불멸 후 218년은 기원전 486 년이 되고, 북방의 전통인 불멸 후 100년은 368년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문헌에서 아소카 대관식을 불멸 후 116년, 160년, 234년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 남방불교에서는 부처님 열반을 기원전 543년으로 본다. 한국의 경우도 이 설을 따르지만 1년의 차이가 있다.
② 부처님의 생애
탄생
석가모니 부처님은 기원전 6세기, 북인도의 한 작은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공화정제의 까삘라왓투가 왕국의 이름이며, 아버지 숫도다나 왕과 어머니 마야 왕비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났다. 기록에 따르면, 부처님은 롬비니 동산에서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고 한다. 그 후 마야 왕비는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 숫도다나 왕은 아이의 이름을 싯닷타 siddhatta라고 지었다. '모든 것을 성취한 자' 라는 의미이다. 그러고는 예언자 아시따를 불러 아이의 미래를 점치게 했다. 아시따는 아이가 출가하면 부처님이 될 것이요, 세속의 왕위를 잇는다면 전륜성왕이 되리라고 예언했다.
부왕은 왕자를 위해 계절에 따라 지낼 수 있는 세 개의 전각을 지어 주는 등 왕자가 전륜성왕이 되길 바라며 온갖 즐거움 속에 살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또한 혹여나 왕자가 출가할 생각을 품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왕궁에는 병들고 늙어 추한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왕궁에는 언제나 젊고 활기차며, 아름다운 이들이 왕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온갖 맛난 음식과 아름다운 여인들, 화려한 음악과 꽃들이 왕자에게 세상의 달콤함을 속삭여 주었다.
사문유관
하지만 왕자는 기어코 감추어진 세상을 보게 된다. 늙음과 병듦, 죽음의 적나라한 세상과 마주한 사건을 경전에서는 사문유관이란 일화로 전하고 있다. 경전에 따르면, 왕자는 17세가 되던 해(문현에 따라 결혼 후로 기술되기도 한다), 처음으로 홀로 왕궁을 벗어나 세상과 마주한다.
먼저 동쪽 문으로 나서다 늙어 괴로워하는 노인을 보았다. 다음날엔 남쪽 문에서 병에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병자를 보았다. 서쪽 문을 나서서는 죽은 이를 장례 지내는 행렬을 목격한다. 이러한 노병사를 마주한 왕자는 커다란 충격과 함께 삶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를 품게 된다. '왜 인간은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지?' 왕자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북쪽 문을 나서자 깡마르고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맑고 강인한 눈빛과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수행자를 만난다. 왕자는 수행자에게 다가가 묻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죽음을 해결하는 것이 저의 목표이지요.” 드디어 왕자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그래,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은 수행자의 길이구나.’ 이처럼 사문유관은 싯닷타 왕자로 하여금 출가 사문의 길을 걷게 한 직접적 계기를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기술한 일화이다.
출가
출가를 빨리어로는 빠밧자 pabbaija라고 한다. 흔히 출가라 하면, 속가의 집을 떠나 절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확한 표 현은 '집으로부터 집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출가의 의미이다. 즉 소유의 상태에서 소유하지 않은 상태로 나아가는 길이다.
싯닷타 태자는 29세(분현에 따라 출가 나이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에 출가를 결행했다. 태자가 19세에 결혼했으니, 대략 10년의 결혼 생활 이후의 일인 셈이다. 10년 결혼 생활 끝에 아들 라홀라를 얻었으니, 추측컨대 태자는 결혼 생활에 별 흥미가 없었던 듯하다. 어려서부터 이미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홀로 사유하기를 즐겼던 태자였기에 새삼스러운 추측도 아닐 것이다.
성을 나선 싯닷타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아노마Anoma 강을 건너 아누삐야. Anupiya란 곳에서 잠시 머문 뒤,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Rajagaha(왕사성)에 입 성한다. 그곳에서 최고의 후원자이자 재가 제자가 되는 빔비사라Bimbisara 왕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빔비사라 왕의 정치적 권유를 사양하고, 싯닷타는 출가 사문의 길을 걸을 것임을 천명한다. 빔비사라 왕은 훗날 깨달음을 얻으면 자신에게 먼저 와 줄 것을 청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고행
빔비사라 왕과 헤어진 후, 수행자 싯닷타는 당시 유명한 두 명의 수행자를 찾아 제자가 된다. 불전에서는 그 두 스승을 '알라라 깔라마 Alara Kalama와 웃다까 라 마붓따uddaka Ramaputta' 라고 전한다. 이들에게 각각 무소유처정 無所有感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定을 배우지만, 곧 해탈의 길이 아님을 알고 떠난다. 이 들을 떠나 싯닷타가 다다른 곳이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고행림이었다. 고행림에는 다섯 수행자가 고행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고따마 싯닷타는 극단적인 단식과 호흡하지 않는 고행을 닦았다. 그 외에도 당시 고행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거의 모든 종류의 고행을 닦았다고 전한다. 하지만 6년에 가까운 고행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이에 싯닷타는 강물에 몸을 씻고 수자따라고 하는 마을 처녀의 공양을 받으며 몸을 추슬렀다. 이를 본 다섯 고행자들은 싯닷타가 타락했다고 비난하며 떠나 버렸다.
정각 성취
수행자 싯닷타는 자신의 수행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했다. 그러고는 어렸을 때 부왕을 따라 농번기 행사에 따라 가서 경험했던 선정 체험을 떠올렸다. 이는 욕망의 대상을 여원 것을 특징으로 하는 선정으로, 지금까지 수행했던 선정과는 차원이 달랐다. 싯닷타는 이를 바탕으로 선정 수행을 새로운 측면에서 접근하여 번뇌의 멸진을 통해 해탈을 성취했다. 이것이 바로 사선정 수행이다.
부처님의 정각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경전에 따라서는 '연기법'을 깨달아 부처님이 되었다는 설과 '사성제'를 통해 부처님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번뇌의 멸진' 이다. 번뇌는 재생의 원인이자, 해탈의 방해 요소이다. 이를 제거하여 선정 상태에 있거나 깨어 있거나 상관없이 늘 걸림 없는 해탈의 경지에 머물 수 있었다. 결국 수행자 싯닷타는 번뇌가 완전히 소멸하여 더 이상 재생하지 않음에 대한 확고한 지혜를 얻어 위대한 부처님이 되었다.
초전법륜과 전도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고 난 뒤, 당시의 녹야원鹿野苑 Migadaya 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고행림에서 만났던 다섯 수행자에게 법을 설하니, 이를 최초의 설 법 [初轉法輪]이라 한다. 그 설법으로 안냐꼰단냐 Anna Kondania를 비롯한 5명의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고, 부처님을 스승으로 하는 5명의 비구 승가가 성립되었다. 그 후, 야사Yasa 를 필두로 하는 54명의 젊은 브라만 청년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머지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이로써 세상에는 부처님을 포함하여 61명의 아라한이 존재하게 되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그 유명한 '전도선언'을 펼친다. “천신과 모든 지성을 갖춘 존재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법을 설하라. 둘이서 한 길을 가지 마라. 의미와 표현을 잘 갖추고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법을 설하라. 나도 우루웰라로 가리라.” 이러한 부처님의 전도선언은 불교가 추구하는 목적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또 당시 우루웰라에서는 불을 섬기는 이교도들이 커다란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까싸빠 삼형제가 있었는데, 우루웰라 까싸빠Murrela Kassapa, 나디 까싸빠Nadi Kassapa, 가야 까빠싸Gaya Kassapa였다. 그들은 각각 500명, 300명, 2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다음에 이교도 산자야 Sanjaya(육사회도의 한 사람)의 제자였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250명의 무리를 이끌고 개종해서 불교 교단은 비약적으로 교세가 확장된다.
열반
부처님은 정각 이후 45년간 쉼 없이 북인도 일대를 다니며 교화행을 펼쳤다. 그 사이 교단은 북인도 최대의 종교로 성장했으며, 위로는 수많은 왕들과 대부호 로부터 아래로는 불가촉천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진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부처님은 서쪽으로는 수라세나국의 마투라Mathura에서 동쪽으로는 앙가anga국까지 다녀갔다. 이 거리는 대략 2천 킬로미터에 해당한다.
교단의 성장과 함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나, 대표적으로는 까삘라국의 멸망, 비구니 승단의 성립, 데와닷따Devadatta의 반역, 앙굴리말라의 교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의 열반 등을 겪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 열반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를 기록한 것이 디가니까야Dighanikaya에 있는 『대반열반경 Mahaparinibbana sutta』이다. 이 경전은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 3개월에 걸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부처님은 웨살리 Vesali에 있는 짜빨라 Capala 탑묘에서 열반을 선언하신다. “지금부터 3개월 뒤에 열반에 들 것이다.” 이후 부처님은 빠와 Pava라고 하는 말라 족들의 도시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대장장이 아들 쭌다 Chunda의 공양을 받으시고 중병에 걸린다. 극심한 고통을 대정진력으로 감내하면서 꾸시나라 Kusinara 로 향한다. 꾸시나라에서 수밧다 Subhadda를 마지막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마지막 유훈을 남긴다. “형성된 것은 모두 소멸하기 마련이다. 방일 하지 말고 정진하여라.”
부처님은 반열반에 들고, 장례는 전륜성왕의 예와 마찬가지로 장엄된다. 상수 제자 마하까싸빠가 들아온 후 다비되었다. 그 후 부처님의 사리는 8개국(마가다국, 웨살리국, 까삘라왓투, 알라깝빠, 라마가마, 웨타디빠, 빠와, 꾸시나라)과 사리가 담겨져 있던 함(도나바라문)과 숯(삡팔리국)으로 나뉘어 10기의 사리탑이 세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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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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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안녕하세요? 올려주신 경전의 말씀은 모레(수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특히 코로나 19에 각별히 유의하시어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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