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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00:33:25, 조회 : 1,28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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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리스인과 불교
① 박트리아의 그리스 왕국
박트리아Bactira(B.C. 246~B.C. 138)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남쪽으로는 옥서스Oxus 강과 서쪽으로는 인더스 강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조로아스터교의 발상지이자,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넘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는 데 거점 역할을 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 지역에 왕국이 성립하게 된 것은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 제국의 분열로부터 시작된다. 박트리아는 바로 알렉산더가 박트리아에 정착시켰던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이다. 중국에는 대하大夏국이란 이름으로 전해졌다.
박트리아는 알렉산더 제국의 붕괴 후, 이란을 손에 넣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속령이었다. 하지만 디오도투스Diodotus는 셀레우코스 왕조에서 독립하여 박트 리아의 왕이 되었고, 그의 아들 디오도투스 2세에 이르러 박트리아의 확실한 주인이 된다. 그 뒤 유티데무스Euthydemus가 디오도투스 가문을 타도하고 박트리아를 통치한다. 불교와 인연이 깊은 박트리아의 왕 메난드로스Menandros(불교에서는 Milinda로 불림)는 유티데무스의 아들 데메트리우스의 딸과 결혼하여 왕가의 영토를 물려받은 인물이다.
불교와 그리스인들과의 만남은 멀리는 알렉산더의 인도 침입과 가까이는 아소카의 전도사 파견에서 찾을 수 있지만, 본격적인 교류는 메난드로스 왕의 등장 이후이다. 그가 실제 불교도였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불교 승단의 든든한 후원자였음은 확실하다. 메난드로스를 새긴 동전에 불교의 법륜이 새겨져 있어, 이를 증명한다.
여하튼 박트리아는 헬레니즘 문화를 인도에 전하는 전령사의 역할을 담당했고, 이를 통해 간다라 미술이 발전하게 되었던 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이 지역에 대한 불교 승단의 적극적 포교에 대한 의지는 결국 새로운 불교의 운동, 즉 대승불교가 이 땅에서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② 동서양 현자들의 만남
『밀린다왕문경 Milindapanha』은 불교의 나가세나Nagasena 존자와 박트리아의 메난드로스 왕 사이의 문답을 기록한 문헌이다. 이 문헌은 플라톤의 『대화편』 에 비견될 만큼 매우 높은 수준의 철학적 담론을 전하고 있다.
나가세나는 본래 브라흐만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출가하여 불교에 입문했으며 당시 승단의 존경을 받았던 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한편 메난드로스 왕은 그리스의 철학적 훈련을 받은 인물로 대단히 박식하며 현명한 인물이자, 그리스 왕 중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묘사된다. 그의 사후에는 제국의 도시들이 서로 유해를 차지하려고 다투었을 정도로 신망이 높았던 인물이다.
둘의 만남은 사갈라 sagala라고 하는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사갈라는 왕국의 수도였다. 사실 메난드로스 왕은 나가세나 존자와 대론하기에 앞서, 먼저 아유빨라 ayupala 존자와 대론하였다. 하지만 아유빨라는 메난드로스 왕과의 대론에서 왕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왕은 “인도 전체는 텅 비어 있다. 이는 마치 왕겨와 같다. 나와 함께 토론하여 나의 의심을 제거해 줄 은둔자나 브라만이 한 사람도 없다.” 라며 자신과 대론할 만한 현자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이때 등장한 이가 바로 나가세나 존자이다. 존자와의 대론에서 왕은 결국 수긍하고 불교로 개종했다. 두 사람이 나눈 대론의 주제는 ‘무아와 윤회', '명과 색의 재생', '아라한의 상태', '열반의 성질’, ‘붓다의 존재와 모든 존재에 대한 그의 우월성' 등에 관해서였다. 이는 사실상 당시 불교계의 핵심 논쟁이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였다. 현재 오늘날 불교학의 핵심 쟁점도 이들이 나눈 주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현자의 대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③ 간다라 미술의 형성
박트리아의 그리스인들은 기본적으로 여러 신상들을 조각하고 숭배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불교에서는 불상을 조각하거나 그리는 일이 없었다. 바르후트탑(기원전 1세기)과 산치대탑(기원후 1세기)에는 다양한 인물들과 신상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으나, 불상은 새겨져 있지 않다. 단지 붓다가 표현되어야 할 곳에 불좌佛座, 보리수菩提樹, 불족적佛足跡, 보륜寶輪 등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불상의 등장은 기원후 1세기 이후의 어느 시점부터이다.
이렇듯 붓다의 표현에 부정적이었던 인도인들을 변화시킨 것이 바로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인도에 들어온 후 서로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는 데, 그 결과 탄생한 문화적 융합을 그레코 부디즘creco-Buddhism이라고 한다.
그레코 부디즘이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서 기원전 4세기와 기원후 5세기 사이에 발전된 헬레니즘 문화와 불교 사이의 문화적 융합을 말한다. 이는 알렉산더의 인도 침략을 시작으로 인도와 그리스 문화의 오랜 상호작용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레코 부디즘은 불교의 예술 발전, 즉 간다라 미술의 등장과 대승불교에 영향을 미쳤다.
간다라 미술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지로는 대표적으로 핫다 Hadda, 시르캅silkap, 그리고 라니가트Ranigat 유적지를 들 수 있다. 핫다는 오늘날 동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잘라바드 Jalabad 시에서 남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고대 간다라 지역에 자리한 유적지이다. 점토와 회반죽으로 된 수많은 그레코 부디즘의 조각상들이 1930년과 1970년대에 핫다에서 발굴되었다. 유물은 불교와 헬레니즘 요소가 결합한 것으로 거의 완벽한 헬레니즘 양식의 조각상을 보여 준다고 평가받는다.
시르캅은 탁실라, 펀자브, 파키스탄의 도시 반대편 기슭에 있는 유적지의 이름이다. 시르캅 도시는 그리스 박트리아 왕 데메트리우스가 기원전 180년경에 인도를 침입한 후에 세웠다. 그 후 메난드로스 왕이 재건했다고도 한다.
라니가트 유적지는 파키스탄의 북서 변방 주N.W.F.P.에 자리하며, 산등성이를 따라 계곡 속에 산재되어 있다. 라니가트에 있는 불교 유적은 1848년에 유적지를 방문한 저명한 고고학 전문가 커닝햄A. Cunningham 경과 같은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파키스탄 정부의 고고 박물관청은 1975년 고대유물보호 법령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유적지로 선언했다. 파키스탄과 일본 공동 팀은 파키스탄 정부의 고고 박물관청의 지원 아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레코 부디즘이 대승불교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간다라 지방에서 대승불교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학설과 연관된다. 즉 박트리아 왕국의 그리스 통치자들에 대한 불교 교단의 적극적 포교 전략과 관련 있다. 신상을 제작하고 예배하는 데 익숙했던 그리스인들을 위해 불교 교단은 불상을 제작해 그들의 열망을 만족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더불어 이후 쿠샨 제국이 성립한 후 쿠샨의 통치자와 부호에 대한 적극적인 포교 활동도 대승불교라고 하는 새로운 불 교 운동을 전개하게 한 하나의 큰 흐름이었다.
부처님이여 - 야운(Yaw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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