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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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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17:03:14, 조회 : 1,15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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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따웅우와 꽁바웅 왕조
1) 따웅우 왕조
잉와와 바고를 평정하고 통일을 이룬 것은 북부의 버마족이 이주하여 세운 따웅우 왕조이다. 민찌뇨Minkyinyo(1486~1531) 왕이 잉와 왕조를 제압하면서 새 왕조를 열고, 2대왕 따빈시웨띠 Tabinshweti(1531~1551)가 바고 왕조를 격퇴시켜 완전한 통일을 이루면서 태국과 라오스를 위협하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어 왕위에 오른 바잉나웅Bayinnaung(1551~1581)은 미얀마의 성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데, 그는 몬족을 정복하고 테라바다불교를 지원하면서 훌륭한 학승들을 배출했다. 또한 동물 희생제와 같은 의례를 금지시키고 불탑을 복원하고 불경을 보급하며 불교를 포교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버마족과 몬족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왕조는 서서히 쇠락한다. 1600년 냐옹안 Nyaungyan 왕조 이래 모든 왕들도 불교의 융성을 위해 힘써 빨리어 전적의 번역 작업 또한 진척을 이뤘지만, 17세기 이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이 차례로 미얀마를 침범하면서 결국 왕조가 몰락한다.
2) 꽁바웅 왕조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Konbaung dynasts(1752~ 1885) 왕조는 알라웅빠야 Alaungpaya(1752~1760) 왕이 세웠다. 그는 몬족을 토벌 하는 오랜 전쟁을 치르면서도 불교를 적극 장려하며 빨리 니까야 및 그 주석서들을 번역했고, 양곤에 있는 부처님의 불발佛髮을 모신 쉐다 곤shwedagon 파고다를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18세기에는 보수파와 개혁파가 계율의 해석을 두고 논쟁을 벌이면서 양분된다. 특히 승복 착의법에 대한 통견파와 편단파의 논쟁이 유명한데, 보도파야Bodawpaya(1782 ~1819) 왕이 여기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는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양 어깨를 모두 덮는 승복을 입는 통견파로 승가를 통일하면서 단일 교단을 이끌어 간다. 또한 스리랑카의 사미승들을 불러 구족계를 주어 카스트가 낮아도 출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들은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가 아마라뿌라파를 형성하여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19세기에 들어 영국과의 전쟁이 이어지다가 1852년에는 미얀마 남부가, 1885년에는 수도 만달레이가 점령되면서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미얀마의 근대화를 이끈 민돈Mindon(1852~1878) 왕은 외세 침략으로 황폐화된 민심을 불교를 통해 다잡는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전을 미얀마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벌이면서 교학도 발전했는데, 1871년 왕의 지원으로 만달레이에서 2,400명의 장로들이 테라바다 제5차 결집으로도 불리는 제5차 세계불자대회를 개최한다. 여기서 민돈 왕은 불교 경전의 내용 차이를 논하도록 하고, 미얀마 문자로 된 빨리 삼장과 의소義流를 정비하고 편찬을 지시했다.
이는 기원전 1세기 제4차 결집 때 제작한 패엽경의 필사 과정에서 발생한 시대적 오류를 시정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실행되었다. 경장 410매, 율장 111매, 논장 208매 등의 개정판 빨리 삼장과 주석서를 정비하고 편찬하여 영구적인 대리석 판으로 제작하고 총 729매를 조성하여 쿠토도Kathodaw 파고다에 안치한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승단의 질서가 무너져 미얀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쉐진 Shwegyin파, 드와라 Dwara파, 겟트윈Hngettwin파 등이 발생한다. 민돈 왕의 종교회의를 주도한 수담마 Sudhamma파는 새로운 세 파를 인정 하지 않았지만 민돈 왕의 중재로 모두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나눔 - 이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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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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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거사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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