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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0 00:03:37, 조회 : 1,200,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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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반도 중앙부에 자리한 나라로 전체 인구의 대다수가 테라바다불교를 신앙한다. 인구는 800만 명에 이르며, 크메르족이 다수 종족에 해당한다. 인도에서 힌두교와 대승불교가 유입되면서 캄보디아의 고대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캄보디아불교에는 힌두교와 토착적인 요소가 혼재된 경향이 강하다. 앙코르 왕조가 건립한 세계적 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Angkor Wat가 대표적이다. 힌두 사원 이면서도 남방불교 건축의 정수로 일컬어지는데 이처럼 힌두교와 불교의 문화적 혼융이 캄보디아 문화의 특징이다. 12세기 이후 스리랑카로부터 건너온 테라바다불교의 기반이 구축되면서 불교가 부흥했고, 13세기 말 태국의 침략 이후 태국불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현재의 캄보디아 테라바다불교의 전통이 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1) 부남과 진랍 왕조
기원후 1세기 무렵 메콩 강 삼각주 유역에 성립된 캄보디아 최초의 국가가 부남扶商 Fu Nan 이다. 캄보디아인들은 기원전 3세기 아소카 왕 이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소나와 웃따라 장로를 보낸 수완나품Suvannabhumi 金地國이 부남 왕조이며, 이곳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여긴다. 당시의 수완나품, 즉 부남 왕조에는 몬족 · 크메르족 · 라와 Lawa족 등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힌두교가 번성하여 인도화印度化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375년경 세워진 산스끄리뜨 비문을 통해 부남 왕조 때 테라바다불교가 전래되었고 대승불교도 전 파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남의 자야와르만Jayavarman(478~514) 왕은 484년 중국 무제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인도 출신인 나가세나 Nagasena 스님을 통해 “부남국은 국교가 브라만교로 주로 쉬바 Siva신을 모시지만 불교도 성행하여 신도 수가 많다.” 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중국과의 교학적인 교류도 활발하여 만드라세나 Mandrasena가 『문수반야경文殊般若經』2권을, 상가빨라sanghapala는 『아육왕경阿育王經』총 10권을 크메르어로 번역했다. 이어 왕위에 오른 루드라와르만Rudravarman(514~550) 시기에는 519년 중국의 황제에게 전단향 불상을 보내면서 “부남 왕국은 3미터 길이에 달하는 부처님의 모발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고 전하자 중국 황제가 석운보釋雲寶 스님을 부남으로 보내 모발 사리를 모셔 오도록 했다. 535년에는 인도 승려 구나라타나Gunaratana를 중국에 보내고, 546년에는 패엽경으로 제작된 대승 경전 240권을 보내면서 부처님의 모발 사리를 다시 회수한다. 구법승인 당나라 의정의 『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에서는 “이곳 사람들은 천부天部 deva에게 제사를 지냈지만 나중에는 불교가 융성하게 되었다. 현재는 악왕惡王이 나와 불법을 멸하여 승려가 없다.”고 부남 왕국을 설명했다. 여기서의 악왕은 부남국을 멸망시킨 진랍 Cherla 왕국의 바와와르만 1세Bhavavarman I(553~611)로 보이며, 당시 부남 왕조의 불교가 쇠망해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와와르만 1세는 부남 왕조를 멸하고 진랍 왕조를 세웠지만 후왕 바와와르만 2세Bhavavarman II(639~657) 때까지도 소소한 전쟁을 치르면서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자야와르만 1세Jayavarman I(657~681)는 오랜 전쟁을 끝내고 통일 왕조를 세웠는데, 이 시기에는 대승불교가 융성해져 테라바다불교와 공존하면서 발전하여 상당히 많은 승려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8세기 초 메콩강 하류 연안의 진랍과 북서부 내륙의 진랍으로 분열되었는데, 해상무역의 쇠퇴로 연안의 진랍보다 농경 지대를 기반으로 한 내륙의 진랍이 강성했고 이를 재통일한 인물이 앙코르 왕국의 창시자인 자야와르만 2세이다.
불자라서 행복합니다 -김국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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