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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00:56:13, 조회 : 1,162,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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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여조와 완조 시대
1400년에는 순종의 외척 여계리 Le Quy ly(1350~1410)가 호조胡朝를 세우지만 1406년 명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식민지로 전락한다. 1427년까지 명의 지배 기간에 유교와 도교가 유입되면서 불교는 탄압의 대상이 된다. 1428년 명을 축출하고 독립을 쟁취한 후 여조黎朝 를 세운 여리象利 Le Loi(1428~1433) 왕은 불교에 유입된 도교적인 색채를 제거하고 불교를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여조 시기에 불교는 정치권으로부터는 대접받지 못하고 서민층에 뿌리내린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죽림파의 선이 점차 정토적인 색채를 띠면서 16세기경에 연종蓮宗이 창종된다. 연종은 송대宋代에 유행했던 백련종白蓮宗에 영향을 받은 인각(1649~1733)이 죽림삼조竹林三祖의 교의에 염불, 밀교 의례, 베트남 고유의 민간신앙인 신도를 교묘하게 배합한 종파로 죽림파에서 분파되어 개창되었다.
여조 후기의 난세에 승룡(하노이)의 정씨鄭氏, 베트남 중부의 완씨阮氏, 중국 국경에 자리한 막씨莫氏 사이에 내전과 분열 시대가 펼쳐진다. 연종은 이 시기에 주로 정씨의 안남安南 왕국에서 발전했고, 완씨의 광남국廣南國에서는 중국인 승려 원소原韶(1648~1739)가 임제정종臨濟正宗 으로 칭하는 원소선파原詔禪派를 창립하고 나무아미타불을 공안으로 삼으면서 선과 정토사상의 일치를 주장했다. 임제정종은 임제선을 내 세우면서도 신앙 내용은 정토염불 위주였는데 이는 연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며, 이로써 정토염불이 민간신앙의 주축을 이루었다. 이후 여조 시대는 1789년 민제가 청에 망명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태국 라마 1세와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아 1802년 전국을 통일한 완복영阮福疾(1762~1820)은 완조를 세우면서 제1대 세조인 가륭제嘉隆帝가 된다. 그는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경시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특히 연종을 억압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불교는 더욱 민중화되었고, 사원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내거나 공자와 노자를 모시는 도교적 색채가 짙어지는 습합적인 성향도 강화되었다. 이후 베트남불교는 유불도의 혼합이 강해지면서 점점 쇠퇴하여 권력에 대항하는 민중적이고 반권력적인 세력의 중심지가 되어 갔다.
가륭제는 자신을 지원한 프랑스에 대한 보답으로 가톨릭을 탄압하지 않았으나, 1820년 즉위한 제2조 성조 명명제 明命帝는 유교를 숭상 하면서 가톨릭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1833년에 가톨릭 신앙과 선교를 금지한다. 1836년에는 선교사를 사형에 처하는 법을 발표 하면서 프랑스의 반발을 사게 된다. 1845년 프랑스는 사형선고를 받은 선교사의 사면을 요구하고 1847년에는 통상조약의 체결을 압박하면서 무력 침략을 개시한다.
결국 베트남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총독 지배하에 놓이면서 식민지화되었다.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베트남을 무력으로 침공할 무렵인 1848년, 베트남 남부의 메콩강 델타 지역에서 보산기향寶山奇香의 단명완役明緩이 무사무승염불無寺無僧念佛을 주장하면서 정토교 신흥 교단인 보산기향파를 세운다. 이 종파는 남부의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부흥하여 반反프랑스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1939년 안강성의 화호和好 에서 화호교和好敎를 창시한 황부수黃富敎는 보산기향파 제4조라고 자칭하면서 전투적 농민 집단을 이끌며 반反프랑스 투쟁을 지속한다.
④ 근대와 현대 불교
프랑스의 식민 지배는 베트남불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왕권과 권력이 유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가톨릭이 상층계급으로 침투하면서 불교는 민중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았다. 남베트남 정부 시대에는 수많은 승려들이 공개적인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행하면서 정부의 폭압에 항거하는 정치 참여적 행동을 보였다. 베트남 민중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래 반反프랑스 투쟁을 지속했다. 1930년대에는 호찌민Ho Chi Minh 胡志明이 인도차이나공산당을 창설하고, 1941년에는 베트남독립동맹을 결성해 게릴라 활동을 펼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트남을 점령한 일본은 1945년 3월 공산 정권을 내세우면서 바오 다이Bao Dai 保大를 왕으로 삼았다. 일본이 패전한 후 바오 다이는 폐위되고 1945년 10월 호찌민을 주축으로 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를 하노이로 정한다.
베트남민주공화국은 1954년 제네바협정을 통해 독립국임을 인정받지만 소련이 지원하는 북부와 미국이 지원하는 남부로 임시 분할된다. 남베트남은 반공주의자인 응오 딘 지엠 Ngo Dinh Diem (1901~1963)을 대통령으로 세웠으나, 용오 딘 지엠의 가톨릭 우대정책에 반발하고 통일을 외치는 이들이 정부의 탄압과 독재,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대규모 반독재, 반디엠, 반미운동을 전개했다. 1963년부터 각지에서 불교도에 의한 반정부운동이 일어났는데, 1963년 6월 틱광둑Thich Quang Duc 釋廣德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반정부 투쟁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격렬하게 타올랐다. 1963년 11월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 쿠데타로 응오 딘 지엠은 총살되고, 이듬해 사이공의 사리사舍利寺에서 11 개 불교회가 모여 통일불교연합 UBCV(Unified Buddhist Church of Vietnam)이 출범한다. 이 단체는 남베트남 정부의 비인도적인 탄압에 대한 비판 세력이 되었으며, 중앙 사찰에 해당하는 월남국사越南國寺를 건립한다. 그러나 1966년에는 사이공 정부에 대한 전투적인 입장을 명확히 한 영엄사파永嚴寺派와 온건한 인광사파印光寺派로 분열된다.
1975년 북베트남의 승리로 공산화된 통일 베트남은 마르크시즘의 종교정책에 의해 인도차이나 공산국가처럼 불교를 탄압하고 통제했다. 이후 20세기에 접어들어 개혁적인 인물의 등장과 함께 개방정책으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며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면서 불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한 제약도 많이 완화되었다. 2008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틱광도Thich Quang Do 釋義度 스님처럼 베트남 정부의 종교 편향정책에 반대하며 평화와 비폭력 기조 속에 끈질기게 종교의 자유와 인권 수호를 주장하고 있는 인물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현재의 베트 남불교는 정부와 조화로운 성향을 보이면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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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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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올려주신 경전의 말씀은 내일(목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오늘도 부처님 법 안에서 평안하시고 참 좋은 날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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