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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님의 증도가 강의-001
普德華 2020-08-29 05:33:32, 조회 : 1,318, 추천 : 0
강의를 시작하며

『증도가(證道歌)』는 예로부터 『신심명(信心銘)』과 함께 선시(禪詩)의 백미로 꼽히는 글입니다.
또한 선(禪)을 공부하는 이들에겐 필수지침서라 할 만큼 중요하고 익숙한 글입니다. 수많은 역대 조사 스님들이 법문에 『증도가』를 인용하셨고, 선방에서도 『증도가』를 외우지 못하면 대화가 안  될 정도입니다.

먼저 제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증도가'는 증득할 증(證), 길 도(道), 노래할 가(歌),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서 도를 증득한 노래, 도를 증득하고 부르는 노래, 즉 '깨달음의 노래'입니다. 따라서 오도송(悟道頌)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사실 팔만대장경이 몽땅 부처님의 깨달음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가장 먼저 설하신 『화엄경』입니다.

부처님과 조사들의 확철대오(廓徹大悟)만 깨달음인 것은 아닙니다.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나름대로 깨달은 바가 있고, 일상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롭게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비록 각성(覺性)의 힘이 미약해 널리 적용되지 못하고 오래가지는 못하지만 그것 역시도 깨달음입니다. 또한 깨달음은 단 한 차례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을 통해 과거 조사 스님들도 몇 번씩 깨달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요(禪要)를 남기신 고봉원묘(高峰原妙) 선사도 큰 깨달음만 몇차례 있었고, 『서장(書狀)』을 남긴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도 여러 차례 깨달으셨습니다. 작은 깨달음이 쌓이고 반복 되다 보면 큰 깨달음도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영가스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한 내력은 『육조단경(六朝壇經)』 「참청기연품(參請機緣品)」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영가 스님은 당나라 절강성(浙江省) 온주부(溫州府) 연가현(永嘉縣)출신이고, 성은 대(戴) 씨, 자(字)는 명도(明道)입니다. 여덟살에 출가해 경.율.론 삼장을 두루 섭렵하였고, 천태종을 계승할 유망주로 촉망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천태종 제 8조인 좌계현랑(左溪玄朗) 법사가 그와 동문수학한 사이입니다.

스님은 개원사(開元寺)에서 지낼 때 우연히 현책(玄策) 스님이라는 분을 만나게 되는데, 이분이 육조대사의 제자였습니다. 현책 스님이 이야기를 나눠보니, 영가 스님의 불교에 댜한 소견이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상당히 깊은 경지에 이르렀는데, 당신의 법사는 누구입니까?"
"제가 방등(方等)의 여러 경론을 공부할 때는 각각 가르쳐 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후 『유마경』을 읽다가 부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깨달은 바를 증명해 주는 분이 분이 아직 없습니다."

스님들의 행장을 살펴보면 깨달음의 계기가 참 다양합니다. 현각 스님은 경전을 보다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자 현책 스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이라면 인가(認可)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위음왕불 이후에 만약 인가해 주는 스승이 없다면 그자는 천연외도(天然外道)입니다.

위음왕불은 아득한 과거에 출현하신 최초의 부처님입니다. '위음'에서 위(威)는 색(色) 즉 형상을 뜻하고, 음(音)은 성(聲) 즉 소리를 뜻합니다. 그래서 "위음왕불 이전"이라 하면 '빛깔과 소리가 있기 전'이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연등불께 수기를 받았으니, 훌륭한 스승을 찾아 그 깨달음을 확인받으라는 것입니다.

영가 스님이 "그러면 스님께서 저를 증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내가 깨달은 바를 들어 보시고 불법에 합당하면 인가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책 스님이 이렇게 권합니다.

" 내말은 가볍고, 조계산에 육조대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육조대사는 워낚 덕화가 뛰어나 사방에서 학자들이 운집하고, 또 법을 얻은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덧붙여 "만약 갈 생각이 있다면 내가 동행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각 스님이 현책 스님과 함께 육조 스님을 찾아 뵙게 됩니다.

이렇게 성사된 영가 스님과 육조 스님의 만남은 선종사(禪宗史)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깃거리입니다. 영가 스님은 육조 스님을 뵙고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육조 스님이 앉아 계신 선상 주위를 빙빙 세 바퀴 돌았습니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쾅하고 내려찍고 떡하니 제자리에 섰습니다.

예의가 없고 배운 게 없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채득한 바를 표현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핀 것입니다. 일르 거량(擧揚)이라 합니다. 그러니 육조 스님이 그냥 계실 수 없지요.

"무릇 사문이라면 삼천 가지 위의와 팔만 가지 세밀한 행실을 갖춰야 하는데, 스님은 도대체 어디서 왔기에 그리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가?"

이때 영가 스님의 나이는 서른 하나이고, 육조 스님은 예순여덟이셨다고 합니다. 젊은 스님이 당돌하게 행동하니까 꾸짖은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 스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무상)이 신속합니다.

삶과 죽음이 중대한 문제인데,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중대사를 해결하기에도 시간이 촉박한데 예의범절 따질 겨를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생사사대(生死事大)  무상신속(無常迅速)' 이 여덟 글자는 수행에 임하는 출가자 본연의 자세를 가장 잘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 그대는 무생(無生)의 도리를 체달하지 않는가?"

죽고 사는 일이 중대하다고 말했는데, 왜 본래 나고 죽음이 없는 도리를 체달하지 못하는가? 무상이 신속하다고 말했는데, 신속한 변화 가운데 본래 신속함이 없는 도리를 왜 깨닫지 못하는가? 그것도 깨닫지 못하고서 무슨 죽고 사는 일이 중대하다느니 무상이 신속하다느니,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고 되받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 스님이 이렇게 답합니다.

"깨달았다고 하는것은 곧 생사가 없는 것이고, 요달했다고 하는 것은 본래 더디고 빠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경지, 요달의 경지에는 생로병사(생로병사)와 인생무상(인생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영가 스님이 "스님께서 말씀하신 생사가 없는 도리, 신속함이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알고 있습니다."하고 입장을 표명한 것입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이 "그렇지 그렇지" 하며 인정한 것입니다.이것을 첫번째 인가라고 합니다. 육조스님이 단박에 영가 스님을 인정하자 그 자리에 있던 대중들이 깜짝 놀랍니다. 또 후대에는 두 분의 이 대화를 두고 "육조 스님보다 영가 스님의 견해가 더 날카롭고 뛰어나다."고 평한 분도 있습니다.

얼핏보면 그런 면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거량이란 당사자들의 타고난 성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말만 가지고 그 경중을 논해서는 안 됩니다.영가 스님은 날카로운 기질의 소유자였고, 반면에 육조 스님은 점잖은 성품이셨습니다.

육조스님의 인정을 받고서야 영가 스님의 위의를 갖추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떠나려 합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께서 '세상에 이렇게 급한 사람이 있는가' 싶어 "너무 빠르지 않은가?" 하십니다. 이것 역시도 영가 스님이 자신의 견해를 한번 더 점검받으려고 취한 동작입니다.

그러자 영가 스님이 대답합니다.
"본래 움직이는 것이 아닌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본래 온적도 없는데 가는 일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 본래 마음자리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온다', '간다'고 말하고 생각하지만 가고 오는 주체는 없습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께서 되짚어 묻습니다.
"누가 움직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육조 스님께서 아주 점잖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뭐가 급해 그리 빨리 돌아가는가?" 했는데, 영가 스님이 내친김에 번뜩이는 자신의 지혜를 드러냈습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께서 '네가 그렇게 온다면 나도 한마디 하겠다." 이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가 아는가?"  고 물은 것입니다. '안다', '모른다'가 문젯거리로 부각된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 스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하시는 것입니다."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는다', '안다', '모른다' 하고 스님 혼자 분별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께서 영가 스님의 말을 또 인정 합니다.

"그대가 생사가 없는 도리, 생멸이 없는 도리, 무생의 뜻을 제대로 일고 있구나"
이것이 육조 스님의 두번째 인가입니다.그러자 영가 스님이 다시 꼬투리를 잡고 반항조로 말씀하십니다.

"무생인데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無生豈有義耶(무생기유의야)]"
본래 생멸이 없고 생사가 없어 모든 게 다 끊어진 자리인데 어찌 의식사량(意識思量)이 있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무생의 뜻을 깊이 얻었구나" 하신 육조 스님의 말씀을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영가 스님의 세번째 도전입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께 말씀하십니다.
"의식 사량이 없다면 어떻게 그러한 사실을 분별하겠느냐?"

그러자 영가 스님이 이렇게 답합니다.
분별 역시도 뜻이 아닙니다. [分別亦非意(분별역비의)]"  아무리 분별해도 그것은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나' 또는 '심(心). 의(意). 식(識)' 등의 주체가 있어서 그것이 분별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는 분별 자체가 몽땅 진여대요(眞如大用)의 발현이지 무엇이 무엇을 분별하는게 아닙니다.

그러자 육조 스님이 "훌륭하구나[선재(선재)]" 하고 칭찬 하십니다.
이것을 세번째 인가라 합니다.
그러면서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는게 어떻겠는가?" 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가 스님이 겨우 하룻 밤을 자고 갔다고 해 별명이 '일숙각(一宿覺)'입니다. 조계산에서 하룻밤 자고 깨달음을 인가받은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영각 스님은 당신의 깨달음을 정리해 『영가집(永嘉集)』 이라는 책을 남겼습니다. 이 책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이 증도가가 특히 오랜 세월 동안 추앙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증도가를 『대승결의경(大乘決疑經)』이란 이름으로 출판한 적도 있습니다.

대승의 가르침이 무르녹아 있는 경전이란 뜻이지요. 원래 '경(經)'자는 부처님 말씀에만 붙이는 단어입니다.특별한 예외가 『육조단경(六祖壇經)』과 「대승결의경」입니다. 그러니 후대의 불교도들이 육조대사와 영가대사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영가 스님은 『유마경』을 보다가 깨달았습니다. 육조 스님께는 그 깨달음을 인정받았을 뿐입니다. 육조 스님 회상에서 참선한 적도 없고, 법문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만나자마자 선 자리에서 인사도 없이 곧장 당신이 깨달은 이치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 마디의 짧은 대화로 그 깨달음을 확증받았습니다. 이는 선종사에서도 특별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증도가가 더욱 돋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가대사께서 증도가를 지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영가 스님이 조계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하직을 고하자, 육조대사께서 몸소 대중을 거느리고 전송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영가 스님이 열걸음쯤 걷다가 석당을 세번 내리치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조계대사를 한 번 뵙고는 나고 죽음과 상돤 없음을 분명히 알았노라!" 명안종사로부터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증명을 받고 대장부로서 할 일을 마쳤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계산에서 내려와 고향으로 향하면서 흥얼거리다 보니, 저절로 한 편의 노래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굳이 다리 틀고 앉아서 머리를 싸메고 자구를 맞춰가면서 지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역대 조사들의 오도송(悟道頌)도 그렇습니다. 깨달음의 희열이 주체할 수 없어 터져 나온 것이 오도송이지, 미사여구를 동원해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끼워 맞춰봐야 그런 글에 무슨 깊이가 있고 무게가 있겠습니까? 깨달음이란 큰 재산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와야 그게 참 된 말입니다. 말이 이정도는 되어야 읽을 만하고 들을 만하며,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고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이 글을 배우고 얼마나 좋았던지, 매일 새벽 증도가로 도량석을 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신청곡 : 깨달음의 나무-한보리(혜능시)
眞虛性宗 [2020-08-29] : 보덕화 법우님, 올려주신 경전의 말씀은 모레(월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무더운 날씨에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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