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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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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0 19:24:11, 조회 : 1,051,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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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촉나라
219년에 한중漢中을 위魏나라로부터 탈취하여 한중왕漢中王을 칭한 유비劉備(재위 221~223)는, 한나라의 계승을 표방하고 황위에 올라 국호를 한漢이라 칭하고, 성도成都에 도읍을 정하였다. 촉(즉 익주)의 땅에 근거한 한漢이라는 의미에서 통상 촉한漢이라고 한다. 촉은 263년에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재위 223~263)이 위나라 군사에 항복하여 멸망한다.
촉나라에서는 위나라와 같은 역경사업이 시행되지 않았고, 불교에 관계되는 기록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지배 계층 사이에 불교가 들어온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오나라처럼 군주나 저명한 지식인이 불교와 접촉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없다. 다만 문헌 기록은 없지만 불교가 행해진 유적은 일부 보인다. 한나라 때부터 촉나라에 걸쳐 이 지방에서는 산 절벽에 동굴을 파서 분묘를 조성하여 다양한 화상畵像을 조각하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민간에서는 불교가 재래 신앙에 융합하는 형태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3 서진 시대
위나라 말 중앙의 실권은 사마씨司馬氏의 손으로 넘어갔다. 265년 사마염司馬炎은 원제元帝의 선양禪讓을 받아 진나라를 창건하고 수도를 낙양에 두었다. 280년에는 오나라를 멸망시켜 황건의 난 이후 100년 만에 중국을 재통일했으나, 52년 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종말을 고했다. 낙양은 서역인의 도래로 불교 전파의 중심지로 성장했고, 서진 시대에도 꽃을 피웠다. 서진 말에는 42곳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대월지국 사람으로 대대로 돈황敦皇에 살고 있던 담마라찰曇摩羅察, 즉 축법호竺法護다. 36종의 언어에 능통했던 그는 서역 여러 나라를 유력遊歷하고 호본胡本을 가지고 돌아왔다. 『광찬반야경 光讚般若經』 · 『정법화경正法華經』 · 『유마힐경』 등 150부가 넘는 경전을 한인 섭승원 · 섭도진 부자의 원조를 얻어 번역했다. 그는 법화사상을 처음으로 소개했고, 다량의 불전을 번역하여 불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정법화경』은 인도 대승불교의 중요 경전을 처음으로 중국에 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축도잠 · 우법개 등의 『법화경』 연구자가 배출되었다. 또한 『법화경』의 일품一品인 「관세음보살보문품」 의 번역으로 관음신앙이 보급되었다. 『유마힐경』은 청담淸談이 유행한 동진 귀족 사회에 수용되어 유마거사가 중국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동진의 구마라집 이전의 역경가로서는 축법호가 제일인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을 칭예하여 당시 사람들이 돈황 보살 혹은 천축보살이라고 존칭했다. 양나라의 율승이자 불교사학자인 승우(445~518)는 경법經法이 중국에 널리 퍼진 것은 축법호의 힘이었다고 격찬했다.
『방광반야경』 · 『이유마힐경』 · 『수능엄경』을 번역한 축숙란의 부친은 인도인이다. 그는 범어와 한어에 능통했고, 일생 거사로 지냈으며 오랫동안 축법호의 역경사업을 도왔다. 그가 낙양에서 번역한 『방광반야경』은 당시의 청담 · 현학이 성행한 중원 지방의 지식층에 유포되었다.
찬란한 미소 - 도신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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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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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 거사님, 올려주신 세계불교사는 내일(목요일) 아침방송에서 공부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무더운 날씨에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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