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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20:36:16, 조회 : 958, 추천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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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무념수무생
誰無念誰無生
누가 무념이라 하고 누가 무생멸이라 했던가.
불교의 성전을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칭합니다. 언필칭 팔만사천 근기에 맞추느라 팔만사천법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만큼 방대하고 내용도 다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부처님 말씀인데도 이 경전에서 하신 말씀과 저 경전에서 하신 말씀을 비교해 보면 서로 상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제자들과 역대 조사 스님들의 말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모두가 부처님의 사상을 정통으로 이어받았다고 인정되는 분들인데도 자세히 연구해 보면 서로의 말씀이 상치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을 두고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해야 하는가? 아닙니다. 근기 즉 상황에 맞쳐 설법을 하셨던 부처님의 태도를 고려할 때, 역대 성현과 조사들이 이러한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영가대사께서 부른 깨달음의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증도가를 읽으면서 앞서 자신이 보았던 경전(經典)의 내용이나 조사스님들의 어록과 다르다는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어느 하나는 옳고, 어느 하나는 잘못이라 판가름해서는 안 됩니다. 상황이 다르고, 조건이 다를 뿐입니다. 부처님 말씀이건 조사의 말씀이건 그 배경과 취지를 살펴 결을 따라서 이해해야지, 하나의 저울대에 올려 이 말과 저 말의 무게를 재려 해서는 안됩니다.
중생들은 잘못된 견해를 바탕으로 허다한 망상을 일으켜 번뇌에 얽히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허다한 생각들, 즉 망상과 번뇌를 억누르고 제거하는 것을 흔히 불교 공부라 일컫고 수행이라 일컸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덜어 내고 쓸어내 무념(無念)의 상태가 되어야만 제대로 공부가 된 것이라 여깁니다. 이게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온갖 괴로움이 생멸(生滅)의 변화에 비롯되고, 인간이 겪는 고통중에 가장 큰 고통은 태어나 죽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해야 한다고 하고, 생멸을 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생사의 마음의 생멸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니, 마음에 생멸변화가 없어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무생(無生)이라야 생사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불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입니다. 대승불교를 공부한 이라면 누구나 이런 이야기를 수긍하고 타당하다 여길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경전(經典)과 어록(語錄)이 수두룩하고, 현재 불교를 가르치는 분들도 이렇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영가대사는 우리의 통념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수무념(誰無念)고"
누가 생멸이 없어야 궁극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하는가!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그럼, 영가대사는 어떻게 주장하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온갖 망상이 뒤죽박죽인 이대로 부처이고, 생멸변화가 여전한 이대로 궁극의 경지라는 것입니다.
신청곡 : 사랑해요 부처님(해성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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